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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즐기는 이들의 이야기

생생지락(生生之樂)

티끌을 태산으로, 나눔을 삶으로

기부천사 김종태 회원
생생지락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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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 회원의 좌우명은 작은 것이 쌓여 큰 것이 된다는 뜻의 ‘적소성대(積小成大)’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거리의 폐품을 모으고 팔아 수천만 원을 기부해 온 그는 2011년 정년퇴임 이후 재활용품 수집과 판매액 기부를 ‘전업’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5년간 1억 원을 더 기부하기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약정도 했다. 티끌을 태산으로 만드는 그의 나눔에 보람의 햇살이 반짝거린다.

글 박미경 l 사진 성민하

폐품으로 기부하는 기쁨

별것 아닌 것들이 별처럼 빛나는 그의 집엔 남다른 ‘장부’들이 있다. 가계부처럼 보이기도 하고 금전출납부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공책들은 그가 그날그날 모은 폐품의 종류와 그것들로 벌어들인 돈이 얼마인지 기록한 것이다. 알루미늄 캔, 고철, 폐지, 페트병…. 고물상에 가져다준 품목이며 무게며 판매액 등이 매우 유려한 손 글씨로 적혀 있다. 2010년 11월 18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했으니, 한 사람의 소중한 일기장을 넘어 한 시대의 귀중한 생활사(生活史)이며, ‘나눔’의 증거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모은 돈을 모두 기부금으로 사용해 온 까닭이다. 폐품에 기품을 불어넣으며, 그는 날마다 좀 더 따뜻한 미래로 간다.
“제 옷차림이 좀 후줄근하죠? 잘 차려입어 봐야 폐품 때문에 금방 더러워져요. 옷 살 돈도 굳고, 운동도 되고, 환경도 지키고…. 거기다 기부까지 할 수 있으니 정말 행복해요.” 2011년 대구송일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그는 ‘버려진 것들’을 모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동네 곳곳에서 수집해 온 폐품들을 종류별로 몇 시간씩 분류해 고물상으로 가져간다. 그날그날 가는 곳이 다르다. 품목별로 값을 잘 쳐주는 고물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 그가 재활용품 판매로 벌어들이는 돈은 하루 평균 6,000~7,000원이다. ‘운수 좋은 날’은 1만 2,000원 정도를 벌기도 하지만, 돈이 적으면 적은 대로 그 나름의 보람이 있다. 무릎 관절이 나빠진 요즘엔 부인 김몽미 씨가 그보다 더 열심히 폐품을 모아 온다. 좋은 일을 같이하면서 부부 사이도 갈수록 좋아졌다. 그의 선행을 잘 아는 이웃들도 각자 모아 둔 재활용품을 심심찮게 가져다준다. 나눔의 동심원이 날마다 커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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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품으로 기부하는 기쁨

별것 아닌 것들이 별처럼 빛나는 그의 집엔 남다른 ‘장부’들이 있다. 가계부처럼 보이기도 하고 금전출납부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공책들은 그가 그날그날 모은 폐품의 종류와 그것들로 벌어들인 돈이 얼마인지 기록한 것이다. 알루미늄 캔, 고철, 폐지, 페트병…. 고물상에 가져다준 품목이며 무게며 판매액 등이 매우 유려한 손 글씨로 적혀 있다. 2010년 11월 18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했으니, 한 사람의 소중한 일기장을 넘어 한 시대의 귀중한 생활사(生活史)이며, ‘나눔’의 증거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모은 돈을 모두 기부금으로 사용해 온 까닭이다. 폐품에 기품을 불어넣으며, 그는 날마다 좀 더 따뜻한 미래로 간다.
“제 옷차림이 좀 후줄근하죠? 잘 차려입어 봐야 폐품 때문에 금방 더러워져요. 옷 살 돈도 굳고, 운동도 되고, 환경도 지키고…. 거기다 기부까지 할 수 있으니 정말 행복해요.” 2011년 대구송일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그는 ‘버려진 것들’을 모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동네 곳곳에서 수집해 온 폐품들을 종류별로 몇 시간씩 분류해 고물상으로 가져간다. 그날그날 가는 곳이 다르다. 품목별로 값을 잘 쳐주는 고물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 그가 재활용품 판매로 벌어들이는 돈은 하루 평균 6,000~7,000원이다. ‘운수 좋은 날’은 1만 2,000원 정도를 벌기도 하지만, 돈이 적으면 적은 대로 그 나름의 보람이 있다. 무릎 관절이 나빠진 요즘엔 부인 김몽미 씨가 그보다 더 열심히 폐품을 모아 온다. 좋은 일을 같이하면서 부부 사이도 갈수록 좋아졌다. 그의 선행을 잘 아는 이웃들도 각자 모아 둔 재활용품을 심심찮게 가져다준다. 나눔의 동심원이 날마다 커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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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품 수집, 교육이 되다

