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55] 인생 2모작

쉰아홉 살 우리 꿈은
행복한 지구별 여행자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며 살아요.” 신양란 작가는 몸을 뒤로 젖히며 깔깔깔 웃었다. 웃음의 전염력은 세다. 그녀가 웃으면 오형권 사진작가도 어김없이 따라 웃었다. 봄기운에 이끌려 새순이 올라오는 모양조차 재미있다는 듯 부부는 계속 웃음을 쏟아냈다. 쉰아홉 살 지구별 여행자 부부의 노후 준비물은 웃음이 반이다.
  • 글. 이성미
  • 사진. 김도형

신양란&오형권 작가 부부
책은 까다롭게 쓰여야 한다. 지금도 필요하면 아무리 먼 나라라도
몇 번씩 다시 방문한다. 절대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글이나 희미한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다. 쉽고 재미있게, 하지만 정확하게 기록하고 말하는 것은
‘교사’라는 직함을 내려놓은 후에도 절대 버리지 않는 철칙이다.
가난한 교사 부부, 여행의 매력에 빠지다

신양란 작가는 일찍이 시조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지금은 여행 작가로 더 유명하다. 2014년 「가고 싶다,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2019년 「가고 싶다, 빈」까지 총 7권의 지식 여행 시리즈를 펴낸 까닭이다. 남편 오형권 사진작가와 함께 만들어낸 이 책들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여행 인문 서적으로 인기가 높다. 지금 두 사람과 여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그러나 신혼 때만 해도 부부는 자신들이 여행 작가로 살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신혼여행도 국내로 다녀왔어요. 결혼 후에도 ‘우리 형편에 무슨…’이라는 생각에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 냈고요. 그러다 제가 2003년에 우수교사로 선발되어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연수를 가게 되었죠. 눈에 보이는 풍경이 너무 새롭고 좋으니까 아내 생각이 계속 나더라고요. 그래서 싫다는 아내를 설득해 이듬해 2월 봄방학 때 방콕으로 부부가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어요.”
생애 첫 해외여행은 이들 부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첫 여행에서 크게 감동한 신양란 작가는 돌아오자마자 영어회화 학원에 등록했고, 기회만 생기면 여행 가방을 쌌다. 2004년 한 해에만 부부는 첫 동반 여행을 포함해 총 다섯 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이국적인 풍광이나 정취도 좋지만,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문화재도 책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가서 보는 것이 너무 달라 놀라웠고요. 자연스레 여행에서 얻은 지식과 감동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도 여느 관광객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만 주목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가 학생들에게 본 것을 나눠줄 생각을 하니 작은 돌부리 하나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어떤 풍경이든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겹쳐 보여서 살아있는 교육 자료로 느껴졌다. 신양란 작가가 여행지에서 본 것을 부지런히 기록하는 동안, 오형권 사진작가는 촬영을 맡았다.

엄마는 나중에 크면 뭐가 될 거야?

여행의 감동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픈 마음은 책 출간에 대한 욕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여행 작가로서는 인지도가 없어서인지 함께 하자는 출판사가 없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았던 전자책 시장에 먼저 뛰어들었고, 2012년 「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을 출간했다. 시인의 눈이 필요할 때는 시인으로, 중학교 교사의 눈이 필요할 때는 교사로, 여행 인문학 강사의 눈이 필요할 때는 인문학자로 카멜레온처럼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책의 맛을 살렸다. 그렇게 ‘이야기 따라 OO 여행’ 시리즈가 연이어 탄생했다.
부부의 영향으로 “선생님처럼 여행 작가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전자책을 통해 여행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질 무렵, 출판사로부터 정식으로 종이책을 출간해보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집필을 시작했고, 2014년 7월에 ‘색다른 지식 여행’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가고 싶다, 바르셀로나」가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신양란 작가에게 새로운 꿈으로 더 빨리 달려가게 하는 첫차가 되어주었다. 한편, 아들이 무심코 던진 질문은 가속 페달을 밟게 했다.
“어느 날 둘째 아이가 저에게 ‘엄마는 나중에 크면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었어요. 국어 교사이자 시조 시인으로 살면서 ‘이만하면 됐다’ 싶었던 제게는 그 질문이 꽤 충격적이었죠. ‘아,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뭐가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그 질문 덕분에 저는 지금도 끊임없이 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 살고 있어요.”
책 출간 후 여행과 관련된 강의 요청이 계속 이어졌다. 국어교사냐, 여행 인문학 강사냐, 진로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끝에 결국 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책의 첫머리에 썼던 작가 소개의 말도 바꾸었다. 첫 책에는 “시조 시인이며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수석 교사이다. 인생 전반전을 대한민국의 국어교사로 보낸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인생 후반전에는 여행 작가 겸 교육 여행 컨설턴트로 뛸 채비를 하고 있다”라고 적었다.
그것이 현실이 되었으니, 교단을 떠나 완전히 여행 작가로 전업한 뒤에는 다른 포부를 담고 싶었다. 그래서 다섯 번째 책에는 “인생 전반전을 대한민국의 국어교사로 살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교단을 떠났다. 인생 후반전에는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 계획이다”라고 적었다. 이것은 작가로서 자신을 소개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살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생 2막, 즐겁고 행복하게 삽시다

지금 신양란, 오형권 작가 부부는 오랫동안 교직 생활을 한 경기도 파주를 떠나 충청남도 금산의 작은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다. 건강 문제로 오형권 사진작가가 예정보다 일찍 퇴직을 하면서 물 맑고 공기 좋은 산골 마을에 터를 잡은 것. 요즘은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탓에 여유롭게 여덟 번째 책을 집필하고 있다. 올 한 해 농사지을 채소의 씨를 뿌리며, 산골 농부로서의 인생도 즐기고 있다. 앞서 말했듯 신양란, 오형권 작가 부부는 인생 2막의 모토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겠다’와 ‘그 삶을 부부가 함께 누리겠다’로 정했다.
물론 책을 쓰고 강의를 할 때는 느긋한 삶의 태도를 버리고 깐깐해진다. 책은 까다롭게 쓰여야 한다. 지금도 필요하면 아무리 먼 나라라도 몇 번씩 다시 방문한다. 절대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글이나 희미한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다. 쉽고 재미있게, 하지만 정확하게 기록하고 말하는 것은 ‘교사’라는 직함을 내려놓은 후에도 절대 버리지 않는 철칙이다.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고, 거기에는 어떤 의미와 이야기가 깃들여 있다’로 이어지는 것이 여행 인문학이에요. 그래서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정확해야 하죠. 글은 쉽고 재미있게 쓰고, 인생은 즐겁고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 우리 부부의 인생 후반전 목표입니다.”
신양란 작가는 동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가슴에 품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손주들이 생기면 할머니의 이름이 적힌 따스한 책을 선물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오형권 사진작가에게도 새로운 도전 과제가 생겼다. 시골살이의 즐거움과 요리의 노하우를 담은 책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것. 그들에게는 삶도 꿈도 모두가 오래 남을 책이 된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우주’라는 멋진 선물을 받는다. 그건 어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선물상자를 열어볼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쉰아홉 살 동갑내기 부부는 날마다 새로운 선물상자를 열어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때로는 지구별 여행자로, 때로는 여행 인문학 강사와 매니저로, 때로는 초보 농부로, 열어본 선물이 많은 만큼 부부는 웃을 일도 많고 얘깃거리도 많다. 그들의 산골 집에는 웃음만큼 환한 햇살이 넘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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