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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23 Vol.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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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누기

에세이

초여름의 강강술래

송광용 교사

울산 신정초등학교 교사인 송광용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그는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행성B)이 있다.

불평하는 아이

체육 전담 교사로 한 해를 보내게 되었을 때, 3월이 지나기 전에 민수가 내게 처음 한 말은 이것이었다.
“선생님은 안 뛰나?”
내가 들으라고 한 말인지, 혼잣말인지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긴 어려웠다. 의도가 무엇이든, 그 말은 내 뒤통수에 꽂혔다. 운동장 체육 수업 상황이었다. 운동장에 나오자마자 민수는 다리가 아프다며 스탠드에 앉아 있겠다고 했다. 진짜 아픈 건지, 귀찮은 건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난 아이들과 체조와 스트레칭을 마쳤다. 민수는 내 등 뒤에서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준비운동 하는 걸 줄곧 지켜보고 있었다. 준비운동이 끝나자 난 아이들에게 천천히 운동장을 한 바퀴 돌라고 했다. 그날 단거리 전력 질주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몸은 조금 더 예열이 필요했다. 민수가 내 등 뒤에서 한마디 내뱉은 건 그 순간이었다. 그 말속엔 비난과 비꼼의 뉘앙스가 가득했다. “지금은 너희 몸을 준비해야 하거든” 이라며 좋게 타이르고 넘어갔다. ‘선생님은 앞으로도 네 시간을 더 해야 하는데, 매번 뛰면 쓰러지고 말 거야’라는 말은 속으로만 삼켰다.
그때부터 민수를 눈여겨보았다. 민수는 겉으론 조용해 보였지만 유심히 보면 말을 꽤 많이 했다. 그 말의 대부분은 불평불만이었다. 그중엔 선생님을 향한 것도 많았다. 예를 들어, 체력 측정을 할 때 ‘왜 남학생이 먼저 해야 하죠?’라며 짜증을 냈다. 주변 아이들에게도 그게 문제라는 듯이 말했다. 문제가 될 거라고 전혀 생각지 않은 일이었지만, 민수가 그게 부당한 일인 듯 얘기하기 시작하자 주변 아이들도 동요해 부정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나는 남학생이라서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번호 순서대로 하는 거라고, 그리고 모두가 할 것이므로 순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별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까지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다. 내가 설명할 때 민수는 마치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딴청을 피웠다. 그걸 보는 내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어느 체육 시간에, 난 아이들에게 학교스포츠클럽 탁구부원을 모집하는데 관심 있는 친구들은 선생님에게 신청서를 받아 가라고 안내한 적이 있었다. 그때 민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사요~ 안 사~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
민수는 주변 친구들을 둘러보면서 그 말을 반복하며 웃고 있었다. 내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도 재밌는 농담이라도 하는 듯 그 말을 계속했다. 난 민수에게 주의를 줬다. 민수의 말이 한두 번의 실언이 아니라 예의 없음이 반복된다는 걸 확인하고, 그날 수업이 끝난 뒤 민수를 잠시 남겨 지도했다.
“민수야, 네가 아까 했던 말과 태도엔 예의가 없었어. 네 생각이 어떻든 다른 사람들은 겉으로 표현되는 말과 행동을 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밖에 없어. 네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오해하지 않게 말과 행동을 좀 조심해 줘.”
민수는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표정은 떨떠름했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이 있어 한 번 더 얘기를 나눈 후에는 수업 중 민수의 예의 없는 언행이 좀 줄어들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운동에 몰입해 흥분하고 있을 때도 민수는 딱히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난 그런 모습이 안타까워 민수가 평소보다 조금만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도 손뼉을 치며 칭찬을 하곤 했는데, 반응은 거의 없었다. 민수는 아이들과도 관계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운동하다가 어떤 친구가 실수로 부딪히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큰 소리가 났다. 친구가 사과할 틈도 주지 않고 비난을 퍼붓곤 했다.

자신을 북돋아 주는 자리

나무의 초록 잎이 무성해지고, 초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체육관 유리창을 뚫고 쏟아져 들어올 즈음, 체육 시간에 강강술래를 배울 차례가 되었다.
“강강술래는 우리 조상들이 풍년과 마을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췄던 춤이자 놀이예요. 이 춤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협동심을 기르기도 했죠. 그 취지를 살려 우린 강강술래의 기본 동작을 익히고, 모둠원들과 협력해 동작을 연결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발표해 봐요.”
사람들이 흔히 아는 강강술래는 사람들이 보름달 아래서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도는 동작일 것이다. 하지만 강강술래엔 손을 잡고 걷거나 뛰는 동작 외에도 고사리 꺾기, 청어 엮기와 풀기, 덕석몰이 등의 동작이 있다. 이들 동작을 잘해내기 위해서는 선두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선두는 움직임의 속도와 따르는 이들의 간격을 잘 조절해야 한다. 선두는 리더이자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한다. 모둠별 발표 때 새로운 동작을 만들어 넣기로 했으므로 아이디어 협의를 이끄는 역할도 해야 한다. 선두에 따라 동작의 수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기본 동작을 익힌 아이들은 조별로 연습을 시작했다. 난 다니면서 동작을 헷갈려 하는 모둠을 지도했다. 그러다가 한 모둠의 연습하는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민수가 속한 모둠이었다. 민수가 선두에 서서 아이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냥 이끄는 게 아니라 열정적이었고, 표정도 밝았고, 아이들과 소통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그 민수가 맞아?’ 하는 생각에 자꾸 눈길이 갔다. 민수는 수시로 내게 다가와서는 “이걸 이렇게 해도 되나요”라며 묻기도 했다.
무엇이 민수의 표정을 저렇게 바꿔놓았지? 체육 수업 활동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잘 나서지 않는 아이들과 한 모둠이 되어 선두가 되었을 뿐이다. 난 그때 알았다. 저마다 각자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어떤 자리에 서면 힘을 받고 표정이 달라진다. 사람마다 그런 자리가 조금 더 많고 적은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까다롭고 불평불만이 많고, 때론 예의 없는 말로 선생님과 친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민수가 자신에게 힘을 주는 그 자리에 서서 경쾌한 스텝을 밟으며 아이들을 이끌고 있었다.
민수의 모둠은 작품 발표도 성공적으로 끝냈다. 끝까지 적극적으로 임하며, 인상 한 번 구기지 않고. 힘차게 돌아가는 그 강강술래를 보며 난 그해 풍년을 기원했다. 선생에게 풍년이란, 아이들이 봄여름의 비바람을 견디고, 햇살도 받으며 쌀알 여물듯 단단하게 영글어 가는 걸 보는 기쁨이 아닐까.
땀 흘리고 살짝 미소 지으며 강강술래를 경쾌하게 추던 민수의 표정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민수가 그해 초여름에 강강술래를 돌 때처럼 자신을 북돋아 주는 자리를 많이 만나 더 많이 웃고, 매년 더 단단해졌길 바란다. 올해도 난 체육 전담을 맡았고, 강강술래를 지도하고 있다. 힘차게 돌아가는 춤사위를 보며 올해의 풍년도 기원해 본다. 케이 로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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