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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22 Vol.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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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곱하기

방방곡곡 숨은 명소

매봉산 배추밭
시내 중심가의 평균 고도가 750m 이상인 태백은 예부터 열대야가 없기로 유명하다. 최근 이상기온으로 한낮에 30℃가 넘는 더위가 찾아오는 날도 있지만 여전히 아침 최저기온은 25℃를 밑도는 날이 많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 검룡소, 몽토랑 산양목장, 만항재 하늘숲공원 등 숲과 계곡, 초원이 어우러진 태백의 명소들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정의 더위에서 한 발 비켜설 수 있는 느낌이다.

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 사진 제공 태백시청

우인재 작가는 10여 년간 출판사에서 여행 콘텐츠 기획 및 취재를 담당했다. 아시아나항공 기내 가이드북 로스앤젤레스 편을 비롯해 대한생명, 교보생명, 외환은행 등 보험·금융사 고객용 여행 가이드북을 기획 및 제작했다. 또 월간 「DOVE」, 「모터트렌드」 등의 매체를 비롯해 인천공항공사, 롯데백화점, 조달청, 롯데제이티비, LS전선 등 기업체 사보에 여행, 드라이브 원고를 기고했다. 현재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탄광도시에서 여행자들의 인증사진 성지로

한반도의 척추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하는 강원도 태백산 자락에는 탄광으로 유명했던 도시, 태백이 자리 잡고 있다. 1980년대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시작되기 전까지 태백은 이웃한 삼척, 정선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잘 사는 동네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돈이 몰리는 곳이었다. 오죽하면 ‘동네 개들도 입에 지폐를 물고 다닌다’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였을까. 석탄산업의 위축으로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은 태백에는 요즘 고원 도시에 불어오는 신선한 변화의 바람과 함께 여행자들의 인증사진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론 태백이 품은 가장 큰 관광자원은 몇 년 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태백산일 것이다. 그러나 이 뜨거운 여름에 어지간히 산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천제단을 목적지로 하는 태백산 산행에 도전하기는 쉽지 않은 일. 이럴 때는 자동차로 고원 드라이브를 즐기듯 쉽게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를 찾는 것이 더위를 피해 즐겁게 여행하는 지름길이다. 아삭하고 고소하기로 소문난 고랭지 배추가 초록빛 바다를 이루고 있는 매봉산 자락, 북한강의 발원지 검룡소(儉龍沼)에서 느껴 보는 서늘한 냉기 그리고 새하얀 산양들이 초원을 뛰노는 목장까지. 태백에는 삼복더위를 까맣게 잊게 해줄 시원하고 이국적인 풍경으로 가득하다.
검룡소 검룡소

하늘 아래 배추밭과 한강 발원지 검룡소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고랭지 배추밭이다. 카지노로 유명한 정선군 고한읍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곳에 우뚝 솟은 매봉산으로 향해보자. 야생화 천국 금대봉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에는 백두대간 너머 동해의 바람을 기다리는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바람의 언덕’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매봉산 동쪽 사면은 온통 초록빛 배추들이 점령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값비싼 배추가 재배된다는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은 이름 그대로 태백시 화전동(禾田洞)의 해발 1,300m 고지에 형성된 배추밭이다. 화전동 이라는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
‘바람의 언덕’ 풍력발전기 ‘바람의 언덕’ 풍력발전기
매봉산 배추밭 매봉산 배추밭
매봉산 관광객 매봉산 관광객
화전민 이주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이 배추밭은 한여름에도 10℃ 이상 일교차가 벌어지는 환경 덕분에 속이 꽉 차고 맛 좋은 배추가 나는 산지로 정평이 나 있다. 무려 33만 평에 이르는 배추밭과 풍력발전단지가 어우러져 연출하는 풍경은 뜻밖에도 매봉산을 태백의 대표 명소로 거듭나게 했다. 고랭지 배추 농사를 위해 닦은 도로를 따라 매봉산 능선에 오르면 하늘이 손에 닿을 듯 가깝고 초록빛 배추밭의 물결이 발아래로 펼쳐지는 진기한 경험이 기다린다. 탁 트인 시야와 초록빛으로 눈 호강을 했다면 이번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이 솟는 수원지(水源池)를 찾아가 본다. 매봉산 북서쪽에 있는 검룡소는 금대봉과 대덕산 사이 깊은 계곡에서 하루 2,000톤 이상의 지하수가 용출되는곳으로 계절과 관계없이 일정한 온도(9℃)를 유지하는 물이 흘러나온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서 자동차로 약 30여 분 거리에 위치하는 이곳에서 나온 물이 흘러 흘러 한반도의 젖줄인 한강을 이루므로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쏟아져 나온 물줄기에 깊게 팬 계곡에는 마치 용이 몸부림친 듯한 흔적을 만들었는데, 구전에 의하면 이는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온 증거라고 한다.

