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25] 그 쌤의 이중생활

분필과 카메라,
따로 또 같이

대호초등학교 박준호 교사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다. 앞뒤 잴 것 없이 좋아하는 일을, 비로소 업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박준호 교사에게는 영상 제작이 바로 그 대상. 엄밀히 따지자면 업은 아니나 본업인 교사로서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으로 담아내니 ‘덕’과 ‘업’의 교집합이 절묘하다. 영상을 기반으로 한 교육 콘텐츠 제작 공동체 ‘몽당분필’을 통해 교사, 학생, 학부모를 유쾌하게 잇는 박준호 교사 그리고 동료 교사들을 만났다.
  • 글. 정은주
  • 사진. 김도형

Teacher & Creative Director
취미와 일 사이에서 즐거운 균형 잡기

이토록 재기발랄한 선생님이라니.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재능을 태생적으로 탑재한 듯, 박준호 교사가 있는 자리에서는 다들 목소리가 반 톤쯤 올라간다. 그의 인생에서 ‘재미’를 지우면 아마도 온전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터. 대화는 ‘교사는 이래야 한다’는 통념을 지우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애초에 재미있는 일을 찾아내는 걸 좋아하는 캐릭터였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잠시 개그맨을 꿈꾸었고, 유튜브가 대중화되기 한참 전부터 교사이자 유튜버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만 봐도 짐작 가능한 대목이다.
“군대 동기로 만난 수원다솔초등학교 김상현 선생님과 꽤 오래전부터 연구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일상을 영상으로 담아보자는 결론에 도달했죠. 그저 재미있는 영상을 만들어서 즐겁게 살자는 소소한 목표였어요. 8개월 정도 준비 기간을 거쳐 2016년 7월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몽당분필’ 채널을 오픈했는데, 그즈음 함께할 1기 멤버도 꾸려졌어요.”
그렇게 선보인 몽당분필의 첫 영상은 ‘나는 초등학교 교사다’라는 주제였다. 그는 2분 남짓의 짧은 영상에 교사의 이상과 현실을 풍자하며 이 시대 교사에 관한 ‘오해’를 ‘이해’로 바꾸고자 하는 바람을 녹여냈다. 사실 몽당분필이라는 이름만 들여다봐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몽당’은 ‘짧다’를, ‘분필’은 ‘교사’를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분필이 짧아지도록 열정을 쏟은 교사, 이에 더불어 교사의 소진이라는 중의가 내포되어 있다.
“교육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함께 교육 현장에서의 업무도 늘어나고 있어요. 교사는 점점 소진되고요. 그래서 파급력이 빠르고 광범위한 영상매체에 우리의 생각을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기로 한 거죠. 대신 가볍고 재미있게요. 어떻게 하면 콘텐츠를 과자 먹듯 편하게 접하도록 만들 것인가, 그럼에도 임팩트 있게 그릴 방법은 무엇인가를 늘 고민해요.”

“학생들은 어른들과 달리 언어체계가
완전히 발달되기 전이기 때문에
다양한 매체로 정보를 투입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매체는 시대에 따라 바뀔 텐데요.
기술이 발전해서 바뀐다기보다,
당시 가장 효과적인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그게 영상이고요.
미래에는 AI·VR 등으로 또 발전하겠죠.”
영상으로 더 잘 통하는 사이

