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The–K 혁신 인터뷰

365일 24시간,
사랑이 더 큰 사랑으로 이어지다

부산 해강초등학교 김일영 교사 “교육이란 교사를 필요로 하는 학생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김일영 교사는 힘주어 말한다. 50여 년 전, 학생이었던 일영이 선생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교육 철학이다. 교사가 되어보니 더욱 잘 알 것 같다. 도움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무엇 하나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도. 과거로부터 연결된 교사의 사랑은 학생들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고 있다.
  • 글. 이성미
  • 사진. 김도형

13살 학생들의 가장 든든한 친구 하나공쌤

“선생님을 만나 교사라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은 꿈을 이루는 데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요, 눈으로 겉면을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내면을 보는 따뜻한 안경 같아요.”
“선생님께 첫 마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곰곰이 생각하다 떠올랐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일영 교사의 문서함에는 학생들이 보내온 편지가 가득하다.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묻는다면, 대답 대신 보여줄 수 있는 삶의 흔적이다. 그 편지를 김일영 교사는 읽고 또 읽었다. 학생들이 보내준 편지는 아픔과 싸울 때 그를 버티게 한 힘이었다.
김일영 교사는 2008년부터 퇴직하기까지 연이어 6학년 담임만 14년째 맡고 있다. 2019년 5월 대장암 판정을 받아 잠시 교정을 떠났던 그는, 올해 학교로 돌아와서도 다시 6학년 담임을 맡았다.
“아직 암이 완치된 것은 아니고 지금도 치료 중이에요. 올해 1년만 하면 정년퇴직인데 복직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명예퇴직 신청을 하라면서 말렸어요. 그래도 학교로 돌아온 이유는 ‘꼭 나아서 돌아오세요’라는 제자들의 간청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6학년 담임을 고집하는 이유는 이때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매우 상징적인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6학년은 인생의 첫 터닝 포인트이자, 저학년 때부터 쌓여온 상처가 곪아 터지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이의 상처는 힘이 세다. 왕따를 만들고, 자존감을 바닥으로 내몬다. 어른이 되어서도 피해자의 발목을 잡으며 또 다른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 누군가는 상처 난 뿌리를 잘라줘야 한다. 위로와 사랑으로 상처를 봉합하고, 더 나아가 숨은 재능까지 발현할 수 있도록 싹을 돋아주어야 한다. 김일영 교사는 그 일을 자신이 하겠노라 마음먹고 지금껏 6학년 담임을 도맡아 왔다.
지금은 대상을 6학년으로 특정했지만, 그는 더 오랜 시간 수많은 학생의 아픔을 보듬으려 애써왔다. 2008년, 김일영 교사는 집 거실에 본인의 이름을 따서 ‘하나(일)공(영)센터’ 를 만들었다. 그리고 가정에서 부모의 돌봄을 받기 어려운 학생을 직접 데려와 먹이고 재우며, 과학을 전공한 지인을 초빙해 공부시켰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직접 후원자를찾아 연결해줬다. 왕따, 폭력으로 고통받은 학생은 가해학생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을 수 있게 도왔다.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이 도자 공예에 재능을 보이자 공방을연결해주는가 하면 전시회도 열 수 있게 돕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그 사랑을 이어갔다.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 제자들에게 고민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그에게 연락하게 했다. 한 아이라도 더 돌보기 위해 승진도 포기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쉴 틈이 없었다. 온종일, 오롯이 그는 교사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김일영 교사는 부산 지역 교사로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공무원상’을 받았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서 사람이
가르쳐야 합니다. 학생과 눈을
마주치며 필요로 하는 걸 찾아주고,
마음을 챙겨주는 것이 바로 교사의
역할이에요. 이것은 인공지능(AI)이
절대 못 하는 일입니다.”
교사의 사랑은 대물림이더라

대한민국 공무원상 수상 소감으로 김일영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외롭고 힘들었던 제게 큰 힘이 되어주셨던 분이 선생님이었습니다. 저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찾아 도와준다면, 그 아이도 저처럼 건강한 사회인으로 크지 않을까 생각해 교사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림에 보탰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11살이었다. 제자의 야무진 구석조차 못내 마음 아팠던 당시 담임인 이학정 교사는 다른 학생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그에게 슬쩍 간식을 챙겨주곤 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육성회비, 시험지 값 등을 학교에 내야 했어요. 저는 형편이 어려워 항상 제때 못 냈는데, 선생님은 한 번도 저를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학교를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두 분이 하시는 말을 듣고 선생님의 사랑을 알았죠.”
어머니는 돈이 생기자마자 학교로 달려와 밀린 돈을 갚으려 했지만, 이학정 교사는 어머니를 달래며 말했다.
“어머님, 제가 일영이 하나쯤은 도울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약속대로 이학정 교사는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안팎으로 챙겼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학교로 돌아온 김일영 교사는 은사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아닌, 제자에게 대물림 하는 방법으로 그 사랑을 갚아나갔다.
사랑은 전염성이 강하다. 학생들에게 헌신하는 김일영 교사를 보고, 그를 돕겠다는 사람들도 차츰 늘어났다. 지인부터 제자들까지, 재능기부부터 금전적 기부까지, 도움이 필요한 곳마다 사람들이 두 팔을 걷고 나섰다. 42년 전, 첫 제자였던 이들도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그에게 힘이 된다.

AI 시대,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교사의 ‘교감’

혹자는 미래에 ‘학교’라는 공간과 ‘교사’라는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일영 교사는 강하게 고개를 젓는다.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교사를 필요로 하는 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학생의 눈을 보고 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구조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은 오직 교사만이 할 수 있다. 그것은 지식일 수도, 심적 고통을 해소하는 일일 수도 있다. 학습 향상을 돕는 것은 모든 학생에게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부분이고, 학생들의 심리적 고통 해소를 돕는 것은 학생을 보고 교사가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서 사람이 가르쳐야 합니다. 학생과 눈을 마주치며 필요로 하는 걸 찾아주고, 마음을 챙겨주는 것이 바로 교사의 역할이에요. 학생, 나아가 부모와가족까지 보듬어야 하고요. 이것은 인공지능(AI)이 절대 못 하는 일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어떤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그 역시 교사로서 그 철학을 지키는 데 온 힘을 써왔다. “그래”, “맞아”, “잘했어” 지금도 김일영 교사는 학생들의 말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학생들의 눈빛, 행동, 목소리 등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말해주는 단서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온라인 수업을 자주 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교실에서 수업받는 생생한 느낌을 주고자 그는 의자에 앉지 않고 계속 서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스승의 은혜’ 가사를 김일영 교사에게 맞춘다면, 아마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언제 어디서나 내 곁에 있네.”
올해 교사로서 마지막 제자들을 맞이한 그는 ‘일반 교사’에서 ‘평생 교사’로 나아가는 관문에 서 있다. 김일영 교사도 학생들처럼 6학년이다. 교직 생활을 졸업하고 나면, 그는 세상이라는 넓은 교실로 나가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달려갈 계획이다. 다음 세대로 그의 사랑을 물려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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