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미경 l 사진 성민하
글 박미경 l 사진 성민하
양경윤 수석교사는 ‘감사’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산다. 마흔 살이 되던 2008년 ‘좋은 삶’을 살고 싶어 쓰기 시작한
감사 일기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처음부터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감사했던 일을 간단히 기술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짧더라도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는 걸 얼마간의 시행착오 끝에 깨달았다. 그렇게 쓰려니 ‘책 읽기’가 필요했고, 읽기와
쓰기를 통해 감사의 가치를 되새기니 삶이 행복으로 물들었다.
“그 행복을 나누고 싶어 학급에서 감사 일기를 쓰게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학생들에게는 귀찮은
숙제였던 거예요. 하지만 그 실패 덕분에 알게 됐어요. 감사는 ‘가르쳐주는’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해
내는’ 감정이란 것을요. 배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사가 열심히 설명한다고 학생들이 잘
배우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며 해답을 찾아가는 게 진정한 배움이란 결론을 얻게 됐어요.”
그가 ‘학생 배움 중심의 질문 수업’을 개발하게 된 배경이다. 2014년부터 연구하기 시작해 2015년 대한민국
교실에 맞게 구축한 이 수업 방식은 유대인의 전통 교육법인 하브루타*를 바탕으로 한다. 배움을 확장하는
가장 좋은 도구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가 질문 기법으로 해온 수업은 교과 수업만이 아니다. 각종 프로젝트 수업과 인성 중심 수업, 기후 환경
수업에 이르기까지 그는 질문이라는 ‘창’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힘써 왔다.
수업법 확산에도 앞장서 왔다. 질문 수업 공유를 위해 하브루타 수업연구회(現 하감미소 교사연구회)라는 연구
모임을 만들고, 『교실이 살아 있는 질문 수업』을 비롯해 관련 도서를 여러 권 썼다. 동료 교사들의 수업 역량 강화를
위해 1,500여 회의 공개수업을 하기도 했다. 열정과 애정이 없었다면 결코 할 수 없었던 강행군이다.
“우리 수업에는 선생님의 판서가 없어요. 대신 아이들 스스로 질문에 질문을 더해 가며 생각을 증폭시킵니다.
질문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진행하는데, 적당한 때 짝을 이동시키는 게 중요해요. 짝을 바꿔주면 앞의 짝에게
배운 것을 다음 짝에게 이야기하고, 거기서 더해 또 다른 질문을 만들거든요. 아이들의 몰입감이 엄청나요.
질문이 누적되면서 유능감(有能感)과 자존감이 향상되죠. 학업 성취도가 자연스레 높아집니다.”
*하브루타: 두 명이 서로 질문, 대화, 토론, 논쟁하며 진리를 찾는 교육 방법
교직에 몸담은 지 올해로 31년 된 그는 후배 교사들이 교실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자신에게 고민 상담을 자주 해오는 까닭이다. ‘고마워 교실’ 프로그램은 교실에서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을
돕기 위해 그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민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이 프로그램의 출발점도 ‘감사’다. 감사함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질문 수업 방법을 연구해 교실에 적용하도록 하고, 교사들이 고마움과 미덕을 담은 말과 태도를 사용하게 해 긍정적인 학급 운영에 일조했다.
“학생들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퍼붓다시피 하는 게 핵심이에요. ‘고맙다’라는 말에는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어요. 교정(矯正)보다 인정이 먼저입니다. 존재를 인정하고 존재에 감사해야
비로소 교정이 이뤄지거든요. 2020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고자 노력했어요. 『고마워 교실』이란 책을 쓰고 수업 영상을 동영상 플랫폼에 공유했죠. 교권이 축소되고 웃음이 줄어든 교실이 이내
회복되는 걸 보면서 ‘고마워’라는 말의 힘을 더욱 믿게 됐어요.”
그가 고마워하는 것에는 ‘지구’도 포함된다. 그래서 그는 질문 수업법과 고마워 교실을 결합한 기후 환경
수업을 개발해 널리 공유하고 있다. ‘나누는 것’이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감사’라는 나침반이 오늘도
그를 행복의 방향으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