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반구에 위치한 호주는 워낙 땅이 넓어 다양한 기후대를 가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서호주의 주도인 퍼스(Perth)의 경우 9월부터 11월까지는 봄으로 분류되고, 12월부터 2월까지는 여름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가 겨울로 접어들 무렵인 11월의 호주는 평균 기온이 20~25℃로 따뜻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진다.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들을 보기 위해 많은 여행자가 일부러 이 시기에 퍼스를 찾아오기도 한다.
퍼스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여행지이지만 서호주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아침이면 팀을 이뤄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해 질 무렵이면 캠핑카 또는 4륜구동차를 타고 삼삼오오 퍼스 시내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자주 등장하는 퍼스는 호주에서 가장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호주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주민들 대부분이 영국에서 건너온 자유이민자들로 이뤄져 있는 까닭이다. 호주의 남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퍼스는 생각처럼 그리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여행지는 아니다. 시드니에서 퍼스까지는 기차로 3박 4일, 비행기로는 약 4시간이 소요된다. 대륙횡단 열차인 인디언퍼시픽(시드니-퍼스)으로는 무려 3박 4일(65시간)이나 소요된다. 이 기차를 타고 대륙의 남서부에 있는 눌레버 평원을 지날 때는 약 480km를 직선으로 달리기도 한다.
퍼스에서 여행자들은 물론 현지 사람들도 즐겨 찾는 명소는 킹스 파크다. 이곳에서는 스완 강을 따라 깔끔하게 펼쳐진 퍼스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울창한 숲을 그대로 자연공원으로 꾸며놓은 킹스 파크는 퍼스 시민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휴식공간이다. 특히 매년 8월부터 11월 사이에 여러 종류의 야생화들이 피어나 산책하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를 상징하는 바오밥나무도 볼 수 있다.
한적한 호수공원인 레이크 몽거 역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기 좋은 명소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호수에서는 퍼스의 상징인 ‘블랙 스완’을 만날 수 있다.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는 ‘스완 강’은 퍼스 시민들이 해 질 무렵에 자주 찾는 휴식처다. 강변의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하이킹을 즐기는 모습, 노부부가 산책로를 따라 정답게 걷는 모습, 잔디밭에 편하게 누워 책을 읽는 모습 등이 모두 평화롭게만 보이는 풍경들이다.
퍼스 중심가의 스완 강 둔치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악기’라 불리는 ‘스완벨 타워’가 높이 솟아 있다. 모두 18개의 종이 있는 탑이다. 매일 정오에는 16개(2개는 예비용)의 종이 아름다운 음악 연주를 한다. 1988년에 세워진 스완벨 타워는 퍼스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퍼스 중심가 남서쪽의 스완 강 하구에는 고풍스러운 도시 프리맨틀이 있다. 이곳에는 길 양쪽이 모두 노천카페로 이뤄진 일명 ‘카푸치노 거리’가 있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재래시장인 프리맨틀 마켓이 있다. 프리맨틀 마켓은 공예품, 악기, 가구, 액세서리, 음반, 서적 등을 파는 시장으로 유명하지만 고풍스러운 외관이 더 인상적인 명소다.
프리맨틀은 퍼스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섬인 로트네스트 섬으로 향하는 출발지이기도 하다. 프리맨틀 항에서 페리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로트네스트 섬은 퍼스에서 반나절 또는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에 좋은 여행지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며 일광욕을 하거나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 등을 즐길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섬 곳곳을 둘러볼 수도 있다.
퍼스를 기점으로 해서 갈 수 있는 많은 명소 가운데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남붕국립공원(Nambung National Park)이다. 호주 곳곳에는 카카두국립공원(노던 테리토리), 플린더스체이스국립공원(남호주), 세인트클레어국립공원(태즈매니아) 등과 같은 많은 공원이 있다. 비록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남붕국립공원 역시 호주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자연공원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퍼스에서 북쪽으로 260km쯤 떨어져 있는 남붕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너클스 사막(Pinnacles Desert)이 있는 명소다. 공원은 크게 피너클스가 있는 사막 지역, 새하얀 모래밭으로 특징되는 바닷가 지역 등으로 구분된다. 여행자들이 큰 기대감을 안고 찾아오는 피너클스 사막은 크고 작은 돌기둥들이 여기저기 솟아있는 이색지대를 가리킨다. 드넓은 사막에 마치 묘석처럼 불쑥불쑥 솟아 있는 이 돌기둥들은 먼 옛날 원시림이 화석으로 변한 것이다. 손가락만큼 작은 것부터 높이 4m에 이르는 것까지 무려 1만 5,000개의 화석이 기기묘묘한 자태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제부터 이 자리에 서 있었을까?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수만 년을 버텼다고 하니 그 우직함에 절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다. 이 광활한 화석군은 네덜란드의 한 탐험가에 의해 1658년 처음 발견됐다.
