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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23 Vol.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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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학교

뿌리깊은 자존감을 심어주는 전통문화 교육
탈춤 속 진짜 ‘나’를 찾아갑니다

가평 설악중학교 곽종화 교사·김은주 강사
흥겨운 가락에 맞춰 붉은 탈을 쓴 아이들이 춤을 추고 연기를 한다. 학교 행사에서 어쩌다 한 번 무대에 올리고 마는 장기자랑이 아니다. 가평 설악중학교에 봉산탈춤반이 생긴 지도 어느덧 20여 년. 아이돌 춤만 즐길 것 같은 중학생들이 어떻게 봉산탈춤에 빠졌을까. 봉산탈춤 동아리를 지도하는 곽종화 교사와 김은주 강사는 ‘우리 것이 좋은 것’ 같은 익숙한 말 대신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에서 그 답을 찾는다.

정라희 / 사진 이용기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아이돌 춤 대신 봉산탈춤에 빠진 아이들

때는 2000년, 가평 설악중학교에 봉산탈춤반이 생겼다. 당시만 해도 따로 연습실이 없어 운동장을 누비며 연습을 했어도, 아이들은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운동장을 떠나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기존 동아리 학생들이 졸업한 후에도 봉산탈춤반의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이 줄을 이었다. 덕분에 봉산탈춤 이수자 김은주 강사는 햇수로 23년째 서울에서 가평까지 일주일에 두 차례씩 오가며 가평 설악중학교 아이들에게 봉산탈춤을 가르치고 있다.
“2000년도에 서울 삼성동에 있는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봉산탈춤 저녁반 강습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당시 가평 설악중학교 선생님 한 분이 퇴근 후 저녁 7시 수업을 받으러 왔어요. 지금이야 교통이 편해졌지만 그때는 몇 번을 갈아타야 삼성동까지 갈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부지런히 수업에 오시더라고요. 그러다 하루는 ‘우리 학교에 수업하러 와주실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더군요. 봉산탈춤반을 개설하고 싶다면서요. 차마 ‘못 가겠다’ 소리가 안 나오더라고요. 아이들도 이런 기회를 통해 전통문화를 접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수업을 하러 갔습니다.”
아이돌 춤에 익숙한 아이들이 봉산탈춤을 얼마나 좋아할까 의구심을 가진 것도 잠시, 아이들은 무거운 탈을 쓰고 연습하면서도 ‘싫다’는 말 한 번 꺼낸 적이 없다. 오히려 더 잘하고 싶어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들이 더 힘을 얻는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기 초에 진행하는 신규 부원 모집에도 기존 부원의 강력 추천으로 봉산탈춤반에 들어오는 학생도 다수다. 형제, 자매, 남매 등 가족이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2023년 1월 기준 봉산탈춤반 정규 동아리 부원은 15명, 방과후수업으로 추가 수강하는 학생도 4명이다.

자주 노출될수록 더 깊어지는 전통문화의 매력

한편 곽종화 교사는 2020년부터 봉산탈춤반 담당 교사를 맡았다. 부산에서 25년 동안 교편을 잡다가 2018년에 타도 전출을 지원하며 아무 연고 없던 가평으로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용한 시골 학교를 상상했으나, 실제 접한 학교의 모습은 달랐다. 전교생 200명 내외의 작은 학교임에도, 적극적인 교육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도시에서는 학생들의 학습에 학원 활동이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학교 활동이 모든 교육의 중심에 있어요. 진정한 학교의 모습을 여기서 새삼 재발견하게 되었죠. 공립학교이다 보니 교사들이 전근을 가면서 봉산탈춤반 담당 교사도 바뀌어왔습니다. 저 역시 이전 담당 교사의 휴직으로 공석이 된 동아리 담당 교사를 맡게 되었고요. 사실 처음에는 봉산탈춤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열심히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애정이 생겼습니다.”
코로나19로 공연과 연습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봉산탈춤반의 명맥은 끊어지지 않았다. 2019년 경기도 청소년종합예술제에서 특별상을 받은 가평 설악중학교 봉산탈춤반은 2022년에 같은 대회에서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대회 외에도 봉산탈춤반이 오르는 무대는 다양하다. 학교 축제와 총동문회는 물론 지역 행사에도 나서 흥을 돋운다.
“얼핏 ‘봉산탈춤’ 하면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계속 보다 보면 그 멋에 중독되는 것 같아요. 보통 중학생 앞에서 공연을 하면 휴대폰을 보거나 분위기가 산만해지는 경우도 많을 텐데, 봉산탈춤 공연을 할 때는 중학생 관객도 집중합니다. 아이들도 봉산탈춤의 맛을 아는 거죠.”
곽종화 교사는 봉산탈춤반 담당 교사를 하면서 “아이들이 봉산탈춤 같은 전통문화에 자주 노출되어야 우리 문화의 매력을 더 잘 알 수 있다”라고 말한다. 만약 학교 현장에서마저 이런 교육이 사라진다면, 자라나는 학생들은 전통문화를 접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 이는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공연을 통해 전통문화를 접하는 관중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우리 정서 담은 봉산탈춤, 함께 이어가는 길

