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55] 인생 2모작

제주에서 뭐하맨?
혼디 살아갑쪄*
*제주 방언으로 “제주에서 뭐 하십니까? 함께 살아가요”라는 의미다.

폴개협동조합 대표 강명실 회원

감귤 농사가 마무리되자 진짜 봄이 왔다. 사실 봄은 진작 도착해 있었지만, 감귤 따기 바빠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감귤 농사가 끝났다고 제주의 한 해 농사가 다 끝난 것은 아니다. 특히 강명실 회원은 귀농하는 사람들의 꿈 농사도 지어야 한다. 꿈 농사꾼 강명실 회원의 밭은 사계절 수확이 한창이다.
  • 글. 이성미
  • 사진. 김도형

육지 사람, 섬살이를 꿈꾸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에는 귀농 귀촌인으로 이루어진 ‘폴개협동조합’ 이 있다. 조합의 대표는 ‘육지’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강명실 회원이다. 강명실 회원은 1983년 여주 대신초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해 학생들에게 바른 생활과 성실함을 강조하는 엄격한 선생님으로 27년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밥 굶는 아이, 집안 사정이 어려운 아이가 있으면 한 번씩 더 뒤돌아보는 속정 깊은 선생님이었다. 그러다 2010년, 김포 양도초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마감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나이에 퇴직하는 것이 낫다며 자신을 다독였다.
퇴직하고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몇 년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다가, 일이 끝나갈 무렵 때마침 자녀들까지 유학길에 오르자 그는 남편과 함께 바라던 제주살이를 시작했다. 제주에서 무얼 할지 정해놓은 것은 없었지만, 우선 내려왔다. 제주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방이 귤 밭이고 일터인데, 두 사람이 일할 데 하나 없을까 싶었다. 하지만 없었다. 손놀림이 서툰 초보 일꾼을 써줄 데는 더욱더 없었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제주살이의 로망을 실현하며, 탱자탱자 지냈다. 그러다 은행에서 스승을 만났다.
“은행에서 순번을 기다리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가 ‘뭐 하고 사느냐?’ 물으시더라고요. ‘그냥 놀아요’ 대답했더니 호통치셨어요. ‘젊은 게 논다’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래, 내가 앞으로 30년은 살 텐데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다’ 싶었죠.”
제주에서 뭘 할까? 농사를 짓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농사는 정년이 없었다. 크게 지을 것 없이 두 식구 입에 들어가고, 오는 손님 손에 쥐여 보낼 것 정도만 수확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초보 농사꾼에서 농사꾼의 선생님으로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현실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사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몸으로 부딪치기 전에 펜을 집어 들었다. 귀농 교육을 받기 위해 하루 두세 번씩 한라산을 넘어 다녔다. 1년간 교육을 받은 시간만 1,000여 시간에 달했다.
귀농에 관해 공부하면서 강명실 회원에게 사랑해야 할 사람 들이 먼저 보였다. 귀농을 결심했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든든한 인큐베이터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강명실 회원은 귀농 귀촌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 ‘폴개협동조합’을 세웠다. ‘폴개’라는 이름은 강명실, 장기철 대표 부부가 제주에 처음 내려와 정착한 마을(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의 옛 지명이다. 즉, 그들의 ‘초심’과 닿아있는 말이다. 폴개협동조합은 농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귀농인이 농업을 제대로 활용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전국 각지의 기관을 방문해 정년을 앞둔 사람들에게 귀농 강의도 한다. 강명실 회원은 똑똑한 농사꾼을 길러내는 선생님인 셈이다.
또 ‘폴개’라는 말은 발음상 ‘팔다’라는 제주 방언 ‘폴다’에 어미 ‘–게’를 붙여 ‘팔자’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1차 산업인 농업, 2차 가공산업 및 3차 서비스업을 융합해 농촌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6차 산업에도 부합하는 말이다. 실제로 폴개협동조합에서는 농산물을 활용해 다양한 가공식품을 생산 및 판매한다. 또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아이들은 이곳으로 와 과일도 따고, 수확한 과일로 케이크도 만들어 먹고, 비누와 수공예품도 만든다. 강명실 회원과 교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인 모양이다. “제가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봤자 프로 농사꾼에 견줄 수 있나요? 그러니 저는 제가 잘하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해야죠.”
농사를 짓고 조합을 만들면서, 자연스레 처음 1년으로 잡았던 제주살이의 유효기간은 사라졌다. 수익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에 오히려 농사는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나 완전히 제주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제주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강명실 회원은 지역 모임을 찾아다녔다. 농장주를 대상으로 하는 전문가 교육장에 찾아가 “수료증은 안 받아도 좋으니 청강만 하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그렇게 농사에 베테랑인 농장주들을 만나 교류했다. 지역 내 복지시설과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봉사도 꾸준히 했다. 결국 지금은 4년 넘게 주민자치위원회에 참석하는 진짜 제주 주민이 되었다. 강명실 회원은 제주에 정착하려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라’ 고 조언한다.
“제주를 잠시 살다 가는 곳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제주 사람들도 뭍사람에게 곁을 주려 하지 않고요. 따라서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 제주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농촌은 과거의 시골 모습을 하고 있지만,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완벽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온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 동안, 아이들은 한 울타리에서 함께 자라고,
노인들도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보육 걱정, 부양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운 제주살이, 다시 꿈을 꾸다

현재 강명실 회원은 조합원 12명, 직원 10명과 함께 조합을 일군다. 직원 중에는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도 있다. 또 강명실 회원처럼 제주살이에 대한 꿈을 품고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부푼 꿈을 안고 제주에 왔다가 실패를 안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강명실 회원은 그들에게 제주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놀러 온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제주에 대한 추억을 가득 안고 가고, 일하러 온 어른들은 그들대로 제주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안고 돌아가길 바란다. 그렇게 자신의 재주인 농사와 교육을 계속 좋은 곳에 쓰고 싶은 마음이 크다. 마음이 큰 만큼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에 폴개협동조합은 농림축산식품부 ‘유기농’ 인증과 ‘GAP(우수관리인증)’, ‘농촌융복합산업 인증사업자’를 획득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대한 민국 대표 농장 스타팜’과 제주 사회적경제 지원센터 ‘제주 사회적경제 성장 지원 사업자’, ‘제주형 사회적 농업 사업자’ 등으로도 선정됐다.
착한 농사꾼으로 인정받았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은 많이 남았다. 믿고 아이를 맡기고, 믿고 부모를 맡길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 그렇게 해서 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것이 강명실 회원이 제주에서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다.
“농촌은 여전히 과거의 시골 모습을 하고 있지만,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완벽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온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 동안, 아이들은 한 울타리에서 함께 자라고, 노인들도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보육 걱정, 부양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여행과 일상, 꿈과 현실이 공존하는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운 제주. 이곳에서 강명실 회원도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운 노후를 꿈꾸고 있다. 자신을 닮은 이 땅에서 그는 계속 제주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혼자가 아닌 혼디(함께) 살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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