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 사진 출처 넷플릭스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 사진 출처 넷플릭스
“456번, 아직도 사람을 믿나?” 등 뒤에서 들려오는 프런트맨의 물음에 ‘기훈’은 잠시 멈칫하지만, 이내
말없이 그에게서 멀어진다. 그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하고 싶었던 걸까.
총 456억 원의 상금을 걸고 456명의 참가자가 겨루는 서바이벌 게임. 1인당 목숨값은 1억 원으로, 참가자가
죽을 때마다 남은 이들이 가져갈 상금이 1억 원씩 늘어난다. 이 잔혹한 게임은 인간의 본성을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인간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과 악하다는 성악설이 게임 속에서 첨예하게 맞부딪힌다.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 시즌 3은 공개와 동시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넷플릭스가 Top 10 차트를
제공하는 93개 국가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콘텐츠*로 기록됐다. 이처럼 세계적 인기를 얻은
‘오징어 게임’ 시리즈는 성공적인 지식재산권(IP)으로 평가받는다.
2021년 9월 시작된 ‘오징어 게임’ 신화는 총 6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시즌 3을 끝으로 4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출처: 넷플릭스 보도자료(2025. 7. 2.)
‘오징어 게임’ 시즌 3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은 이전 시즌에 비해 더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다.
게임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참가자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는 한 참가자. “뭐 하냐”는 기훈의 외침에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뭐 하긴, 게임하지. 너랑 나랑 다 먹는 거라고.”
사람 사는 세상에 옆 사람을 돕고 약자와 동행하려는 사람이 없을 리 없다. ‘현주’는 임산부 ‘준희’와
고령의 ‘금자’를 도우려 하지만 쉽지 않다. 금자는 한숨을 쉬며 기훈에게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이 참 불공평해요. 못된 놈들은 나쁜 짓 해놓고도 남 탓하면서 편히 사는데, 착한 사람들은
뭐가 조금만 잘못되어도 다 자기 탓을 하면서 가슴을 쥐어뜯어요.” 권선징악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공자님 말씀이 되어버린 걸까.
가장 민주적인 제도인 투표를 통한 다수결마저 강자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한 명씩 탈락시켜야
하는 고공 오징어 게임. 최후의 9명은 즉석 투표를 통해 탈락자를 한 명씩 가려낸다. 하지만 사전
모의 뒤에 진행된 공개 투표가 공정할 리도, 공평할 리도 없다. 다수결 원칙에 따라 민주적으로
진행했지만 투표는 2명에 대한 6명의 횡포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변질된다. 이처럼 투표가 다수에
의한 폭력적 수단으로 변질되면 이를 그대로 수용할 소수는 없다. 소수의 필사적 저항이 뒤따른다.
필사적인 기훈의 눈빛에 6명의 다수는 움찔한다.
‘오징어 게임’은 잔인함의 수위가 높고 욕설 등 비속어가 난무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배경에는 작품이 던지는 정치적·사회적 메시지에 대한
공감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정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한 경쟁,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들, 모순과 불신으로 가득 찬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의 불완전성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로써 커져 버린 상호 불신은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며
각자도생의 길로 내몬다.
마지막 게임을 위해 참가자들이 떠난 숙소 벽에는 라틴어로 적힌 한 문장이 도드라져 보인다. ‘오늘은
나지만 내일은 너다(Hodie Mihi, Cras Tibi)’. 고공에서 진행되는 오징어 게임의 세모, 네모, 동그라미
기둥은 모두 낡아 있다. 언뜻 견고해 보이지만 부실한 우리 사회 시스템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였다.
어쩌면 다음 피해자는 당신이 될 수 있다는 감독의 경고다.
우리나라를 무대로 한 ‘오징어 게임’은 시즌 3로 막을 내렸다. 황동혁 감독은 “시즌 4는 없다”라고
단언하며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고 했다. 하지만 막이 완전히 내려진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마지막, LA 뒷골목으로 무대가 바뀐다. 한 백인 남성이 딱지를 치고 있다. 그는 ‘딱지녀’에게
뺨을 맞은 뒤에도 계속 “한 번 더”를 외친다. ‘오징어 게임’이 아닌 ‘스퀴드 게임(Squid Game)’의
시작을 알리는 쿠키 영상일까. 일각에서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오징어
게임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미국 드라마로 재탄생한 ‘설국열차’처럼 ‘오징어 게임’이 미국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미국 감독의 손에 리메이크된 ‘오징어 게임’은 어떤 맛일까. K-콘텐츠의 바통을 이어받은 할리우드는
어떤 화답을 할까. 드라마는 끝났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