여섯 살 때부터 한국무용을 전공한 김은주 강사 역시 대학교 1학년 때 선배들의 봉산탈춤 공연을 보고 그 자리에서 이 춤에 매료되었고, 1983년부터 지금까지 39년 동안 봉산탈춤 외길을 걷고 있다.
“봉산탈춤은 오래전 황해도 여러 고장에서 추던 탈춤의 한 종류입니다. 춤이 주류를 이루지만 대사를 비롯해 연기와 마임을 병행하고 노래도 부릅니다. 장구, 북, 해금, 대금, 피리, 태평소, 꽹과리, 징, 다라 등 삼현육각(三絃六角)을 사용 하고요. 풍자와 해학 넘치는 대사가 재미있어요. 그래서 봉산탈춤을 배우는 아이들이 더 즐거워합니다.”
처음에는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아이들도 어느 순간 기량이 훌쩍 늘어난다. 나중에는 학생들끼리 서로 동작을 봐주면서 완성도를 높여간다. 봉산탈춤을 지도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고무적인 일은 더 있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봉산탈춤을 익힌 학생들이 이후에 자발적으로 전통문화 전승에 뜻을 두고 봉산탈춤을 전공으로 삼은 것이다. 이미 가평 설악중학교 출신의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인 봉산탈춤 전수자와 이수자가 배출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이면 ‘각자 꿈 하나씩은 가져라’라고 응원합니다. 그런데 가끔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이 거꾸로 저에게 연락해 올 때가 있어요. 봉산탈춤을 하고 싶다고요. 그러면 저는 몇 번씩 상담합니다. 부모님도 만나고, 고등학교 선생님과도 함께 만나 면담을 해요. 그러고는 아이들에게도 묻습니다. 예술의 길은 어려운 길이라고, 몇 번씩 의사를 확인하죠. 이번 졸업생 한 명도 진로를 고민하고 있고요.” 개구쟁이 같던 학생들도 연습할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하게 소리를 하고 동작을 풀어낸다. 특히 봉산탈춤의 백미로 꼽히는 사자춤은 두 사람이 ‘앞사자’와 ‘뒷사자’를 맡아 공동으로 연기를 펼쳐야 하는데, 힘과 체력이 만만치 않게 드는 이 배역까지 뚝심 있게 해낸다.

다문화 학생들의 정체성을 찾아준 문화예술 교육의 힘

봉산탈춤반은 가평 설악중학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 학생들에게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특히 봉산탈춤 반 부원의 절반가량은 다문화 학생이다. 한국적인 봉산탈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화려하고 역동적인 춤사위는 인종과 문화를 너머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하다. 곽종화 교사는 “학생들이 성장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추측한다”라고 말한다. 자아 발견 같은 심오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봉산탈춤을 즐길 이유는 많다.
“오색찬란한 옷과 탈을 갖추고 군무를 추니 학생들도 봉산탈춤을 하면서 스스로를 멋지게 여깁니다. 탈을 쓰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즐거움도 있고요. 평소에는 내성적인 친구도 탈춤을 출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자기표현을 합니다.”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국내에도 다문화 학생 수가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 교육을 강조하는 데 의구심을 내비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곽종화 교사는 “다양한 문화권의 정체성을 지닌 각자의 문화가 상호 교류하는 것이 진정한 세계화라고 생각한다”며, “봉산탈춤과 같은 전통문화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세계화로 가는 길”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실제로 가평 설악중학교는 상호문화이해연구학교로 11년동안 활동하며 세계 각국의 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2023년부터는 다문화 학생을 위한 진학진로지도강화연구학교로 지정되어 새로운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어쩌면 ‘우리 것’이나 ‘옛것’의 경계도 어른들이 구분 지은 것은 아닐까. 그저 아이들은 봉산탈춤이 좋아 신명 나게 춤을 출 뿐인지도 모른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