오늘, 생각하기
[+25] 꿈 너머 꿈

나는 춤 춘다,
그리고 다시 꿈 꾼다

대전동화중학교 정재웅 교사

바닥에 손을 짚고, 하늘을 향해 힘차게 발을 뻗는다. “다시 할게요.” 만족스럽지 않은지 손을 털며 개구쟁이처럼 웃는다. “열 번도 더 할 수 있어요.” 자칭 비보이(B–boy) 출신이라는 그의 호언이다. 자세를 잡은 그가 다시 땅을 박차고 오른다. 프리즈(Freeze)*!
  • 글. 이성미
  • 사진. 김도형
「꿈 너머 꿈」은 현업 활동과 더불어 또다른 꿈을 향해 달려가는 열정 넘치는 회원 분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마련된 코너입니다. * 프리즈(freeze) : 비보이(b-boy) 기술 중 하나로 ‘얼음’이라는 뜻처럼 주로 춤의 끝을 맺을 때 멈추는 동작으로 사용한다.
* 펜비트(penbeat) : 타악기나 드럼을 연주하듯이 펜으로 여러 비트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Teacher & Dancer
펜비트로 인생의 비트를 바꾸다

어릴 적 그는 내성적이었다. 남 앞에 서면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춤 한번 보여 주세요”라는 말에 주저 없이 팔을 걷어 부친다. 지역 교사들을 모아 댄스 동호회를 만들고 이끈다. 댄스 버스킹도 한다. 어느 곳이든 무대로 만들어버리는 그는 대전동화중학교에서 정보 과목을 가르치는 정재웅 교사다.
수줍음 많은 소년을 무대 체질로 바꾼 것은 두 가지, 펜비트(penbeat)*와 춤이다. 그는 2000년대 한국에서 펜비트 1세대로 활약했다. 펜비트 문화를 한국에 정착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생이었던 그는 어느 날 필리핀 유학을 다녀온 친구가 펜을 이용해 독특한 비트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격했다. 부르는 이름도, 교본도 없었다. 그래서 ‘펜비트’라고 이름 짓고, 친구들과 온라인 커뮤니티 ‘T.O.P. 펜을 연주하는 사람들’ 활동을 시작했다. 펜비트 영상을 꾸준히 올리자 10명 남짓하던 회원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난생처음 보는 펜비트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너도 나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오프라인 모임을 기획하며 펜비트 문화를 활성화했다. 2007년에는 가수 빅뱅과 함께 펜비트를 소재로 한 교복 CF를 찍기도 했다. 그는 “촬영을 하다가 대기 시간에 심심해서 펜비트를 했어요. 연주가 끝나니까 탑과 GD가 ‘오~!’하며 박수를 쳤던 기억이 나요. 그때 정말 짜릿했어요”라며 흐뭇해했다. 학교를 넘어 전국구 스타였다.
펜비트를 배우기 전까지만 해도 내성적이었던 그는 점점 사람들의 시선을 즐길 줄 알게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활동이 차츰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커뮤니티는 추억의 공간으로 남아있다. 펜비트도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으며, 활동했던 멤버들과 처음 만든 용어들도 여전히 사용된다.
“펜비트 자체가 제 성격을 바꿨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대신 커뮤니티를 이끌며 영상을 기획해 올리고 사람들과 모임을 추진하는 과정이 저를 바꿔줬어요. 특히 리더십이 생기고, 문화 기획에 대한 관심도 커졌습니다.”

정재웅 교사는 ‘교사는 기획자’라고 정의한다.
수업도 하나의 공연과 같다는 것. 교사로서 그에게 ‘교실’은
‘가장 잘 만들어져야 할 무대’다. 그리고 교사는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수업에 적용해야 한다.
학생은 여기서 관객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서 같이 배워나가는 동료가 된다.
20대, 춤과 사랑에 빠지다

