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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누기

좋은 사람 좋은 생각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 슬기로운 언어생활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신지영 교수
사람은 살아가며 매일 다양한 방식으로 누군가와 소통한다. 그러나 자신의 말이 매번 의도대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가끔은 미묘한 표현 차이로 듣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옛말은 어쩌면 ‘언어 감수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칼처럼 날카롭게 상처 주는 말이 아닌 서로 공감하며 이해하는 언어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신지영 교수는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를 민감하게 살펴본다.

정라희 / 사진 이용기

인문학자로서 꿈과 현실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사람들의 언어 능력을 높이는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상 속 언어생활을 탐구하는 ‘언어 탐험가’

어떤 이들은 마치 운명처럼 꿈을 만난다. 신지영 교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 훈민정음 창제 원리를 배우면서 언어의 세계를 더 깊이 탐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어릴 때는 수학과 과학을 더 좋아했어요. 그런데 언어를 공부해보니 그 원리가 굉장히 과학적인 거예요. 그때부터 국어국문학과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진학을 결심했지요. 학창 시절에 만난 선생님 덕분에 좀 더 일찍 저만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익히 알다시피 국어국문학과는 크게 ‘국어학’과 ‘국문학’을 연구한다. 시·소설·희곡 등 한국어로 된 문화예술을 연구하는 분야가 국문학이라면, 국어학은 한국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소리·의미·문법을 탐구한다. 언어는 소리와 의미가 자의적으로 연결된 기호 체계다. ‘자의적’이라는 것은 소리와 의미 사이에 필연적 연관성이 없다는 뜻. 그래서 언어 사용자들은 언어 공동체의 사회적 약속을 습득하며 언어로 소통하는 법을 익힌다. 한국어 사용 공동체가 어떠한 사회적 약속을 만들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바로 국어학자가 하는 일이다.
“대다수 사람은 습관적으로 언어를 사용합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언어를 객관적으로 살필 기회가 드물지요. 저는 우리가 쓰는 언어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보니 평소 제가 쓰는 말을 성찰하게 되더라고요.”
언어의 원리가 과학적이라고 해도 결국 인문학의 본질이 닿은 곳은 ‘인간’이다. 그렇게 자신에게서 세상으로 시야를 넓히면 평소 쓰는 언어 표현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서 신지영 교수는 책 속의 학문에만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음성공학과 언어병리학 등으로 연구 영역을 확장한 것도 그런 마음가짐이 반영된 결과다. 최근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언어학자로서 그의 역할은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 학계의 테두리 안에서는 언어학자로 불리지만, 그는 자신을 ‘언어 탐험가’로 여긴다. 그리고 언어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더 많은 이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출연 모습 [출처: CBS 공식유튜브]
세바시 ‘안전한 콘서트 : Sustainable Safety’ 강연하는 신지영 교수 [출처: 세바시 공식블로그]

언어를 통해 일상을 여행으로 만들다

실제로 신지영 교수는 다양한 기획을 통해 사람들을 언어 탐험의 세계로 초대해왔다. 현재 몸담은 고려대학교에서 재학생을 대상으로 ‘고다운 스피치 아카데미’를 진행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손잡고 ‘중학생 꿈나무 말하기 대회’를 열기도 했다. 서울시와도 ‘다다다 발표대회’를 기획하고 실행하며 시민들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소통하는 장을 만들었다. “응용 학문이 산삼을 찾는 학문이라면, 인문학은 ‘아무도 모르는 보물’을 찾는 학문입니다. 산삼을 찾는 일에는 사람들이 바로 가치를 느끼지만, ‘아무도 모르는 보물’을 찾는 일은 종종 헛수고로 여기기도 하지요. 하지만 현실에만 발이 닿아 있으면 미래를 바라보며 꿈을 꾸기가 어려워요. 인문학자로서 꿈과 현실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사람들의 언어 능력을 높이는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같은 마음가짐은 실제 대회 운영 방식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흔히 ‘대회’ 하면 한쪽이 이기고 지는 ‘경쟁’을 떠올리지만, 그가 기획한 대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성장’이다. 그래서 예선에 앞서 신청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를 공유하고, 예선과 결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참가자들에게 교육을 제공한다.
“한국인들은 자기 의사를 표현해본 경험이 별로 없어요. 수직 문화가 강해 나이에 따른 권력 관계도 공고하고요. 그러다 보니 나이가 어리거나 권력이 약한 사람은 말할 기회를 얻기 어려워요. 그런데 중학생 말하기 대회를 해보면 생각보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수준이 무척 높아요. 그 또래만의 남다른 통찰력이 있는데, 어른들이 귀 기울이지 않은 것뿐이지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러 프로젝트가 지금은 잠시 쉬어가는 중이지만, 그는 대중이 언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길을 끊임없이 개척하고 있다. 2019년에 시작한 팟캐스트 ‘신지영, 조수진, 조민하의 언어 탐험대’ 역시 그러한 시도 중 하나. 이와 함께 「언어의 줄다리기」, 「언어의 높이뛰기」 등의 대중 교양서를 통해 생활 속 언어 감수성을 높이는 구체적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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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말이 과거의 관념에 갇히지 않도록

언어 감수성은 우리가 몸담은 사회문화와 맥락을 함께한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과거에 자주 사용하던 언어 표현들이 현재의 가치관과 부딪히는 일도 잦아졌다. 기존 언어 공동체에서 반복해 사용하던 언어 표현들이 더는 자기 생각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다는 의문이 들 때, 우리의 언어 감수성은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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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런 표현이 있는 것은 어제까지 그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미 결혼함’을 뜻하는 ‘기혼’과 ‘아직 결혼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미혼’은 ‘결혼은 해야 하는 것’ 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언어 표현인데요, 그렇다면 이혼하거나 사별하거나 결혼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과거의 결혼 경험이 왜 지금 자신의 상태를 논하는 기준이 되어야 할까요. 언어 표현에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는 거지요.”
어제까지 괜찮던 표현도 오늘은 마음에 걸릴 수 있다. 그 표현이 담고 있는 과거의 생각에 더는 동의할 수 없는 까닭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언어 표현이 낡은 가치관을 담고 있다면,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언어 표현을 공유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기존의 언어 표현을 바꾸려는 노력을 ‘프로 불편러’로 몰고 가며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 표현이 누군가를 차별하고 억압한다면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새로운 언어 표현을 고민해야 한다.
“언어 감수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언어 표현에 민감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 표현이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언어 감수성의 기준이 높아질수록 말에 배인 편견과 혐오, 고정관념이 점점 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사회적 약속인 언어 표현이 바뀌려면 언어 감수성의 기준이 높은 이들이 늘어나야 한다. 어쩌면 변화는 생각보다 금세 찾아올 수 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하루아침에 바뀌었듯이.*문제를 자각했다면 언어의 높이뛰기를 하기 위해 언어 공동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언어 표현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신지영 교수는 조금 어렵고 번거롭더라도 용기 내 낡은 언어 표현에 문제를 제기한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미디어에 원고를 기고하거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은 이를 알리고 전파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그의 다양한 시도들이 언어 감수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우리 말을 아름답게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케이 로고 이미지

* 국민학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의 소학교를 강제로 바꿔 부르던 이름으로, 황국신민 학교의 준말이었다. 광복 이후에도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초등학교로 개칭했다.

언어 감수성의 기준이 높아질수록 말에 배인 편견과 혐오, 고정관념이 점점 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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