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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22 Vol.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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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너머 꿈

학교 담장 넘어 온 마을이 함께 가꾸는
교육의 숲, 희망의

인천서흥초등학교
심준희 교사
심준희 교사가 꿈꾸는 교실은 학교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해 2월 68개 지역 단체와 마을 교육 공동체 인천동구마을교육협의회를 설립해 글자 그대로 ‘온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살피고 가르친다. 지역 주민들이 서로 먹거리를 나누는 ‘모두의 냉장고’로 상생과 순환도 같이 모색 중이다. ‘앎’을 ‘삶’으로 바꿔 가는 그의 품에서, 아이들이 저마다 고유하게 자라고 있다.

박미경 / 사진 이용기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과목별 교과서 대신 ‘주제’로 수업하는 교실

이 학교엔 아주 특별한 숲이 있다. 주민들이 편안하게 쉬고, 아이들이 유쾌하게 놀며, 동물들이 안전하게 머무는 공간이다. 마을 안 그 어떤 존재도 배제되지 않는 이 착한 숲은 지난해 인천서흥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길을 만드는 아이들. 그 멋진 아이들이 심준희 교사의 제자들이다. 6학년 담임을 6년째 맡은 그는 인천 유일의 혁신학교인 이곳에서 아이들과 ‘행복한 실험’을 거듭해 왔다. 그 과정에서 그도 크게 성장해 왔다. 나무도, 사람도, 학교라는 숲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우리 학교 6학년은 과목 대신 주제로 수업해요. 과목별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매달 한 가지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죠. 동료 교사들과 오래 고민하며 만든 수업 방식이에요. 이게 더 나은 방식인지 지금도 계속 논의하고 있어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자기가 공부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 이유를 스스로 찾아가게 해주기 위해 여느 학교와는 다른 방식의 수업을 꿋꿋이 해나갑니다.”
월별로 진행되는 수업 주제가 여간 색다르지 않다. 의사소통 과정, 소중한 사람들, 환경, 우리 마을, 노동인권 교육, 여행, 세계, 졸업 프로젝트…. 지난 3월 주제인 ‘의사소통’ 과정은 6학년 학생들이 1학년 학생들과 한 달 내내 함께하는 활동이다. 6학년과 1학년 학생을 일대일로 짝지어 주고, 6학년 학생들이 1학년 학생들의 학교 적응을 돕는 그 자체가 수업이다. 책도 읽어주고 학교 이야기도 들려주면서, 자신보다 약한 사람과의 교감과 연대를 익혀간다. 한 달간의 과정이 끝나면 6학년과 1학년 짝꿍이 함께 봄 나들이를 하러 간다. 학교 뒷산 같은 곳에서 평범하되 특별한 추억을 쌓는다. 현재 진행 중인 수업의 주제는 ‘여행’이다. 어디로 어떻게 떠날지를 아이들 스스로 계획 중이다. 낯선 곳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워 올지 벌써 기대가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마을 교육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

“환경을 주제로 한 수업은 두 달간 진행해요. 우리 집 수도나 전기 사용 실태를 각자 조사해 보고, 사용량을 줄이는 방법도 모색해 봅니다. 그 과정에서 표나 그래프가 들어가니 수학 공부가 되고, 환경에 대한 글을 쓰니 국어 공부가 되죠. 환경을 해치는 사회현상을 탐구하니 사회 공부가 되고요.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직접 캠페인도 해요. 동네 커피숍에서 하루 몇 개의 일회용품이 사용되는지 설명하면서 텀블러를 들고 다니자고 주민들에게 호소하는 식이죠.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갑니다.”
‘기후 위기’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 전인 2015년부터 그는 기후 위기 대응 교육 프로젝트 ‘초록의 소중함으로 GREEN 지구’ 수업을 50회 넘게 진행해 왔다. 기후 위기와 직결된 우리 주변의 문제를 우리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는 것. 그 안에 환경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있다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2015년은 인천서흥초등학교가 혁신학교로 선정된 해이자, 그가 이 학교에 부임해 온 해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년간 그는 동료 교사들과 학교의 지향점을 치열하게 잡아나갔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올곧게 커나가도록 하려면 ‘온 마을’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살고 있는 동네가 돌봄과 배려와 존중으로 가득한 곳이어야 아이들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진다는 것을. 1년간의 토론 끝에 이 결론에 도달했고, 이후 지역의 여러 단체와 관계를 맺어나갔다. 마을 교육에 관한 회의와 학습을 여러 해 동안 해나가면서 공동체의 발판을 함께 닦아나갔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확산했어요.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면서, 밥을 굶거나 생활을 망치는 아이들이 생겨났죠. 학습 격차는 더욱 커졌고요. 그때 마을 교육 공부를 함께하던 분들이 힘을 보태주셨어요. 복지관이며 도서관 등에 아이들을 5명씩 나눠 보내면 지역 주민들이 돌봐 주셨죠. 학교는 방역 물품이며 학습 도구 등을 지원했고요. 그렇게 60명의 아이를 보살폈어요. 마을 교육 공동체의 가능성을 그때 확신했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21년 2월 ‘인천동구마을교육협의회’ 가 만들어졌다. 학교, 지역아동센터, 복지관, 동네 서점, 학부모회, 시민단체, 문화단체 등 인천 동구에 있는 68개 단체가 지역 아이들의 돌봄과 교육을 위해 ‘한 배’를 탔다. 마을교육 공동체 설립을 주도한 그가 사무처장을 맡고, 임용렬 인천 창영초등학교 교장이 초대 대표를 맡았다. 교육활동가로서의 일이 추가됐지만 그는 그 일이 교사 업무의 연장이라 생각한다. 교실이 학교 바깥으로 확장됐을 뿐 하는 일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함께 나누고, 일구며, 성장하는 교육의 숲

