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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재구성

공간의 변화로
모든 변화를 꿈꾸다

풍동고등학교

대학 입시와 진로 선택을 목전에 둔 고등학교는 아주 오래된 건물이 아니고서야 공간을 바꾸기 쉽지 않다. 그래서 풍동고등학교가 버려진 공간을 확 바꾸었을 때 모두의 반응은 더 뜨거웠다. 아름다운 모양새만큼이나 그 쓰임에 집중한 풍동고등학교의 효용 높은 공간을 만나보자.
  • 글. 이경희
  • 사진. 김도형

  • 2층에 새롭게 꾸며진 스터디카페, 입구부터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 물씬 풍긴다.
  •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들이 뜻을 모아 새롭게 만든 홈베이스다. 곡선형 벤치까지 전부 짜서 맞춘 섬세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가장 바쁜 공간이 될 것이다.
공간 혁신을 위한 선택과 집중

풍동고등학교에 들어서자 사방을 채운 무성한 녹음이 마치 공원에 온 듯한 청량감을 안겨준다. 첫 발걸음부터 기분 좋은 곳, 풍동고등학교는 지난 2008년 첫 입학생을 맞았다. 현재 학년별로 각 10학급, 총 학생 숫자는 800여 명, 교직원 숫자는 90명여 명에 달하는 규모를 가진 이 학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인근 고교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후발주자이지만, 풍동고만의 고유한 색깔을 한창 쌓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혁신은 리더가 동의하거나 주도하지 않으면 빠르게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풍동고등학교의 공간 혁신 역시 최명순 교장의 선택과 집중이 없었다면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터였다.
“지난 3월 1일에 부임해왔을 때 둘러본 학교는 무척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꼼꼼히 안쪽을 살펴보니 내부 공간 구성에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기능적인 실용성보다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치중하다 보니 생긴 틈이었지요.”
학교라는 공간은 학생들이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유용한 공간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최명순 교장의 지론이었던 만큼 그는 교직원들과 의논하여 공간혁신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때마침 경기도 고양시에서 공간혁신 공모사업을 발표하면서 학교의 움직임은 더욱 바빠졌다. 교직원과 학생, 학부모까지 참여한 프로젝트팀이 꾸려졌고 학교의 핫플레이스 위치가 어디였으면 좋겠는지, 어떤 기능을 갖기를 바라는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며 학교 곳곳을 탐색했다. 나중에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전기기사, 건축업자까지 모두 회의에 동참했다니, 새롭고 편리한 공간을 향한 열망은 그만큼 뜨거운 것이었다.

버려진 공간이 유의미한 공간으로 바뀌게 되면서
최명순 교장이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하나다.
바로 공간의 변화로 인한 ‘사고의 전환’이다.
풍동고등학교 교직원들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이 공간에 종속되어
행동에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닌,
공간으로 인해 보다 다양한 사고와 재능을
펼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작지만 알차게 꾸며진 스터디카페는 오래 앉아있어야 하는 학생들을 위해 최고급 의자를 설치했다.
  • 홈베이스의 유리 벽면은 아이들의 작품을 이용해 갤러리로 꾸몄다.
  • 중앙현관 로비에서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풍동고의 비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공간

교내에서 핫플레이스로 낙점된 곳은 2층에 위치한 유휴 공간이었다.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공간이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으니 불필요한 물건들이 쌓이는 장소로 변했고, 말 그대로 학생들에게서 외면받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백문불여일견! 최명순 교장의 안내로 함께 그곳을 방문해 보았다. 들어선 순간 이곳이 버려진 공간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세련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복도를 가운데 두고 꾸며진 두 개의 공간 중 하나는 스터디카페다.
“야간 자율학습이 많이 활성화됐을 때는 5층의 교실 5개를 열람실로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는데 야간 자율학습이 없어졌어요. 지금은 적은 숫자여도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저녁때 학생들을 5층까지 보내기가 걱정되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이곳에 카페형 공부공간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더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게끔요.”
도서관을 두고 일부러 카페에 가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요즘, 이곳은 그야말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다. 학생들이 오래 앉아있어도 편안함을 느끼도록 아주 좋은 의자를 구입했다는 최명순 교장의 귀띔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난다.
메인 공간인 홈베이스는 세련되고 환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낮은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 앞에는 곡선형 벤치가 무대를 향해 둥글게 놓여있다. 오른쪽 벽면에는 책들로 가득찬 서가가 있고, 왼쪽 벽면에는 학생들의 미술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가 꾸며져 있다. 공연을 하거나 모임이 있을 때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홀딩도어를 설치했고, 무엇보다 3면 모두 유리벽으로 시공을 한 것이 눈에 띈다.
“여기서는 버스킹·토론·수업·댄스·노래 등 무엇이든 학생들이 원하는 걸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을 투명하게 만든 이유는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을 지향하고 시각적으로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조만간 빔 프로젝터를 구입해서 이곳에서 영화도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에요.” 최명순 교장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왼쪽)작은 냇물이 흐르는 잘 가꿔진 정원. 풍동고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힐링 공간이다. (오른쪽)작은 정원과 연결되는 안마당, 깔끔하고 관리가 편한 시원한 알루미늄 벤치가 무성한 나무와 잘 어울린다.
공간의 변화, 사고의 변화

이 홈베이스에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창가 아래 나란히 꽂힌 서가이다. 학교에 가면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책들이 특별한 이유는 여기 있는 책들이 모두 폐기 도서이기 때문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버려지는 책들이 아까워 이곳에 다시 꽂아두자 여기에서 책을 읽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읽다가 집으로 가져가도 상관이 없고, 대출하지 않고도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책과 학생들의 거리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또 다른 혁신인 셈이다. 버려진 공간이 유의미한 공간으로 바뀌게 되면서 최명순 교장이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하나다.
바로 공간의 변화로 인한 ‘사고의 전환’이다. 고등학교의 특성상 명문대 진학 여부로 그 이름을 평가하기 마련이지만, 풍동고등학교 교직원들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이 공간에 종속되어 행동에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닌, 공간으로 인해 보다 다양한 사고와 재능을 펼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4층에도 2층 홈베이스와 똑같은 공간이 있어요. 그곳은 3학년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진학탐구센터로 만들어보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또 3개 교실을 터서 도서관을 수업과 열람이 가능한 곳으로 만들어보려 하고 있어요. 저희는 색다른 경험과 체험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고, 길을 찾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학교 공간이 각각의 재능이 살아날 수 있는 토양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는, 새롭게 변모한 공간의 기적을 믿고 있는 풍동고등학교. 그 의미 있는 시도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방향키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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