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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돋보기

물리학으로
‘세상 물정’을 이해하다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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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에게 ‘물리학’은 딱딱한 교과서 속 어려운 지식으로 다가온다. 아인슈타인이 정리한 특수상대성이론인 E=mc2 같은 수식도 외워야 할 부담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물리학은 세상과 동떨어진 ‘천재 아니면 괴짜’의 학문일까? 통계물리학자 김범준 교수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세상 물정’에 관한 의문을 물리학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한다.

글 정라희 l 사진 이용기

다양한 사회현상을 탐구하는 물리학자

‘몇 단계를 거치면 세상 사람을 모두 알게 될까’, ‘MBTI와 혈액형으로 성격을 구분할 수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보지만 정말인지 탐구해 본 적은 없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런 궁금증도 ‘물리학’적으로 풀이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알고 보면 물리학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다. 대학에 개설된 전공을 기준으로 분류하면 응집된 물질의 상태에 관해 연구하는 ‘응집물질물리학’, 원자핵을 연구하는 ‘핵물리학’,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를 연구하는 ‘입자물리학’, 우주를 연구하는 ‘천체물리학’, 빛의 여러 현상이나 물질의 광학적 성질을 연구하는 ‘광학물리학’ 등 일일이 꼽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 가운데 김범준 교수는 물리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세상 물정의 본질에 다가간다.
“물리학에서 다루는 범위는 매우 넓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물리학자들은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그 근본 원리를 밝히는 데 집중합니다. 거기서부터 질문이 시작되는 거죠. 그 물음의 답을 밝혀내기 위해 가장 극단적인 수준까지 파고드는 노력도 병행되고요. 대다수 물리학 분야는 연구 ‘대상’을 기준으로 구분하지만, 그와 달리 통계물리학은 통계를 연구 ‘방법’으로 활용하는 물리학입니다. 그런 점이 독특하죠.”
통계를 방법론 삼아 연구할 수 있는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씨나 이름은 물론 친구 관계까지도 ‘물리학’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15년에 출간한 김범준 교수의 저서 『세상물정의 물리학』은 우리를 둘러싼 사회와 물리학의 융합과 통섭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려주는 교양서이자 입문서다.

세상 물정과 만난 물리학

세상 물정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익숙하거나’ 혹은 ‘관심이 없어서’ 현상 이면에 숨은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 물정을 ‘제대로 보는 눈’이다. 이를 위해 김범준 교수는 ‘복잡계 과학’의 방법을 활용한다. 복잡계 과학은 통계물리학에서 전통적으로 다뤄온 상전이* 현상이나 최근 주목받는 연구 분야인 비평형 상태에서의 통계역학** 등과 달리 사회나 경제 등 다양한 현상에 주목한다.
“저도 처음 통계물리학을 전공하기로 했을 때는 전통적 통계 물리학 분야를 연구했어요. 2000년대에 통계물리학 분야에서 복잡계 연구가 급부상하면서 관련 연구가 활발해졌습니다. 지금은 저뿐 아니라 많은 통계물리학자가 복잡계를 연구합니다. 복잡계 과학에서 말하는 ‘복잡한(complex)’의 의미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뜻과는 달라요. 개체가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다양한 패턴을 엮어내는 것처럼, 수많은 미시적 구성 요소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거시적 현상을 의미하죠. 하나의 현상에 복잡하게 얽힌 다양한 결을 하나하나 풀어 알기 쉽게 밝혀내는 겁니다.”
그래서 복잡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수많은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기도 한다. 전통적 통계물리학에서 주로 다루는 물리적 입자가 아닌 사람도 얼마든지 물리학의 입자처럼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차례로 이어지는 제한된 환경이 아닌 수많은 사람과 요인이 얽히고설킨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은 때로 설명하기 힘들 때도 많다. 이럴 때 통계물리학적 관점은 과학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우연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친구와 함께 걷다 보면 우연히 아는 사람과 마주칠 때가 있죠. 어떨 땐 제 친구도 그 사람을 알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 일이 있으면 우리는 ‘세상 참 좁다’라며 놀랍니다. 이런 일은 저는 물론 여러분 주변에도 많을 겁니다. 놀라운 일이라도 자주 생긴다면 거기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좁은 세상 효과(Small World Effect)’라고 하는 이 현상은 세상의 많은 사람이 몇 다리만 건너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중간 단계가 하나둘만 늘어도 연결되는 사람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까닭이다. 미국에서는 평균적으로 다섯 단계를 거치면 서로 알지 못하던 두 사람이 연결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 상전이: 온도, 압력, 외부 자기장 등 일정한 외적 조건에 따라 물질의 상(phase)이 다르게 바뀌는 현상. 예를 들어 물이 끓어 수증기로 변하는 것
** 통계역학: 많은 수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거시적인 물리계를 통계적인 방법으로 기술하는 물리학의 중요 이론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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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현상을 물리학적으로 바라보는 법

국내에서 유행하던 이름의 연결망 구조나 한국 성씨의 지역분포도 등도 복잡계 과학의 연구 대상이 된다. 누군가는 이런 연구 내용을 듣고 ‘어디에 응용할지’를 묻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과학이 응용을 위한 것은 아니다. 과학은 대상이 아닌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이나 사회제도에 적용할 수 있는 물리학 연구는 얼마든지 있다.
“이전에 커피 전문점이나 학교, 병원처럼 특징적 시설물의 분포에 대한 연구를 했어요. 그 결과로 커피 전문점처럼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시설의 밀도는 그 지역의 인구밀도에 비례해야 하고, 학교나 주민센터, 소방서 등 공익 시설은 인구밀도의 3분의 2승에 비례한다는 것을 밝혔죠. 또 실제 현실의 통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공익시설물의 분포가 인구밀도의 3분의 2승을 따른다는 것도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공익시설의 위치를 선정하는 방법은 상업시설과는 달라야 하고, 공적 운영이 필요한 시설을 영리 기관에서 맡는다면 사회 구성원에게는 손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대중교통 수단도 없이 100km 떨어진 학교로 통학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누군가는 교육의 권리를 침해받을 수 있으니까요.”
<세상물정의 물리학>을 기점으로 김범준 교수는 책과 유튜브 등을 통해 과학 대중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과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과학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다. 과학에 대한 최소한의 교양을 바탕으로 ‘과학적인 사고’를 할 때, 일상에서 좀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까닭이다.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현대사회에서는 각자 판단해야 하는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잖아요. 그때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게 해주는 힘이 바로 과학적인 사고에 있어요. 음이온 침대 사건을 예로 들어볼까요. 외부에서 전원을 공급하지 않았는데도 음이온이 방출된다면 거기에 방사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는 거거든요. 당연히 몸에 좋을 리 없죠. ‘우리 회사 제품은 전원을 꽂지 않아도 음이온이 나오는 놀라운 침대입니다’라고 할 때,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힘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이따금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과학적이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궁금할 수 있거든요. 그런 주제에 답하기 위해 저도 공부를 많이 하게 됩니다.” 물리학자가 등장하는 과학 콘텐츠에 대중의 관심이 쏟아지는 일은 고무적이다. 그는 여기에 희망을 조금 더 품어본다. 쉽게 설명하는 과학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가끔은 다른 학문의 책도 살펴주기를 바란다고. 물리학과 만난 다른 학문의 시선으로 보면, 세상을 다르게 볼 기회가 생긴다. 이 또한 세상과 과학을 연결하는 물리학자의 역할이라 그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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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이따금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과학적이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궁금할 수 있거든요. 그런 주제에 답하기 위해 저도 공부를 많이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