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쉬어가기
아름다운 동행

잔잔한 낭만과 책 향기 넘실대는
그곳에 우리가 있었네

김기화 회원과 남편 서종수 씨, 아들 서정국 회원과 며느리 이은주 회원이 함께한
통영 ‘문학 여행기’
독서 모임에도 여러 스타일이 있겠지만 이 가족 독서 모임은 좀 더 특별하다. 책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도 걱정할 것이 없다. ‘도란도란 책 생각 나누기’에선 경청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니까.
  • 글. 김유리
  • 사진. 권대홍

독서 토론으로 하나 된 가족

새 가족이 생긴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삶을 살았기에 더 이해해야 하고, 보듬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함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여기, 책을 통해 소통하고 대화하는 가족이 있다. 김기화 전 연암중학교 교장은 <The–K 매거진>에 가족 독서 토론을 제안한 며느리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는 사연을 보내왔다. “요즘 며느리들은 시부모를 몹시 어려워한다는데 먼저 독서 토론을 하자며 다가와 준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독서 예찬론자인 김기화 전 교장의 첫 여행지는 이번 여행 주제에 안성맞춤인 박경리 기념관이었다. 이곳은 소설 ‘토지’의 작가이자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통영 출신의 박경리 선생 작품을 모아놓아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뜻깊은 장소다. 가족들은 저마다 박경리 선생의 작품을 음미하며 차분하게 기념관을 돌아봤다.
“독서 토론을 하다 보면 결국 자기의 마음 깊은 부분을 이야기하게 돼요. 그러면 현재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상태를 알 수 있죠. 그럴 때 나머지 사람은 들어만 줘요. 공감이 중요하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거든요. 강요 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거죠.” 김기화 전 교장이 독서 토론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고른 책의 제목, 밑줄 친 구절만 봐도 말로는 다하지 못하는 서로의 마음이 전해진다는 것이었다. 며느리 이은주 교사는 독서 토론을 제안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결혼하고 TV를 사지 않았어요. 대화를 많이 하고 책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계기가 없으니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그 무렵 어머니가 독서 토론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이 떠올라서 가족끼리 하면 어떨까 싶어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어려웠는데 네 번 정도 진행해보니 책을 집중해서 잘 읽게 되고, 어머니 말씀처럼 가족의 마음을 잘 알게 되더라고요.” 김기화 전 교장은 독서 토론을 하지 않았다면 여느 시어머니처럼 아들과 며느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며 지냈을 거 같다고 했다. “독서 토론은 결국 책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책을 통해서 사람을 알아가는 거죠.”

교사의 사명, 그 무게에 관하여

기념관 관람을 마친 가족들의 다음 코스는 한려수도의 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통영 케이블카 정상이었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한산대첩의 현장과 통영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탁 트인 전망을 보고 있자니 바쁜 일상의 피로가 단번에 날아가는 듯하다. 기분 좋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 8월에 40년의 교사 생활을 끝냈어요.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축하를 받으며 누구보다 행복한 은퇴를 할 수 있었어요. 퇴임할 때 함께 독서 토론을 하던 학부모들이 그간의 자료를 엮어서 앨범을 만들어 주었는데 너무나 행복하더라고요. 또 아들과 며느리는 퇴임에 맞춰 제 주변 지인과 가족들에게 연락해 동영상을 만들어 깜짝 선물해 주었어요. 너무나 감동적인 순간이었고, 열심히 달려온 제 인생에 행복한 날 중 하나였어요.” 김기화 전 교장이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어머니는 주말보다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어요. 학교를 너무 좋아해서 월요일이 되면 누구보다 힘이 솟는 분이셨죠.” 아들 서정국 교사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전 40대 중반까지 승진에 관한 생각이 없었어요. 그저 아이들에게 수학을 어떻게 재밌게 느끼게 할지 수업 개선에 대한 연구만 했는데, 어느 날 장학사님 추천으로 선생님 400명이 모인 자리에서 수업 모형을 시연하게 됐어요. 신기하게 반응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수업혁신단에 영입되고, 수업을 공개하다 보니 승진 점수가 되더라고요. 의도적으로 모은 점수는 아니었는데 생각 없이 여기저기 뛰다 보니 어느 순간 저절로 모였어요. 그래서 40대 후반에 생각을 했죠. 승진되어도 좋고 안 돼도 난 수학 선생님으로 행복하다고요. 수업 하나를 잘하겠다는 목표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또 다른 삶을 열어주었어요. 마치 운명처럼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늘 좋은 분들을 만나 교장까지 하게 되었죠.”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김기화 전 교장의 눈빛은 유난히 반짝였다. 교사로서의 삶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엔 나이를 초월한 순수가 어려 있었다. 남편 서종수 씨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아내를 보며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커 보여서 좋았습니다. 생계나 가족 부양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 아내는 늘 학생들을 가르치며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살았죠.” 가르치는 일은 직업이자, 취미이자, 특기라고 말한 김기화 전 교장의 이야기가 단박에 이해되는 말이었다.

