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The–K 인터뷰 2

스스로 계획하는 즐거운 실험 놀이터,
‘과학의 맛’에 빠뜨리다

경기도 오산 성호고등학교 김영학 교사 김영학 교사는 어려운 과학을 즐거운 과학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학생들은 그의 시간에 마음껏 떠들고 질문하며, 동료 과학교사들은 그와 함께 더 재미있는 과학을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과학의 맛을 보여주는 김영학 교사를 만났다.
  • 글. 이경희
  • 사진. 김도형

다정하고 친절한 우리 선생님

김영학 교사를 만나기 위해 오산 성호고등학교 과학실에서 대기하자니 학생들이 하나둘, 과학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날 수업의 주인공은 성호고등학교 의학동아리 ‘아피스’ 회원들이다. 의학에 뜻이 있는 학생들이 모인 이 동아리는 김영학 교사와 오늘이 첫 만남. 김영학 교사는 소의 눈을 해부하는 시간을 학생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김 교사가 오늘 실험 주제인 ‘소의 눈’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학생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소 눈과 사람 눈의 비교, 실험 시 유의사항 등등 이번 시간의 개요와 주의할 점에 대해 쉽고 편안한 설명이 이어졌다. 흰색 가운으로 갈아입은 학생들이 먼저 유튜브로 소의 눈을 해부하는 방법을 시청한 뒤 본격적인 실습에 들어갔다. 소의 눈을 직접 만진다는 생각에 시작부터 질색하는 학생들, 제법 용감하게 메스를 들이대는 학생들, 옆에서 친구의 해부 모습을 진지하게 관찰하는 학생들까지, 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소의 눈을 대한다. 김영학 교사는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살핀다. 수정체를 터뜨리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잘하는 학생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교사의 목소리보다 학생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교실. 사방에서 들리는 웃음소리, 질문하는 소리…. 바로 김영학 교사가 지향하는 과학 시간이다. 김영학 교사는 사범대 출신이 아니다.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교직에 뛰어든 경우다.
“생물학과 수업 중에 교직이수 과목이 있었어요. 그걸 들으면 교사자격증을 준다고 해서 이수했지요. 받으면 좋겠더라고요(웃음).”
그는 4학년 때 교생실습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남자 중학교였는데 한 달 동안 에너지 넘치는 학생들과 무척 재미있게 지냈어요.” 그리고 대학 동아리로 시사영어잡지를 공부하는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본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용을 설명하고 이해를 돕는 일이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고 발표와 설명에 재능을 보였던 그가 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김영학 교사는 수업 방식에 대해 고민하다가
1996년 과학교사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교사의 수업 사례를 보면서
과학 시간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학생들에게 색다른 접근법으로 다가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고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온라인에 자신의 수업 내용을 모두 올리는 것이었다.
교육공동체의 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과학 시간은 그다지 재미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건 김영학 교사도 마찬가지였다. 외워야 할 것들은 잔뜩이었고 교과서에 나와 있는 실험은 지루했다. 시험은 늘 어려웠으니 예나 지금이나 과학을 좋아한 학생들은 전교에서 손꼽히는 우등생 정도였다.
“사실 과학이 좀 어려워요. 모두 지식 위주로 암기해야 하고 개념을 이해해야 하죠. 물론 그걸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버거워하는 애들도 많아요. 괴테의 시 중에서 ‘나는 놀라기 위해 여기에 있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실 자연과학의 출발지점이 호기심이잖아요. 해가 뜨고 없어지고 다시 달이 뜨고…. 인간 입장에선 매우 경이로운 거죠. 학생들이 궁금해하고 호기심을 갖는 과학 수업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교사가 흥분을 느껴야 학생들에게 그 흥분이 전달된다는 것이었다. 김영학 교사는 수업 방식에 대해 고민하다가 1996년 과학교사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교사의 수업 사례를 보면서 과학 시간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학생들에게 색다른 접근법으로 다가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온라인에 자신의 수업 내용을 모두 올리는 것이었다.
“초보교사로서 수업을 잘하고 있는지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주변 선생님들과 제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피드백을 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온라인에 수업 지도안, 수업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처음 2년 정도는 댓글이나 다른 선생님들의 게시 글이 없어서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댓글이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어요.”
‘재미있는 과학수업 만들기’라는 카페의 회원 숫자는 현재 8,700여 명. 전국에 과학교사 숫자가 5만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무려 1/5 정도가 가입해 활동하는 셈이다.
“온라인에서 전국의 교사들이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지금도 하루에 1,000~1,500명 정도의 교사들이 카페를 방문하고 수업 아이디어를 나누며 협업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명제인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에서 ‘교육의 질은 교육 협업의 질을 넘을 수 없다’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매일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합리적 의심 그리고 창의성

김영학 교사의 과학 시간은 즐겁다. 학생들은 암기해야 할 것을 노랫말로 만들어 목청껏 부르고 스스로 퀴즈를 만들어내며 실험방식을 제안한다. 김 교사는 그런 학생들을 아낌없이 칭찬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게끔 판을 펼쳐준다.
“노예는 질문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그가 학생들에게 꼭 해주는 말이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떠들라”라는 말이다. 대개의 학생은 떠드는 와중에 질문하고 논의를 해가면서 과학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김영학 교사는 그런 학생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 단계에서 뭘 더 보충해서 설명해야겠다는 중요한 힌트를 찾아냈다.
“‘밥 아저씨 그림 퀴즈’라는 앱이 있어요. 난센스로 초성 퀴즈를 맞추는 건데 학생들에게 화산 단원과 관련해 직접 퀴즈를 만들어보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한 학생이 ‘ㅁㄱㅁ’라고 써놓고, 축구 골대와 골키퍼를 그려놓았네요. 평소 무기력한 학생이었는데 눈을 반짝거리며 저에게 맞춰보라고 했어요. 정답은 ‘막으마’. 즉 ‘마그마’를 이렇게 창의적으로 표현한 걸 보고 아낌없이 칭찬을 해줬고 그 뒤로 학생의 수업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그는 교사의 힘을 믿는 교사다. 경기도에서 지원을 받아 시카고로 석사과정을 밟고 돌아온 뒤 학생들에게 더 허용적이 되었다. 그리고 칭찬의 중요성과 위력을 실천한 자신을 비롯해 우리나라 생물 교사들이 시카고에서 연수하고 돌아가 배운 것을 현장에 맞게끔 업그레이드해 적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들의 역량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가졌다.
“교사들은 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고민과 학생디어를 충분히 나눌 준비가 되어 있고 지원과 환경이 주어진다면 자신들의 경험과 배움을 각색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학생들에게 그대로 돌아가게 되죠.”
온화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김영학 교사는 이 시대에 과학교육이 필요한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학생들이 과학 시간에 질문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결국 세상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시민들이 더 많아지는 것, 그리고 과학교육을 통해 창의성을 키우는 것이다. 학생들 스스로 자신만의 탐구 계획도 세워보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학의 참 맛’을 보게 해주려는 김영학 교사. 그는 처음 교사가 됐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으로 학생들을 과학세상으로 즐겁게 인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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