혼자였다면 엄두를 못 냈을 테다. 재미로 시작한 일에서 의미와 목표를 찾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다. 재능 많고 열정 넘치는 교사들이 모여 시너지를 내고, 또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지금의 몽당분필이 그래서 그에게는 더 특별하다.
“몽당분필이 시작된 2016년에 학생들은 이미 검색을 할 때 유튜브를 활용하고 있었어요. 어른들은 아직 포털사이트 위주였고요. 유튜브로 흐름이 넘어간 현재를 보면, 미디어에 접근해 활용하는 데 학생들이 어른들보다 빠르다는 게 읽히죠. 그러니 우리가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미디어에 교육을 접목해야 해요. 교육이 있는 곳에 학생들을 끌고 오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있는 곳에 교육이 다가가야죠. 몽당분필이 그 역할을 함께 해내길 바라고요.”
영상 콘텐츠가 하나둘 축적되고 내용과 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몽당분필의 파급력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교육현장에서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시대, 학생들도 텍스트보다는 영상을 더 친근하게 여기는 요즘, 영상매체와 교육의 접목은 자연스럽고도 필요한 흐름이라는 데 몽당분필 멤버들은 생각을 같이한다. 때문에 최근에는 교육 영상 제작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인터뷰에 함께 참여한 인천발산초등학교 이상권 교사는 특히 학생들 눈높이에 맞는 영상이 필요하다며 다양성에 관한 사례를 들려준다.
“기존에는 선생님들이 EBS에서 만든 영상을 많이 활용했어요. 그런데 영상 대부분이 중·고등학생에게 초점이 맞춰져 제작된 거라 초등학생들에게는 어려웠어요. 보여주려면 재편집을 하거나 부연설명을 해야 했죠. 초등학생들 눈높이에 맞는 영상이 필요해서 ‘사물함 정리하는 방법’ 같은, 사소하지만 교실에서 필요로 하는 영상이 나오게 된 거예요.”
역시 반응은 뜨거웠다.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교사들이 필요성을 느껴 만든 자료답게 구성부터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까지 현장성이 탁월했다. 수십 번 말로 설명할 일이 짧은 영상 한편으로 깔끔하게 정리가 됐다. 이에 함께한 김상현 교사는 초등학생 세대에게 가장 적합한 매체는 영상이라고 덧붙인다.
“학생들은 어른들과 달리 언어체계가 완전히 발달되기 전이기 때문에 다양한 매체로 정보를 투입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매체는 시대에 따라 바뀔 텐데요. 기술이 발전해서 바뀐다기보다, 당시 가장 효과적인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그게 영상이고요. 미래에는 AI·VR 등으로 또 발전하겠죠.”

왼쪽부터 박준호, 이민영(서울경인초), 이상권(인천발산초) 교사
결국엔 좋아서 하는 공부가 답

재미로 가볍게 시작한 일이 커졌다. 새로운 영상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게을리할 수 없다는 책임감도 묵직해졌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영상 편집기술을 알려주는 ‘몽당찰칵’,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만드는 ‘몽당책가방’, 학생 눈높이에 맞춘 계기 교육을 만드는 ‘몽당오늘’ 등 채널을 5개로 세분화했다. 채널마다 매월 서너 편의 영상을 제작하는 시스템이다. 협업이 기본이지만 여유 있는 스케줄은 결코 아니어서 당연히 개인적인 시간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박준호 교사는 아이디어를 짜고, 영상을 촬영하며 편집하는 과정이 무척 즐겁다. 힘들기는커녕 더 잘하고 싶다는 의지가 불끈 솟는다.
사실 지금은 영상의 재미에 푹 빠져 있지만 생초보였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다. 만들다 보니 매력을 느껴 파고든 게 지금의 수준까지 이른 셈이다. 유튜브와 구글로 공부하고, 더 나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다는 욕심에 주말도 반납하며 영상 제작 및 디자인 아카데미를 다녔다. 사실 이건 몽당분필 멤버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강요하는 사람 하나 없지만, 스스로 공부하고 발전하게 된다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어요. 교사가 많이 경험하고 배우는 건 그만큼 중요해요. 실제로 교사의 취미나 관심사는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이됩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시간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테고, 그림을 잘 그린다면 판서를 하더라도 남다를 거예요. 몽당분필 선생님들의 경우 일 년에 한두 번쯤은 수업에 아이들과 함께 영상 제작을 도입하겠죠.”
교사의 성장은 곧 학생들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이를 연수로 풀어내면 다른 교사들의 성장 기회로까지 확장된다. 그런 의미로 학습공동체는 교사에게 분명히 필요한 모임이라는 게 박준호 교사의 생각이다.
“저는 활동을 할수록 스스로의 정체성이 점점 흐려져 간다고 느껴요. 교사이자 유튜버, 교사이자 영상제작자니까요. 요즘 시대에는 다양성이 많아질수록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릴 적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방송의 개념이 넓어져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출연할 수 있게 됐으니 유튜브 덕분에 꿈도 일부 이루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세상과 늘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열정적인 교사들의 취미·배움 활동에 관한 걱정은 말자. 다양성과 포용력, 호기심과 색다름이 세상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법이니까. 이 순간에도 학생들을 위해 유익하고, 재밌는 아이디어를 발견하려 눈을 반짝이는 박준호 교사 그리고 몽당분필 멤버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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