한국의 스위스 몽토랑 산양목장

이번에는 요즘 SNS에서 가장 핫하다고 소문난 몽토랑 산양목장(033-553-0102 www.mongtorang.co.kr)을 찾아가 본다. 태백시 중심가에서 가까운 산비탈에 펼쳐진 초원에 새하얀 산양 무리가 뛰놀고 있다. 눈부신 여름 태양 아래 펼쳐진 무려 447만 평에 달하는 몽토랑 산양목장은 본래 타조, 사슴, 흑염소 등을 사육하던 농장이었는데 지난 2006년부터 우유를 생산하기 위한 유산양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산양은 토종 염소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얼굴의 형태나 꼬리 모양이 다르고 성질도 온순해 사람을 잘 따르는 편이다.목장 입구 카페에서 입장료를 지불하면 입장권 대신 팔찌를 지급한다. 팔찌를 착용하고 입장하면 귀여운 산양들의 호기심 어린 눈과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산양들은 금세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산양 먹이(5천원)를 구매하면 된다. 사료 컵을 들고 다시 초지에 들어서면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사료 냄새를 맡은 산양들이 줄줄이 열을 지어 따라오기 때문이다. 제법 가파른 경사면을 올라 언덕 정상에 도착하면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전망대 근처에는 어른 손바닥만 한 작은 토끼도 곳곳에 보인다. 산양이 낯설고 무서워 뒷걸음질 치던 아이들도 토끼를 쫓느라 바쁘다.
이국적인 초원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나무가 많지 않아 땀 깨나 흘려야 한다. 이럴 때는 목장 입구에 위치한 카페에서 잠시 더위를 식혀보자. 태백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명소 카페이기도 한 이곳은 커다란 통유리 창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이 압권이다. 카페에서는 매장에서 직접 구운 빵과 커피를 비롯해 산양유로 만든 수제 요거트 같은 유제품도 판매한다.
몽토랑 산양목장 몽토랑 산양목장
몽토랑 산양목장 카페 몽토랑 산양목장 카페

천상의 화원 만항재와 에메랄드 빛깔 미인폭포

태백은 정선·삼척·영월 등 강원도의 유명한 두메산골과 인접해 있다 보니 그 경계에 명소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만항재 역시 그러하다. 태백·정선·영월까지 3개 시군의 경계가 맞닿아 있다. 해발 1,300m 고지를 통과하는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도를 지나는 도로를 끼고 있다. 태백 시내에서 태백산국립공원 백단사, 유일사 매표소를 차례로 지나치면 곧 어평재휴게소에 다다르게 된다. 여기서 함백산 등산로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 도로로 접어들면 본격적인 산간 드라이브 길이 시작된다. 구절양장처럼 꼬불꼬불 이어지는 아찔한 도로를 따라 10여 분 이상 오르면 천상화원이라 불리는 만항재 하늘숲공원이 나온다.
이맘때 만항재 하늘숲공원은 지천으로 피어나는 야생화와 꽃을 찾아 날아든 나비로 가득하다. 특히 7~8월에 피는 ‘꽃범의꼬리’가 가장 많이 보인다. 꽃범의꼬리에 알록달록 예쁜 나비들이 앉아 경쟁하듯 꿀을 찾고 있는 모습은 천상의 화원이라는 말 외에는 적절한 수식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풍경이 아름답다. 공원 안쪽으로 한 발 더 들어가면 성하(盛夏)의 뙤약볕이 무색해지는 시원한 숲 그늘이 펼쳐진다. 수십 년 된 아름드리나무들이 드리운 천연 파라솔은 한낮의 햇살도 침범하지 못하는 낙원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들를 곳은 더위로 높아진 불쾌 지수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장소다.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의 은밀한 협곡에 숨은 미인폭포가 바로 그곳. 주소지 상 삼척에 속하지만 삼척 시내보다 태백 시내에서 가는 편이 훨씬 가까워 태백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들르는 명소로 꼽힌다. 통리협곡 깊은 곳에 숨은 30m 높이 절벽에서 쏟아지는 폭포수가 바위에 부딪히며 안개처럼 흩어지는 광경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감동을 자아낸다. 또한 석회질 성분이 함유된 계곡물은 이 세상 색깔이 아닌 것 같은 오묘한 에메랄드빛을 머금고 있어 그 신비감을 더한다. 이러한 신비감 때문인지 절세 미녀가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만항재 하늘숲공원 만항재 하늘숲공원
미인폭포 미인폭포
태백으로 떠나는 식도락 여행

