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이렇게 바꿔요

이렇게 바꿔요

| 흠집 나사 막노동 | 일상 속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 속에서도 우리말이 아닌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되는 공사 현장에서도 일본어가 흔히 사용된다. 특히 그 의미가 일본어 자체로 남아 마치 한국어처럼 쓰이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소중한 회원 의견을 기반으로 기획된 「이렇게 바꿔요」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일본어식 표현 등 외래어를 올바른 우리말로 바로잡고자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 글. 최태호(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기스난 게 아니고 ‘흠집’이네요

이전에 대학생들에게 우리말에 관해 조사한 적이 있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일본어 중 우리말로 알고 있는 것이 바로 ‘기스’였다. 보통 어디 상처가 나거나, 자동차가 찌그러져도 모두 ‘기스났다’라고 표현했다. 학생들 대부분은 그것이 한국어인 줄 알고 사용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블로그에 들어가 봐도 “이거 기스난 것 같지만 기스 안 났어요”라고 당당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스크래치’가 맞는 말인데 ‘기스’라고 한다”고 표현한 것도 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냥 한국어인 줄 알고 무덤덤하게 쓰고 있는 표현이 아닌가 한다.
‘스크래치(scratch)’는 ‘크레파스나 유화 물감 따위를 색칠한 위에 다른 색을 덧칠한 다음 송곳이나 칼 같은 것으로 긁어서 처음에 칠한 색이 나타나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자동차에 물감을 칠하고 다시 긁는 것도 아닌데, 여기에 스크래치라고 표현하는 것은 의미에 맞지 않다. 우리말로 ‘흠집’이 났다고 하면 되는 것을 굳이 스크래치나 기스와 같은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네지를 버리고 ‘나사’를 돌리자

공사장에서는 아직도 일본식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충남 금산에는 농공단지가 있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다. 그들은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한국어 연수과정을 거치고 현장에 배정되는데,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단어와 한국어 연수 때 배우는 단어가 달라서 힘들었다는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곳이 공사현장이었다고 한다.
분명 연수받을 때는 정밀한 작업에 쓰는 도구를 ‘롱 노우즈 플라이어’라고 배웠지만, 막상 공사 현장에서는 ‘마루뺀치’라고 하는 식이다. ‘나사(螺絲)’를 현장에서는 ‘네지(ねじ)’라고 부르고, ‘드라이버’를 ‘네지마시’라고 한다. ‘소라’처럼 생겨서 일본어로는 ‘네지’라고 하지만, 우리말로는 ‘소라처럼 생긴 가는 못’이란 뜻으로 ‘나사’라고 한다. 그러므로 한자어지만 우리말인 ‘나사(나사못)’라고 쓰는 것이 맞다.
그런데 드라이버는 또 ‘네지마시’라고 하니 외국인 노동자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아니면 ‘도라이바’라고 한다. 발음도 엉망이지만 나사와 의미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 ‘드라이버(driver), 나사못을 돌려서 박거나 빼는 연장’은 적당한 한국어가 아직 없다. 그래서 외래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지마시’는 외래어도 아니니 ‘드라이버’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

노가다가 아닌 ‘막노동’해요

아직도 일본어를 그대로 쓰는 표현 중의 하나가 ‘노가다’일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시내의 공사장에 가서 일하고 돌아오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노가다’라고 불렀고, 사용하는 언어 중 대부분이 일본어의 잔재였다. 무대뽀, 잔업, 니꾸샤꾸, 겐세이 등등 거의 일본어를 사용했다. 물론 뜻이야 대부분 알아듣겠지만, 우리말로 표현해도 충분한데 굳이 일본어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올바른 우리말을 써서 “공사장에서 막일(막노동)을 했었습니다”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직도 우리 실생활 속에는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이제는 자제하면서 우리말로 바로 잡아야 할 때가 됐다. 실제 생활 언어부터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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