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25] 그 쌤의 이중생활

이 사람,예술이다!

서울 압구정고등학교 김주희 교사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리듬에 맞춰 발을 까딱이고, 누군가는 노트에 드로잉을 하며, 또 누군가는 갤러리를 거니는 한갓진 풍경으로. 모습은 다르지만, 그 순간 삶의 디테일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한다는 사실만큼은 같을 테다. 여백의 시간이면 이끌리듯 캔버스와 마주 앉는 김주희 교사. 수학교사이면서 동시에 화가인 그에게 예술은 휴식이자 세상과의 대화다.
  • 글. 정은주
  • 사진. 한제훈

Teacher & Artist
다른 듯 닮은, 수학 그리고 예술

작품을 보면 그가 읽힌다. 따스하고 세심하며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재주가 특출한. 캔버스로 옮겨온 화분, 꽃, 찻잔, 빵 같은 소재들은 분명 그의 시선이 닿았던 것일 터.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은 작가의 생각이 더해져 비로소 예술이 된다. 누군가는 궁금해할 게 분명하다. 어째서 화분이고, 어째서 찻잔이냐고. 이건 꽉 짜인 하루하루, 잘 해내야 할 일이 쏟아지는 삶에서 그가 찾아낸 여백의 흔적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주변의 소소한 것들 역시 관심을 두고 표현하는 순간 특별한 의미가 담긴다는 것. 김주희 교사가 어딜 가나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는 이유다. 이토록 감성 충만한 수학교사라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학문, 그리고 지극히 감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예술의 조합은 의외라는 놀라움을 넘어 신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깊이 파고들면 참 많이 닮은 게 또 수학과 예술이다. 수학의 궁극은 세상과 만물의 근본 이치를 찾는다는 점에서, 또 예술의 궁극은 인간 내면의 깊은 본성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면 할수록 수학과 예술이 깊은 곳에서 하나로 만난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건 연결 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볼게요. 종이를 잘라 양 끝에 수학과 미술을 놓으면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하나의 종이 위에 있으니 분명 연결이 되어있지요. 그리고 절반만큼 비틀어 양 끝을 붙이면 뫼비우스 띠가 되고, 멀었던 수학과 미술은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경계는 우리의 관념이 만든 것 같아요. 가장 먼 것이 가장 가깝기도, 가장 가까운 것이 가장 멀기도 하지요.”

감각이 깨어나는 시간, 그림과 함께

김주희 교사의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늘 수학 정석을 끼고 있을 만큼 수학을 좋아했고, 동시에 그림 그리기를 즐거워한 학생. 수학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대에 입학했지만, 여전히 그림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고민의 끝은 ‘다시 시작하자, 그림을 그리자’로 귀결된다. 그래서 사범대 졸업 후 새롭게 미대 입시를 준비했고, 사범대생에서 미대생으로, 전혀 다른 세계로 기꺼이 발을 내디뎠다. 그는 동양화를 전공하며 창작이라는 꿈을 꾸던 당시를 ‘정말 열정적이었다’고 회상한다. 수학 전공자가 생각하고 표현하는, 자신만의 작업 방식도 그때 발견해냈다.
“학부에서 계속해서 다룬 재료는 전통 한지인 순지와 장지 그리고 먹과 분채였어요. 저에게는 매우 어려운 재료였지요. 그래서 제게 맞는 방식을 연구했어요. 먹을 올리고 분채를 올린 순지들을 접고 또 접어 그것을 손으로 자릅니다. 손바닥 크기로 만든 조각들은 다시 빈 화면에 올리고 또 올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냈죠. 수학으로 치면 미분을 하고 적분을 하는 것과 같은 순서였어요. 그 방식으로 1회 개인전에서 전시를 했어요.”
교직에 대한 애정이 싹튼 것도 바로 이 무렵. 미대 재학 시절, 학비 마련을 위해 수학교사로 지냈던 몇 개월의 경험이 계기가 됐다.
“그 또한 참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50여 명의 학생이 제 이야기에 집중하고 반응을 하는 거죠. 떠나는 날 학생들에게 손편지와 종이학 선물을 받았는데, 그때 깨달았어요. 교직이라는 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구나, 하고요.”