가족의 행복은 미리 보는 천국

통영의 해안로를 산책한 가족의 오늘 저녁 메뉴는 통영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다찌집’이었다. 신선한 해산물과 다채로운 음식이 끊임없이 나오는 식당에서 가족들은 건배하며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이야기했다. “어머니를 보며 어릴 때부터 교직을 꿈꿨어요. 닮고 싶은 멘토랄까요? 밖에서 일하고 오면 힘들 법도 한데 어머닌 집안에서도 흐트러짐을 보인 적이 없으세요. 완벽주의자처럼 모든 걸 묵묵히 해내셨죠. 저는 아직 많이 모자라지만 늘 닮고 싶다고 생각해요”라며 서정국 씨가 전했다.
아들 부부를 바라보는 김기화 전 교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가족의 행복은 미리 보는 천국이라죠?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았는데 아들이 이렇게 말해주니 행복하네요. 그리고 너무나 훌륭한 반려자를 만나 더욱 고맙고요”
교장으로 퇴임한 김기화 전 교장의 시아버지부터 아들과 며느리까지 3대에 걸쳐 교사의 본분을 지키며 살아온 가족은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이자 애틋한 가족임이 분명했다.
김기화 전 교장은 “집안에 교사가 많다 보니 시어머니는 학교 돌아가는 사정을 훤히 꿰뚫고 계셨어요. 교사들의 애로사항을 너무나 잘 알기에 며느리 힘들다고 일도 안 시키셨죠. 며느리 사랑이 넘치셨는데, 저도 우리 시어머니를 본받고 싶어요. 아들이 결혼하고 집안 분위기가 더욱 선명한 유채색이 되었는데 이게 다 은주 덕분인 거 같아요.”