“지난해 6월, 협의회의 논의를 거쳐 ‘모두의 냉장고’를 만들었어요. 지역 주민이 각자 자유롭게 음식을 채우거나 가져갈 수 있는 공유 냉장고예요. 아직 4개밖에 운영하지 못하고 있지만, 주민 간 상생 면에서도, 자원 순환 차원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활동이라 생각해요.”
이에 얽힌 미담이 꽤 많다. 텃밭 농사를 함께 짓는 이 지역 아이들은 자신이 기른 작물들을 ‘모두의 냉장고’에 기꺼이 공급한다. 작은 손으로 기른 이 특별한 먹거리를 주민들이 참 좋아한다. 여기서 요구르트 한 개를 꺼내 먹었다며 이튿날 오렌지 두 개를 갖고 온 꼬마도 있고, 엄마 손을 잡고 와서 참치 캔 같은 것을 놓고 간 유치원생도 있다. 손수 담근 김치를 소분해 냉장고에 넣고 가는 동네 어르신도 꽤 된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매우 큰 기쁨을 느끼는, 우리 곁의 천사들이다.
“교사가 된 지 올해로 11년째예요.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 서른한 살에 교대에 들어갔어요. 어릴 적 꿈이 교사였지만 주위의 만류로 그 소망과 멀어졌죠. 뒤늦게 꿈을 되찾은 만큼 정말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요. 그 꿈으로 가는 길을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그의 여정엔 ‘뚱이’라는 존재도 포함된다. 뚱이는 2018년 봄부터 인천서흥초등학교 아이들이 함께 기르고 있는 돼지다. 2017년 처음 6학년 부장을 맡은 그는 자신이 학급을 운영한 그 한 해가 너무 흡족해 적잖이 기분 좋은 연말을 보냈다. 하지만 이내 실망했다. 졸업을 앞두고 아이들과 함께한 캠핑에서 한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한 것이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아이들을 이끌었다는 자각을 비로소 하게 됐다.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됐어요. 아이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열심히 물어봤죠. 그러다 ‘P짱은 내 친구’라는 애니메이션을 다 함께 봤는데, 아이들이 우리도 돼지를 키워보자고 하더라고요. ‘이걸 해보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터라 그러자고 했어요. 돼지를 어떻게 키울지 스스로 계획해 진행하게 했죠. 밥은 누가 주고, 누가 우리를 청소하고, 어떻게 돌볼지 등등이 담긴 내용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아이들이 교직원 회의에 들어온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시행착오가 많았다. 처음 두 달간은 교실에서 키우다 학교 마당에 집을 지어줬고, 자신들이 졸업하면 후배들이 키울 수 있도록 ‘뚱아리’라는 이름의 동아리도 만들었다. 요즘엔 학교에서 돼지를 키우는 일이 과연 뚱이에게도 좋은 일이었는지 ‘동물권’ 차원에서 다시 성찰 중이다. 돼지의 입장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그도 아이들도 또 한 뼘 성장할 것이다. 함께 일구는 교육의 숲이 이렇게 조금씩 울창해진다. 향기가 여간 그윽하지 않다. 케이 로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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