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성미 l 사진 성민하
글 이성미 l 사진 성민하
어릴 적 병원에서 본 간호사는 마치 천사 같았다. 흰색 가운을 입고, 웃는 얼굴로 환자와 보호자를 맞이했다.
백의의 천사는 10년 후 대학을 결정할 때까지 유경화 회원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가톨릭대학교 간호학과에
입학해 공부한 그는 1987년 성바오로병원(현 은평성모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간호사
근무 환경이 열악해 “결혼하면 그만두어야 한다”, “일이 힘들어 2년을 채우기 어렵다”라고 했지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되어도 유경화 회원은 환자 곁을 지켰다.
유경화 회원은 자신의 직장(병원) 생활을 “신호등도 없는 / 오로지 목적지를 향한 추월 차선을 넘나드는 직진
고속도로”(‘내 인생의 38번 길’)라고 표현한다. 간호사가 된 후에도 미국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고, 석사와 박사 학위도
받을 만큼 열심히 달려왔기 때문이다. 간호학과 관련해 새로운 기술과 동향을 파악하려는 노력도 계속했다.
전문성을 갖춰 환자에게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가 환자를 사랑하는 방식이자 사명이었다.
1987년 성바오로병원(현 은평성모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한 유경화 회원은 환자들을 돌보며 틈틈이 글을 썼다.
1987년 성바오로병원(현 은평성모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한 유경화 회원은 환자들을 돌보며 틈틈이 글을 썼다.
유경화 회원은 간호사로 일하며 틈틈이 글을 썼다. 아이를 키우며 육아 일기를 쓰고, 근속 5년 주기로
직장 생활을 되돌아보는 회고록도 썼다. 바쁘게 움직이는 일상에서도 글 쓰는 시간만큼은 느리게
흘러갔고, 그것은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뻔한 병원 이야기보다는 색다른 무언가를 써보고
싶었던 유경화 회원은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전문적으로 배울 곳을 찾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시를 배우겠다고 뜻을 세우니 꽃길이 펼쳐졌어요. 당시 숲
해설에 관심을 두고 활동했던 숲과문화연구회에서 시인을 만났거든요. 어디서 시를 배울 수 있는지,
등단은 어떻게 하는지 꼬치꼬치 물으니 ‘시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이라며
화정시회를 추천하더군요. 마침 근무하던 병원과 가까운 곳에서 정기 모임이 열리고 있어 그날로
입회해 시에 대한 허기를 달랬습니다.”
화정시회는 매주 화요일에 모여 한 주 동안 쓴 시 한 편과 교재로 공부하는 시문학 동아리다. 유명
시인이자 목포대학교 명예교수인 허형만 교수가 지도한다. 유경화 회원은 매주 화요일 화정시회에서
열심히 시를 배우고 썼다.
꾸준히 쓴 시가 모이자 이번에는 시집을 내고 싶었다. 시집을 내려면 시인으로 등단해야 하는데,
신춘문예 공모는 벽이 높았다. 조금 더 쉬운 길인 문예지 공모를 통해 『착각의 시학』 2024년
여름호로 등단한 유경화 회원은 같은 해 10월 퇴직 기념 시집 『시작』을 출간했다. 등단해 자기
이름으로 시집까지 낸 진짜 시인이 된 것이다.
전문 작가도 시 한 편 쓰는 일이 쉽지 않은데 몇 달 만에 수십 편의 시를 모아 시집을 낸 비결을 묻자,
유경화 회원은 “어렵지 않게 쓰는 것”이라고 답한다. 감각과 언어를 교차해 어렵게 쓰기보다는 감각
그대로를 언어로 옮긴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양질의 대화를 하고, 좋은 책을 읽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며 유경화 회원은 저절로 아름다운 시를 낳는다.
2024년 3월, 유경화 회원은 37년간의 간호사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했다. 퇴직 당시 마음은 단
세 단어로 요약된다. “기쁨 / 그리고 / 울컥”(‘정년퇴직’)
“퇴직할 때의 마음은 긴 여행을 떠나기 전의 마음과 똑 닮았어요. 여행을 떠나기 전 가방을 챙기면서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남은 가족을 위해 냉장고를 채우고 집안일도 미리 해두려면 바쁘잖아요.
퇴직을 앞두고 간호사로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만감이 교차했어요. 그래도 기쁘게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틈틈이 이어온 취미와 작품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유경화 회원은 현재 간호대학에서 주 2회 강의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월 2회 의료봉사를 한다.
숲과문화연구회 회원들과의 숲 탐방과 화정시회 동인으로서의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우쿨렐레, 수영
등 취미도 많다. 간호사로 근무하며 그러했듯 유경화 회원은 매일 성실하게 살고, 또 쓰고 있다.
퇴직을 앞둔 사람들에게 유경화 회원은 “퇴직 5년 전, 빠르면 10년 전부터 무엇을 할지 구상하고,
미리 시행착오를 겪는 게 좋다. 그리고 퇴직 1년 전에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라”라고 당부한다.
‘시를 쓰고 싶다’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처음 제가 ‘작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매일 쓰세요’라는 답을
들었어요. 당시에는 특별하게 들리지 않던 말이 곱씹을수록 정답이에요. 매일 많은 책과 시집을
읽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그 안에서 시가 될 씨앗을 찾아 가꾸는 일이 쉽지 않거든요. 꾸준히
노력하고 훈련해야만 시가 생겨요.”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하면, 분명 ‘정말 잘했다’고 여길 거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 믿음은 지금
인생의 62번 길을 달리는 원동력이다.
“간호사로 37년간 재직 후 // 환갑을 맞이하는 나이에 / 모든 것을 새로 시작(始作)해 본다 //
시작(始作)은 시작(詩作)이다 /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하니 // 시작(詩作)하길 정말 잘했다 //
그동안 가족과 동료 이웃과 함께 / 살아온 소중한 삶에 감사를 담은 / 꾸준한 시작(詩作)으로 //
아름다운 꽃에 나비가 춤추고 / 무성한 나무에 새가 노래하는 / 축제의 삶을 꿈꾸어 본다”
시집 『시작』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