두메산골에서 맛보는 산촌 먹거리

  • 연탄불에 굽는 육즙 가득한 태백 한우

    과거 탄광촌 태백을 먹여 살린 효자 상품은 연탄이다. 아직 미미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태백산 연탄에 구워 먹는 소고기는 별미 중의 별미다. 당시 연탄은 지금처럼 도시가스나 전기가 보급되기 이전 한국인들의 삶을 책임지던 고마운 존재였다. 태백 시내에는 바로 이 연탄불에 한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여럿 있다. 황지동에 위치한 태백실비식당(033-553-2700)은 한우 연탄구이 전문 식당으로 모둠 갈빗살(꽃갈빗살+갈빗살)과 삼총사(꽃갈빗살+갈빗살+안창살)가 가장 인기 있는 메뉴라고 한다. 소고기는 무엇보다 강한 열원에 재빨리 구워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빨갛게 단 연탄불에 석쇠를 얹고 부위별 소고기를 굽는 손맛과 한우의 풍성한 육즙을 마음껏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 쫄깃한 감자옹심이와 바삭한 감자전의 조화

    강원도를 대표하는 식재료를 꼽으라면 너나없이 감자를 첫손에 꼽을 것이다. 논농사가 어려운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로 만든 감자옹심이와 감자전은 여행자들의 소울 푸드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감자를 강판에 갈아 만든 녹말가루를 뭉쳐서 수제비나 경단처럼 빚은 뒤 미리 준비한 육수에 호박, 고추, 버섯과 함께 끓이면 감자옹심이가 완성된다. 태백 시내 한복판에 위치하는 재래시장인 황지자유시장에 감자옹심이를 전문으로 하는 맛집이 있다. 상호가 부산감자옹심이(033-552-4498)라는 점이 눈길을 끄는데, 이 식당의 창업주는 석탄산업이 호황을 이루던 1960년대 고향(부산)을 떠나 태백에 식당을 차렸다고 한다. 두툼하고 바삭하게 부쳐내는 감자전도 꼭 곁들여 먹기를 권한다.
  • 심심한 순두부와 함께 맛보는 강원도 백반

    담백한 순두부와 함께 맛보는 간결한 상차림의 백반은 기름지고 자극적인 먹거리를 잠시 잊게 해주는 음식의 고전이다. 구와우순두부(033-554-7223)는 벌써 10년 넘게 한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태백의 순두부 맛집으로 불과 몇 개월 전 만화 ‘식객’의 허영만 작가가 다녀간 이후 다시금 유명해졌다. 코로나19 이전에 매년 해바라기 축제가 개최되던 고원자생식물원 입구에 위치하는 이 식당은 하루에 딱 80그릇 분량의 식재료만 준비해 둔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도 식당 주인이 순두부를 직접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식당이라기보다 보통의 시골 가정집에 가까운 허름하고 소박한 건물은 어쩐지 여름방학마다 놀러 가던 시골집을 떠올리게 하는 외관이라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