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공간의 재구성

공간으로 만드는
지속가능한 성장

경남 통영 제석초등학교 지난해, 통영의 제석초등학교는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내내 분주했다. 전국 90개 기관에서 찾아온 1천여 명의 손님들이 공간혁신을 이루었다고 소문난 이곳에 너도나도 발걸음을 한 덕분이었다. 변화된 공간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끌어내며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 제석초등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 글. 이경희
  • 사진. 김도형

  • 학생들이 영화를 보거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무대형 돌봄교실
  • 등굣길의 보도블럭, 학생들이 직접 글과 그림으로 타일을 만들었다.
배움의 시작은 등굣길부터

봄이 한껏 내려앉은 통영 제석초등학교의 등굣길은 그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한꺼번에 학생들이 몰려도 넉넉하게 걸을 수 있는 폭, 학생들이 직접 그린 아기자기한 벽화, 캐릭터 보도블록까지 이 모든 것들이 방문객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석초등학교가 처음 문을 연 시기는 2015년 3월. 18학급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42학급으로 지속적으로 학생 숫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에게도 가고 싶은 학교로 꼽히는 곳이다. 경상남도 통영시에 자리잡고 있는 제석초등학교가 전국구로 이름을 얻게 된 데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다.
그중 교육부가 5개년 사업으로 공간혁신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와중에 공모사업을 통해 색다른 공간혁신을 이루어 낸 것은 제석초등학교를 설명하는 가장 큰 이유다. 방문객들이 지나온 등굣길 역시 그러한 작업의 하나로 확 바뀐 곳이다. ‘안전한 통학로’라는 말은 교육 관계자들이라면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자주 들었던 단어겠지만 사실 그건 어른들 시각에서의 ‘안전’이었고, 학생들의 시각으로 통학로를 만들어보겠다는 시도의 산물로 이 예쁜 통학로가 탄생한 것이다.
“통영의 10개 기관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시민단체, 의회, 시청, 경찰서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학생들이 다니는 길을 함께 걸었어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찾아내고 가능한 것들은 그 자리에 모인 시 담당자에게 말해 바로 수정을 하도록 했지요.”
당연히 통학로의 주인공인 학생들의 의견도 들어갔다. “비가 오면 보도블록 사이에서 물이 나와서 힘들어요”, “통학로에서 알뜰시장도 열었으면 좋겠어요”,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좋겠어요!”
이종국 교장은 이 같은 학생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고, ‘배움의 시작은 등굣길부터’라는 자신의 철학을 실천했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 차량 속도제한 ‘30’을 표기한 숫자가 선명하게 쓰여진 노란색 배낭을 메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학생들의 등굣길 지킴이 역할을 하는 이종국 교장의 모습은 이곳 주민들에게 이제 흔하디 흔한 일상이 되었다.

  • 알록달록 예쁜 제석초의 돌봄교실은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좋아하는 공간이다.
  • 자발적 참여와 회의를 통해 학교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제석초 교육공동체들(학생·학부모·교직원)의 회의공간
  • 교장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학생들의 활동 과정들
  • 학생들·교사·학부모들 모두가 오고 싶어하는 곳, 제석초등학교 전경
학습·놀이·쉼이 담긴 돌봄교실