명상으로 발견, 마음 빼기의 이로움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친 지 16년, 작품 활동은 틈나는 대로 그리고 방학 기간에는 몰입도를 높인다. 200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난겨울 일곱 번째 개인전을 열었으니, 참 열심히 달린 어제들이 눈에 선하다. 그는 교사와 작가, 두 가지를 치우침 없이 지속할 수 있었던 데는 명상의 힘이 컸다고 말한다. 10년 전 교원 연수에서 처음 명상을 접했는데, 자신의 마음에 대해 이해하고, 돌아보고, 또 그 마음을 비울 수 있었던 시간으로 지금까지 기억된다.
사실 명상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행위이면서 더불어 타인을 깊이 이해하는 수련이기도 하다. 내면의 메시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화가, 학생들과 교감하고 소통해야 하는 교사에게 아마도 꼭 필요한 부분. 그는 명상을 접함으로써 학교에서 모든 학생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고백한다.
“교사로서 학생들과의 교감은 참 중요합니다. 교감해야만 제 마음의 지지와 응원이 진짜로 전달이 되거든요. 그건 저의 행복이기도 하고요. 명상이 이를 가능케 했어요. 몸을 건강하게 하려고 운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숨 쉬듯 살기 위해서는 꾸준히 명상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기 초 학생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명상하는 교사’라는 타이틀을 덧붙이곤 한다. 또 수업 시간에는 5분 정도 함께 명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고민이 많아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 혹은 집중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된다는 학생들의 반응이 반갑다. 개인적으로는 지역명상센터에서 꾸준히 명상을 지속하며 주말에 시간을 더 내서 집중명상을 하는 식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꾸준히 하다 보니 이제는 마음빼기 명상전문가로서 교원 명상 연수에 도우미로 참여하기도 한다.
“명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나의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해봅니다. 아마 참 힘들었을 거예요. 명상으로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생겼고, 긍정적인 시선이 짙어졌으며, 욕심 없이 사람을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으니까요. 저에겐 큰 변화에요.”

가까워진 행복, 잘 사는 것에 대하여

교사의 시선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달된다.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화가인 덕분에 다채로운 세상과 접할 기회가 잦다는 건 그래서 그에게도 크나큰 설렘이다. 시야가 넓어질수록 삶을 바라보는 모습 또한 바뀌는 건 당연한 결과. 김주희 교사는 사람들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근사한 통로, 마음을 돌아보는 명상에서 사람과 사람간의 벽, 예술과 수학의 벽을 허무는 실마리를 발견한다.
“예술체험이 중요하지요. 그런 점에서 예술과 명상은 통하기도 합니다. 수학을 가르치지만 수업 시간에 명상을 하고 연극반, 낙서그림반, 미술관 탐방반 같은 예술체험을 할 수 있는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던 것은 학생들이 이런 활동으로 자신과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앞으로도 그 연결고리들을 풀어내서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그는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곳에서 순수함과 진리와 진정한 사람다움을 추구한다면, 그리고 그 마음이 학생들에게 전해진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을 거라고.
“제 삶의 모토는 ‘잘 사는’ 거예요. 참 다양하게 정의 내릴 수 있을 텐데요. 저는 곁의 사람들과 따뜻함을 나누며 함께 행복해지도록 노력하는 걸 ‘잘 사는’ 삶이라 정의 내리려 합니다.”
그러려면 열린 마음이 필요하겠고,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되어야 할 테다. 거창할 건 없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혹은 그림 한 점으로도 족하다. 어느새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울림이 있는 그의 그림이 가슴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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