피너클스 사막의 조금 높은 바위(전망대)에 올라서면 정말 멋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황톳빛 모래와 새하얀 모래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황톳빛 모래는 내륙에서, 새하얀 모래는 바다에서 날아온 모래들이다. 피너클스 사막 근처의 란셀린에 있는 화이트 비치는 밀가루처럼 새하얀 모래로 이뤄진 백사장이다. 이 역시 자연이 빚은 훌륭한 예술품이다. 화이트 비치의 모래언덕에서는 특별한 체험이라 할 수 있는 ‘샌드 보딩’을 즐길 수 있다.
퍼스에서 출발한 여행자들은 그들이 타고 온 4륜구동차를 이용해 남붕국립공원의 피너클스 사막과 화이트 비치를 둘러보게 된다. 오로지 기이하고 독특한 자연현상으로만 이뤄진 국립공원인 만큼 이곳에는 여행자들이 기대할 만한 편의시설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저 조용히 다가가 수만 년의 세월을 통해 만들어진 자연의 걸작품에 잠시 경의를 표하고 돌아서면 그뿐이다. 점심도 미리 준비해간 도시락이나 샌드위치로 대신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작은 불편함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불평을 쏟아내는 순간 아마도 그 사람은 자연의 위대한 걸작품을 만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 테니까. 참고로 피너클스 사막에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비포장도로가 있다. 작은 돌들을 경계선 삼아 조성한 소박한 길이 매우 인상적이다.
남붕국립공원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쯤 더 가면 ‘칼바리’라는 자그마한 마을이 하나 나타난다. 퍼스에서는 577km 떨어진 곳이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곳인 칼바리는 윈드서핑과 제트스키, 바다낚시 등을 즐기며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양지다. 게다가 마을 전체가 바다와 울창한 숲, 거대한 협곡에 둘러싸여 있어 마치 ‘서호주의 보석’과도 같은 한적한 마을이다. 마을 외곽에는 꽤 큰 규모의 캐러밴 파크도 있다. 이 캐러밴 파크는 취향에 따라 계곡이나 바다로 여행을 떠났던 여행자들이 숙식을 위해 매일 저녁 일시적으로 모이는 장소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행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여행과 관련된 저마다의 경험을 토대로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이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여행지로 뿔뿔이 흩어진다.
칼바리 바닷가의 나지막한 언덕배기에는 조그만 전쟁기념탑이 하나 세워져 있다. 기념탑의 한쪽 모서리에 새겨져 있는 “그리고 그들은 죽었습니다. 당신과 나를 위해”라는 글귀를 통해서는 호주사람들의 평화에 대한 염원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다. 또한 이 기념탑에는 “한국전 참전, 1950~1953, 278명 사망”이라는 내용도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칼바리 중심지에서 자동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칼바리국립공원은 밀림 한가운데 우뚝 솟은 또 하나의 거대한 자연조각품이다. 오로지 자연의 힘으로만 빚어낸 가파른 절벽과 협곡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절벽 아래에는 태고의 신비가 숨 쉬고 있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일 만큼 전망도 좋다. 칼바리 국립공원에서도 이른바 ‘제트 밴드’라 불리는 거대한 협곡이 최고의 장관을 자랑한다. 협곡 곳곳에서는 거대한 바위에 매달려 암벽등반을 즐기는 클라이머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일반 여행자들도 소정의 강습을 받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가벼운 암벽등반을 즐길 수 있다. 칼바리국립공원 최고의 자연예술품은 ‘내추럴 윈도우’라 불리는 바위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거센 비바람에 바위 한가운데가 마치 창문처럼 뚫려 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서호주에 있는 수많은 명소 가운데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몽키미아다. 퍼스에서 북쪽으로 840km쯤 떨어져 있는 몽키미아는 야생 돌고래들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매일 비슷한 시간에 나타나는 독특한 명소다. 매일 오전 8시에서 10시 사이. 몽키미아의 돌핀 비치 근처에서 밤을 보낸 여행자들이 바닷가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먼바다에서 찾아오는 야생 돌고래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몽키미아 바닷가에 야생 돌고래들이 규칙적으로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반부터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야생 돌고래들이 대를 이어가며 몽키미아 바닷가를 찾아오면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유명해졌다. 야생 돌고래들은 한 번에 보통 5~6마리씩 나타나는데 잠시 바닷가에 머물다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