등굣길이 실외 공간이라면 교내에는 ‘돌봄교실’이 있다. 모든 학교에 다 있는 돌봄교실이 이곳에서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가 처음 부임해 왔을 때 돌봄교실은 2층에 2개실, 3층에 1개실이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학교는 계속 학생 숫자가 늘고 있어서 교실이 부족하던 때였는데 ‘왜 돌봄교실은 오전에는 잠가 놓고 오후에만 쓰는 걸까?’하는 의문을 가졌지요. 또 2층과 3층으로 나누어져 있어 효용성이 떨어지고, 외부인 출입이 완벽히 통제되지 못하는 문제점도 갖고 있었어요.” 돌봄교실의 변화는 그런 의문에서 시작했다. 교직원들은 전국에 소문난 학교를 돌면서 벤치마킹을 했고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리모델링 공모사업에 응모한 결과, 돌봄교실 4실에 실내놀이터까지 총 5개의 공간이 만들어졌고, 그 쓰임새는 모두 달랐다. 미술 같은 표현활동을 할 수 있는 교실, 생각과 독서가 가능한 독서형 교실, 보드게임 등을 중심으로 한 놀이형 교실, 영화를 관람하거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무대형 교실, 그리고 복도의 놀이터는 환하고 유쾌한 공간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또, 오전에 돌봄교실의 문을 잠가두는 대신 학생들의 학습공간으로 활용했는데 이는 교사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고, 돌봄교실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학습·놀이·쉼을 한 번에 담은 돌봄교실에 대한 호응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돌봄교실 때문에 제석초등학교에 오고 싶다”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왔다며 이종국 교장이 말을 덧붙였다. 말 그대로 ‘꿈틀꿈틀 잼(jam–e)터’ 돌봄교실의 힘이었다.

  • 미술 같은 다양한 표현활동을 할 수 있는 돌봄교실
  • 가상현실 스포츠실은 VR을 이용해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 생각과 독서가 가능한 돌봄교실, 벌집형 구조는 학생들에게 자발적인 독서욕구를 불러일으킨다.
  • 전 학년이 참여하는 아름드리 텃밭은 학생들의 정서를 함양시킨다.
  • 제석초등학교 내의 포토존. 쉬는 시간이면 학생들이 몰려드는 장소다.
제석초등학교의 공간이 놀라운 이유는 하나다.
아름답고 깨끗한 새 공간이라는 의미를 뛰어 넘어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움직이는 활동을 이끌어내고
지속성장이 가능하게 하는 ‘살아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공간의 변화, 학생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내다

제석초등학교가 변화한 곳은 돌봄교실뿐만이 아니었다. 전 학년이 참여하는 도시텃밭, 작은 운동장을 배려해 교내에 마련된 4곳의 체육실 또한 학생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디지털시대에 부합하는 가상현실 스포츠실은 특히나 학생들이 가장 재밌어하는 공간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의 변화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종국 교장의 평소 철학이 “학생들은 무엇이든 해볼 수 있어야 한다”인 만큼 이 모든 공간들은 학생들의 꿈과 호기심을 펼칠 무대이자 도전 장소가 됐기 때문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었고, 교육과정과 연계된 30여 개의 동아리 활동은 학생들이 학교의 공간을 자발적으로 활용하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그 안에서 학생들이 적극성과 창의성을 유감없이 펼쳤는데,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담긴 공간인 만큼 주인의식과 책임감 또한 남다른 점이 특히 눈에 띄었다고.
“우리 학교는 공간연수도 많이 하고 페스티벌도 많이 개최합니다. 학생들 스스로 게릴라콘서트를 개최한다며 학교 곳곳에 포스터를 만들어 붙이기도 하고, 자치회를 통해 공간을 이용하는 규칙을 스스로 정하기도 하죠. 고학년들이 저학년을 위해 직접 동화책을 만들어 읽어주고, 학부모님들의 봉사활동도 학교생활 안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석초등학교의 공간이 놀라운 이유는 하나다. 아름답고 깨끗한 새 공간이라는 의미를 뛰어 넘어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움직이는 활동을 이끌어내고 지속성장이 가능하게 하는 ‘살아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등굣길을 걸어 등교하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표정은 환하디 환하다. 자율성과 도전정신을 존중받는 곳.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자신감을 학교 내에서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만들어지는 공간에서 활용되어지는 공간까지, 잠시도 고민을 그치지 않는 제석초등학교 교직원들과 학생들. 관찰과 선택, 집중을 통해서 미래사회에 걸맞은 인재를 길러내는 이곳은 이미 통영시, 경상남도 바깥으로 훨훨 날아오르고 있었다.

  • 깔끔하고 널찍한 보건실 또한 학생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 돌봄교실 앞의 실내놀이터. 학생들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 최적의 공간이다.

services s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