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매거진(더케이매거진)
작성자 박*희 2025-05-09
「당신 덕분에」

고등학교 3학년 겨울, 나는 진로도 성적도 친구관계도 모든 게 엉망이었다. 교실 안에 있는 것조차 버겁던 어느 날, 나는 몰래 급식실 옆에 있는 빈 강의실로 숨어들었다. 그냥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조용히 있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곳엔 이미 누군가 있었다. 국어 선생님이셨다.

“어, 너 여기 왜 있니?”
놀라 물으시는 얼굴에는 나무처럼 깊은 주름이 있었지만, 눈빛만은 어린아이처럼 따뜻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힘도, 이유도 몰랐으니까.
선생님은 내 옆자리에 앉더니, 말없이 귤 하나를 까서 건넸다.

“귤 먹을래?”

그 단순한 말 한마디에, 나는 그만 울어버렸다.
어떤 위로도 닿지 않던 내 마음에, 그 말은 따뜻한 불빛처럼 스며들었다.
그날 이후 선생님은 가끔 나를 그 강의실로 불러 조용히 책을 읽어주셨고, 때로는 말없이 옆에 있어주셨다.

졸업식 날, 선생님은 내게 작은 편지를 주셨다. 그 안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네가 아무리 어두운 길을 걷는 날에도, 나는 언제나 너 편이야.
너는 이미 충분히 빛나는 아이란다.”

그 말은 내 인생의 북극성이 되었다. 길을 잃을 때마다 나는 그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느 날,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