흥과 끼는 한국교원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은 파도가 훑고 간 백사장처럼 문화 기획에 대한 열망이 남았다. 그리고 열망은 춤으로 옮겨졌다.
대학 댄스 동아리 D&D의 공연을 바라보며 그의 마음에 다시 파도가 일었다.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그냥 하고 싶었다. 동아리 선배들은 가르침에 뜻이 있었던 예비 교사답게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줬다. 춤 경력이 전무했지만, 한번 시작하면 확실히 해내는 그였다. 꾸준한 연습으로 무대에 올랐고, 춤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춤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그는 2015년 휴학 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유럽에 가 동경하던 댄서를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실컷 하고 나면, 해야 할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돌아와 다시 학업에 열중한 그는 2017년 임용시험에 합격하면서 ‘춤추는 학생’에서 ‘춤추는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에 대덕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았어요. ‘학생들과 더 가까워질 방법은 없을까?’, ‘학생들에게 좀 더 활력을 불어넣어줄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는데 역시 춤이 답이더라고요. 그래서 댄스부를 직접 만들어 부원을 모집했어요. 정말 멋진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정재웅 교사는 학교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함께 댄스대회에 나갔다. 학생들을 위해 댄서를 강사로 초청해주기도 했다. 학생들도 매사에 더 열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어릴 적 접한 펜비트가 자신의 삶을 바꿔준 것처럼, 학생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이따금 그에게는 ‘춤만 추며 살고 싶다’는 유혹이 찾아온다. 그럴 땐 또 추면 된다. ‘춤에 관한 유혹은 춤으로 푸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그렇게 더 큰 무대를 위해 2017년 11월, 정재웅 교사는 대전 지역 최초 교직원 댄스 동호회인 ‘나인(9ine)’을 만들었다. 나인(9ine)이라는 이름은 ‘춤추는 데 나이는 상관없다’는 모토에서 따왔다. 또 ‘9라는 숫자처럼, 10이 되긴 조금 부족한 아마추어지만 열심히 노력하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
“처음 동호회를 만들면서 대전지역 전 교직원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교장, 교감 선생님들까지요. 초임 교사의 패기였죠. 다행히 많은 분들이 동호회에 들어오면서 회원 수가 60명까지 늘기도 했어요.”
매주 수요일 연습실에 모여 땀을 흘리던 그는 다른 지역의 교사 댄스 동호회와 교류하면서 활동 반경을 전국으로 넓혔다. 그리고 2019년에는 동호회 연말 파티를 기획하고 전국의 춤추는 교직원들을 초대했다. 정말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았다.

2019년 여름, 연습을 위해 모인 댄스 동호회 ‘나인’ 회원들
학생은 인생이라는 무대 위의 동료

지난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쉽게 동호회 활동에 제약이 걸렸다. 연습을 위해 모이는 일도 최소 빈도, 최소 규모로 진행했다. 그럼에도 정재웅 교사는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컴퓨터를 잘 다루다 보니 온라인 수업과 관련해 업무가 늘었던 것. 그는 “지금은 코로나19 이후 교육 환경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춤 이야기를 할 때에는 연신 장난꾸러기처럼 웃다가도, 수업 이야기를 하면 눈빛이 진지해진다.
교육관도 확고하다. 정재웅 교사는 ‘교사는 기획자’라고 정의한다. 수업도 하나의 공연과 같다는 것. 교사로서 그에게 ‘교실’은 ‘가장 잘 만들어져야 할 무대’다. 그리고 교사는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수업에 적용해야 한다. 학생은 여기서 관객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서 같이 배워나가는 동료가 된다.
“예전에는 교사가 학생의 간접경험에 대한 주체라고 생각했어요. 학창 시절, 체육 선생님이 다녀온 여행지를 영상으로 보여주시는데, 그전까지는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다가 그 영상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거든요. 저도 ‘먼저 경험한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교사가 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교사는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무엇을 주는 사람이 아니에요. 학생과 함께 경험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동료죠.”
그래서 정재웅 교사는 끊임없이 학생과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헐렁한 티셔츠와 발목이 드러나는 팬츠, 깊숙이 눌러쓴 벙거지 모자, 앞으로 맨 슬링백까지. 학교에서 그를 마주쳤다면 이렇게 물을 지도 모른다. “이 학교 학생이죠? 여기 힙합 동아리가 있어요?”
그렇게 복장이라는 틀을 깨고, 친구처럼 앉아 학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 “무엇이든 경험해봐. 실패해도 괜찮아”라든가 “넌 정말 멋지다”라고 말해준다. 펜비트 활동 당시 전적으로 응원해주신 그의 부모님처럼 “학생들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편이 되어주고 싶다”는 것이 교사로서 또 다른 목표다. 물론 그는 학생들에게 이미 사는 모습으로 말해주고 있다. 인생이라는 무대는 자신이 어떻게 기획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춤과 교육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진 그는 앞으로 교실이라는 무대를 힙하게 바꿔나갈 것이다.

‘꿈 너머 꿈’은
회원 여러분이 주인공입니다

‘꿈 너머 꿈’ 코너는 새로운 꿈을 향해 쉼 없는 도전을 하며 많은 분들에게 꿈을 향한 원동력이 되어주시는 회원 여러분들의 신청을 기다립니다. 선생님이 아니어도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혹은 추천해 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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