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미경 | 사진 이용기
글 박미경 | 사진 이용기
뿌린 만큼 거두는 것. 김달형 교사가 생각하는 육아의 본질이다. 쏟은 시간만큼 아이와의 틈이 메워지고, 함께한 깊이만큼 아이가 부모를 따르는 까닭이다. 육아를 ‘자식 농사’라 부르는 이유를 그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미 안다. 6개월간의 육아휴직 경험 덕분이다. 울고 싶을 만큼 힘든 적이 많았지만, 돌아보면 아이와 같이한 순간들이 온통 행복의 무늬로 기억된다. 그때 그린 밑그림이 ‘오늘’이라는 도화지를 기쁨의 색채로 물들인다.
“육아휴직을 한 게 큰아들이 우리 나이로 두 살이던 2018년 3월이에요. 그 직전에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는데, 우리 반에 참 멋진 남학생이 있었어요. 학급회장이었는데, 통솔력이 좋아 말썽 많은 아이들을 잘 이끌어줬죠. 예의도 바르고요. 졸업식 때 그 학생의 아버지가 오셨는데, 아들과 참 다정하게
소통하시더라고요. 그 아이가 그토록 바르게 클 수 있었던 비결을 단번에 알았어요.”첫아이를 갓 낳아 기르던 그는 부모님이 어떻게 가정교육을 했기에 아이를 그리 반듯하게 키웠는지 진작부터 궁금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떤지, 그 학생에게 진지하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 그 학생이 했던 대답을 그는 아직 잊지 못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많이 이해하고 공감해 준다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아주 많다고. 그것이 육아휴직의 계기가 됐다. 육아에서 아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이상, 이왕이면 제대로 아이와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의 아내도 교사다. 임신과 출산으로 고생한 아내를 학교로 돌려보내고, 당시로선 드물게 아빠인 그가 휴직계를 냈다.
“막상 집에서 육아를 해보니 너무 힘든 거예요. 큰아들이 아주 예민해요.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적응을 전혀 못해서 2주 만에 그만둬야 했어요. 밥도 잘 안 먹어서 먹이고 재우는 일에 온종일 에너지를 써야 했죠. 출산휴가 때 아내가 왜 그리 힘들어했는지 비로소 이해가 가더라고요. 이제 와 생각하면 육아휴직을 한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아요. 큰아들은 지금도 저와 자요. 언제나 아빠가 영순위죠. 작은아들도 마찬가지예요. 두 아이가 저를 독차지하고 싶어 해서 아주 행복합니다.
육아휴직 이후 두 아들의 주 양육자가 된 그는 ‘의외로 단순한 것’이 육아라고 생각한다. 아빠와의 긍정적 관계에서 아이들의 행복이 자라난다는 것. 그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혹여 사이가 틀어져도 이내 회복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아이가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그는 꽤 엄격하게 훈육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 훈육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아이와 긍정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훈육 뒤엔 아이의 마음을 따뜻이 다독이는 시간을 반드시 갖는다. 그 과정이 없으면 애써 쌓은 것이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결국 ‘사랑’이다. 아빠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는 아이에겐 ‘회복력’이라는 재능이 축복처럼 주어진다.
“처음 부모가 되면 아이에게 갖는 기준이 있어요. 밥은 한 끼에 몇 숟갈 이상 먹어야하고, 또래에 비해 발달이 평균 수준인지 등…. 아이가 자라면 그 기준의 대상이 '공부'가 될텐데,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워보니 그런 기준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걸 안 뒤로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됐어요. 혼자 기대하는 대신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고, 아이의 느낌과 생각을 수용해 주기 시작했죠.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는 법도, 아이를 느긋이 기다려주는 법도 육아휴직 기간에 배웠어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육아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실었다. 지난 2월 출간한 「아빠의 긍정 육아가 아이의 행복을 만든다」가 그것이다.
“아이들은 아빠와의 관계가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돈을 많이 벌어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이 하는 말에 따뜻하게 반응해 주고 아이들 눈높이에서 즐겁게 놀아주다 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날 거예요. 육아는 매우 정직해요. 노력과 시간을 들인 꼭 그만큼 아이와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걸 기억하셨으면 해요.”
“아내가 출산휴가 때 왜 그리 힘들어했는지 이해될 정도로 육아휴직 기간이 참 힘들었어요. 하지만 돌아보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아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뿐 아니라 육아와 살림의 고충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됐으니까요.”
육아휴직 이후 그에겐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먼저 집안일의 수고로움을 알게 됐다. ‘표’도 나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해주는 누군가가 있어 식구들의 삶이 무난히 돌아간다는 것. 그걸 톡톡히 깨달은 그는 아이들에게도 자신이 해야 할 집안일을 부여한다. 빨래 개는 것과 용변 후 변기 닦는 것 등이 그것이다.
“교사로서도 변화가 생겼어요. 학생들 때문에 화가 날 때 학생들이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요, 그러던 제가 육아를 주도적으로 맡으면서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교사가 됐어요.”
2012년 서울 중화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교사가 된 뒤 몇 년 동안은 학생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 아이 한 아이가 다 다르다는 것을, 모든 아이가 각각의 별에서 저마다 빛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걸 깨달은 자신이 그는 조금 마음에 든다. 육아가 그에게 준 선물이다.
“내내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지난해부터 진로진학 상담교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상담에 관심이 생겨 대학원에서 진로진학 상담 과정을 공부했거든요. 육아와 학업을 통해 얻은 저의 지혜가 아이들의 진로와 고민을 상담하는 데 잘 쓰였으면 좋겠어요.”
그가 생각하는 행복은 ‘평범’한 일상 안에 존재한다. 아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한다고 ‘거창’한 이벤트를 기획하기보다 집안 욕조에 물 받아 놀아주더라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질’이 충만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는 믿는다. 받아들이고 기다려주고 낮아지는 것. 행복으로 가는 그의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워 보여 덩달아 길을 나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