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아침, 유치원 교실 문을 열자 작은 손으로 꾸민 꽃다발과 함께 손편지 한 통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색연필로 알록달록 쓴 글씨, “선생님, 매일 웃어줘서 유치원 오는 게 제일 좋아요.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문장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편지를 쓴 건 우리 반에서 가장 수줍음 많던 다연이(가명)였다. 그 짧은 문장은 단순한 고마움이 아니었다. 다연이와 보낸 지난 1년의 추억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연이를 처음 만난 건 작년 봄, 새 학기 첫날이었다. 다섯 살 아이들 특유의 호기심과 에너지로 교실이 시끌벅적했지만, 다연이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문 앞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눈망울이 동그랗고 맑았지만, 낯선 환경에 겁먹은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등원 첫 주 내내 다연이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동화책을 뒤적이며 혼자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 저 집에 가고 싶어요”라는 속삭임이 다연이의 첫 말이었다. 유치원 교사로 8년을 보내며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지만, 다연이의 작은 떨림은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이 아이에게 유치원이 행복한 곳이 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연이와의 여정은 작은 발걸음부터 시작되었다. 아침마다 다연이가 등원하면 “다연이, 오늘 선생님이랑 무지개 색깔 놀이할까?”라며 손을 내밀었다. 처음엔 망설이던 다연이도 내 미소에 점차 응해주었다. 수업 시간엔 다연이가 좋아하는 동물 이야기를 동화에 넣어 들려주고, 미술 시간엔 “다연이 손은 마법 손이야! 어떤 그림이 나올까?”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연이가 그린 토끼 그림을 교실 벽에 붙이자, 아이가 수줍게 웃으며 “선생님, 예쁘게 붙여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그 작은 목소리가 내게는 큰 울림이었다.
여름이 되면서 다연이는 조금씩 변해갔다. 친구들과 손잡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곰 세 마리’ 노래를 부르고, 점심시간엔 옆자리 친구와 까르르 웃으며 밥을 먹었다. 한번은 체육 시간, 미끄럼틀을 무서워하던 다연이가 내 손을 잡고 “선생님, 저 할 수 있어요!”라며 용기를 냈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 다연이의 얼굴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가 번졌다. “선생님, 또 타고 싶어요!”라며 다시 줄을 서는 모습을 보며, 다연이의 작은 용기가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깨달았다.
가을, 유치원에서 열린 ‘가족 운동회’는 다연이의 변화를 모두에게 보여준 날이었다. 다연이는 ‘풍선 터뜨리기’ 게임에서 친구들과 팀을 이뤄 열심히 달렸다. 넘어져도 웃으며 일어나 다시 뛰는 모습에 부모님도,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행사 끝, 다연이가 달려와 내 품에 안기며 “선생님, 오늘 진짜 재밌었어요!”라고 외쳤다. 그 순간, 다연이에게 유치원이 더 이상 무서운 곳이 아니라 행복의 playground가 되었음을 느꼈다.
겨울, 다연이의 부모님께서 상담 자리에서 말씀하셨다. “다연이가 집에서 선생님 얘기를 매일 해요. 유치원 가는 걸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어요.” 그 말은 교사로서의 노력이 한 아이의 세상에 따뜻한 빛을 비췄음을 확인시켜주었다. 다연이는 이제 친구들과 장난치며 깔깔대고, 발표 시간엔 큰 소리로 자신의 꿈— “강아지 의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말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스승의 날, 다연이의 편지를 읽으며 모든 순간이 하나로 이어졌다. 편지엔 다연이가 처음 느꼈던 두려움, 친구들과의 추억,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한 행복이 색연필로 그려진 그림과 함께 담겨 있었다. “선생님이 저를 안아줘서 무섭지 않았어요”라는 문장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다연이의 변화는 단순히 수줍음을 극복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 아이가 세상과 마주할 용기를 얻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여정이었다.
그 편지는 지금도 내 책상 한쪽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유치원 교사로서 힘든 날, 아이들의 에너지에 지칠 때면 다연이의 편지를 꺼내 본다. 그리고 다시 다짐한다. 모든 아이에겐 저마다의 빛이 있고, 나는 그 빛을 찾아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다연이의 “선생님 사랑해요”는 단순한 한마디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교직 인생을 따뜻하게 채운 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