추억 통장에 행복을 저금하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마친 김기화 전 교장 부부는 통영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통영국제음악당을 산책했다. 예향의 도시답게 멋스럽게 지어진 음악당과 바다가 멋스럽게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몇 년 전 먼저 은퇴한 남편 서종수 씨는 “아내가 퇴임하니 평일에 다닐 수 있어 좋네요. 교사들은 방학 때 움직일 수밖에 없어서 어디를 가도 늘 성수기에 다녀야 했어요. 날 좋은 봄·가을 여행은 엄두도 못 냈죠.” 이에 김기화 전 교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은퇴하면 느긋할 줄 알았는데 전 여전히 바빠요. 전에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내가 하고 싶은 걸 줄이고 학교 일에 매진했는데, 지금은 그때 하고 싶었던 걸 하느라 일주일이 금방이에요.”
호텔을 나선 가족들은 통영에서 가장 핫하다는 ‘동피랑’ 벽화마을을 찾았다. 강구안 언덕배기에 있는 이 마을은 주택가 곳곳 담벼락에 다양하고 멋진 벽화가 장식된 마을로 2년마다 공모전을 통해 새롭게 단장한다. 가족들은 이곳에서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포즈를 취하며 즐거운 추억을 남겼다.
“행복을 추억 통장에 저금한 기분이네요. 아들이 결혼하고 며느리와 함께 가족여행을 하는 건 처음이라 특별히 기억에 많이 남을 거예요. 이 여행이 앞으로 우리 가족 독서 토론에 좋은 동력이 될 테고요.”
가족들은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나전칠기 공방으로 향했다. 나전이란 소라를 가리키는 ‘나’와 도구로 꾸민다는 ‘전’의 합성어로 ‘자개’라고도 하며, 기물에 옻칠하여 밑바탕을 처리한 위에 자개를 올려 만드는 칠기를 나전칠기라 한다. 가족들은 자개 컵받침 만들기 체험에 돌입했다. 밑그림을 그리고, 자개를 붙이는 과정에도 각자의 개성이 한껏 드러냈다.
김기화 전 교장과 이은주 교사는 침착하게 자개를 붙여 나간 반면, 남자들은 투박한 손놀림 때문인지 좀체 속도가 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는 아들 서정국 교사에게 김기화 전 교장이 이야기했다.
“‘잘한다’가 아니라 ‘한다’에 집중하면 돼, 잘한다는 자꾸 하다 보면 잘하게 되는 거고, ‘한다’가 반복되어야 ‘잘한다’가 돼.” 서로 격려하며 완성된 나전칠기 컵받침은 작은 조각이 모여 아름다운 작품으로 거듭났다. 이들의 추억도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차곡차곡 쌓인 가족의 행복을 통해….

1박 2일
여행을 마치고
김기화 (전 연암중학교 교장)

40년간 교직 생활을 열심히 했더니 한국교직원공제회에서 큰 선물을 주었네요. 여행은 장소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편견을 바꾸는 시간이라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가족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1박 2일을 함께하다 보니 가족과의 유대감도 더 깊어졌고요. 행복을 넘어 환상적인 시간을 보낸 여행이었습니다.

남편 서종수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것 같은 여행이었습니다. 가정을 이룬 아들과 여행을 하니 든든하기도 하고 대견한 마음이 들더군요. 며느리 보면 좋다던데, 정말 은주가 집에 들어오고 웃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니 그 어느 때보다 기억에 남겠네요.

아들 서정국 (울산고등학교 체육교사)

<아름다운 동행>에 우리가족이 나온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전국의 선생님들이 볼 걸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죠. 좋은 기회가 되어 온 만큼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간 마음속에 있는 말을 잘 꺼내지 못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시간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며느리 이은주 (천상고등학교 특수교사)

이번 여행을 통해 부모님과 좀 더 가까워졌고, 아버님 어머님이 소소한 것에도 아이처럼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행복의 기쁨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앞으로도 가족의 행복 빈도를 늘려갈 수 있는 딸 같은 며느리가 될게요.

가족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 박경리기념관

    박경리 선생의 고향으로 선생문학에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한 고향 통영을 소개함으로써 선생의 문학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건립된 기념관이다.

    055-650-2541~3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
  • 통영 케이블카

    통영 미륵산에 설치된 통영 케이블카는 그 길이가 1975m로 국내 일반관광객용 케이블카 중에서는 가장 길며, 아름다운 통영항과 한려수도의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544-3303 경남 통영시 발개로 205
  • 동피랑

    경상남도 통영시 동호동, 정량동, 태평동, 중앙동 일대의 언덕 위 마을로, ‘동피랑’이란 이름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이다. 마을 담벼락마다 그려진 형형색색의 벽화가 눈길을 끈다.

    055-650-0580 경남 통영시 동호동 동피랑로
  • 나전칠기공방 ‘지향’

    옻칠과 자개로 생활소품을 만드는 통영 나전칠기공방.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내어 기물의 표면에 감입시켜 꾸미는 나전칠기체험이 가능하다.

    010-8581-8193 경남 통영시 서호시장길 55 서호아파트상가 124호

services s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