“향후 5년간 1억 원을 기부하기로 작년 11월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약정했어요. 4년 후면 여든 살이 되는데, 새로 1억 원을 더 기증해 팔순을 의미 있게 맞고 싶더라고요. 폐품으로 번 돈만으로는 목표액을 채울 수 없어서 한국교직원공제회에 기부를 위한 적금을 별도로 부어놨어요. 제가 퇴직 교사들의 모임인 대구교육삼락회에서 10년간 사무처장을 맡았는데, 그때 매월 30만 원씩 봉사료를 받았거든요. 봉사료로 받은 거니까 나눔에 쓰고 싶었어요.”
그가 폐품으로 기부를 시작한 건 1980년대 중반부터다. 1970년, 지금은 폐교가 된 포항 기계초등학교 기서분교에서 첫 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업무에 익숙해져 심리적 여유가 생긴 그 무렵부터 주말마다 폐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재활용품을 팔아 모은 돈으로 연말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나 재해 성금 등을 내면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1989년부터는 폐품 수집과 기부를 ‘교육’에 접목했다. 교내 쓰레기 소각장에서 학급 아이들과 함께 재활용품을 분리해 판매했다. 1년간 모은 수익금 15만여 원 중 5만 원을 아이들의 통장에 1,000원씩 넣어줬다. 저축을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이웃을 돕는 성금으로, 나머지 10만여 원을 기부해 당시 6학년 5반 학생들과 함께 보람을 나눴다.
“이듬해인 1990년의 일이에요. 그때 6학년 담임이었는데, 3층 교실에서 화분을 나르던 우리 반 학생이 열어둔 창문 밖으로 떨어지고 만 거예요. 눈앞이 캄캄했죠. ‘네가 무사하기만 하면 평생 남을 도우며 살겠다’고 되뇌면서 아래로 뛰어 내려갔어요. 하늘이 도왔는지 약간의 타박상을 입었을 뿐 아이가 멀쩡하더라고요. 그때 그 일이 더 열심히 나누게 된 계기가 됐어요. 쌍둥이 엄마가 된 그 제자와는 요즘도 수시로 안부를 주고받아요. 저를 나눔으로 이끈 은인이라서 늘 고맙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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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쓸쓸함을 기쁨으로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나눔 같아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게라도 나누면 뜻밖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나이듦의 기쁨, 나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약정한 1억 원 외에 그가 지금껏 기부해 온 돈은 어림잡아 3,000만 원이다. 대구 요셉의집, 달서인 재육성장학재단, 대구광역시교육청,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 꾸준히 성금을 기탁했다. 아이들과 함께 폐품을 수집하고 판매해 수익금을 기부하는 한편, ‘뜻밖의 수입’이라 생각되는 돈은 모두 기부금으로 썼다. “상금도 다 기부했어요. 운 좋게도 한국교육삼락회에서 주는 ‘사도대상’, 남강문화재단에서 주는 ‘남강교육상’ 등 굵직굵직한 상을 받았거든요. 상도 받고 기부도 하니 기쁨이 두 배가 되더라고요.” 또 현직에 있을 때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 그는 봉급 명세서에 적힌 교통비 10만 원을 ‘여윳돈’이라 여겨 선뜻 기부했다. 3년간 3만 원씩 받은 ‘모범공무원상’ 수당도 전부 기부금으로 사용했다. ‘절약’이 나눔의 원천인 셈이다. 그의 절약 습관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만들어졌다. 남의 집 일을 하던 아버지와 숙주나물을 키워 팔던 어머니를 돕기 위해 그는 신문 배달도 하고 숙주나물 키울 물도 길어 나르며 학교에 다녔다. 물자의 소중함을 너무 잘 알았다. 생계에 보태려고 아버지와 함께 고물을 모으면서 아버지 곁에서 어깨너머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배운 것이 지금 제법 큰 도움이 된다. .
“공직자로 41년 일하고 퇴직했을 때, 나라에서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무엇으로 돌려줄까를 아무리 생각해도 제게 특별한 재능이 없더라고요. 할 줄 아는 게 폐품 모으는 것밖에 없어서 계속하는 거예요. 근데 이게 아주 큰 보람을 줘요. 은퇴를 앞둔 분들에게 한 가지를 권하라면, 바로 ‘나눔’이에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게라도 나누면 나이듦의 쓸쓸함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을 거예요.”
그는 하루에 명함형 전단지 100장, 투명 페트병 30개를 행정복지센터에 가져가면 300원씩에 매입해 준다는 팁도 전했다. 언젠가 다다를 태산을 위해 기꺼이 티끌을 모으는 사람.
우직함이 때론 지혜로움이라는 걸, 그는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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