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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이모작

뷰파인더에 담긴 세상은 언제나 아름답다

재능 기부 사진작가 정창완 회원
카메라 렌즈를 통과한 풍경이 눈동자에 맺힌다. 분명 조금 전까지 보던 풍경인데, 금방 ‘작품’이란 옷을 입고 나타난 듯 달리 느껴진다. 평범해 보이던 사람도 렌즈를 통해 바라보면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서 말을 거는 듯하다. 카메라를 들고 나서부터 터득한 마법이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서 정창완 회원의 삶도 뷰파인더 안으로 들어온 듯 더욱 특별해졌다.

이성미 / 사진 이용기

주인공 사진

카메라와 평생 친구가 되다

사진은 작가의 힘이 단 한 장으로 응축된 예술이다. 사진 한 장을 탄생시키기 위해 작가는 섭외 감독이 되었다가 촬영 감독이 되었다가 조명 감독이 되었다가 편집자가 된다. 그리고 평범한 피사체를 예술로 빚어낸다. 마치 연금술사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사진작가를 동경하는 이유는 한 대의 카메라로 세상에 마법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79년 처음 카메라를 잡은 후 정창완 회원도 마법사가 되었다.
“40년도 넘은 옛날 이야기예요. 어느 날 산에 올랐는데 백발의 어르신이 카메라를 들고 서 계셨어요. 저는 그 순간을 마치 사진을 현상해놓은 것처럼 생생히 기억해요. 그때 ‘저거다’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콱 박혔거든요. 평생 카메라를 잡고 싶다는 바람도 생겼죠. 그런데 정말 제가 그때 본 어르신 나이가 되어 있네요.”
운명적인 만남 후 정창완 회원은 ‘아사히 펜탁스 MX’ 기종 카메라를 품에 안았다. 당시 그의 월급을 생각하면 고가였지만, 평생 친구라고 생각하니 값이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사진기는 있지만 사진 찍는 기술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사진을 배우기 위해선 이름난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교직에 있던 그에게 작가를 따라다닐 여력은 없었다. 유튜브는커녕 컴퓨터 있는 집도 몇 없던 시절이었으니 곁눈질할 데도 없었다.
타고나길 호기심 많고 도전하기를 좋아하던 정창완 회원 자신도 누군가에게 배워서 사진을 찍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모사나 학습이 아닌 철저히 경험, 즉 실패와 실수를 통해 사진을 배우기로 했다. 그러고는 주말만 되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같은 풍경을 앞에 두고도 조리갯값과 셔터 속도를 달리해 찍으며 방법을 연구했다. 달 하나를 찍는데에도 필름 세 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진을 찍고 나면 그날 이력을 기록하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생스러웠지만, 그 덕분에 전에 없는 정창완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가 완성됐다.

렌즈를 통해 마음속으로 들어온 사람들

자신만의 색깔이 짙어지는 만큼 사진에 대한 애정도 깊어갔다. 이 좋은 것, 이 즐거운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1990년 서울 재현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정창완 회원은 사진부를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 서울중등사진교육연구회도 창단해 같은 뜻, 같은 취미를 가진 교사들과 어울렸다.
“서울중등사진교육연구회 회원들과 ‘전국 오일장을 홍보하자’라는 목표를 두고 전국 시장을 누볐어요. 한참 시장을 돌아다니며 상인들과 어울리고 나면 생동감에 취해버리곤 했죠. 요즘은 초상권 때문에 ‘찍지 말라’는 사람이 많지만, 1990년대만 해도 카메라를 향하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당시 회원을 기반으로 만든 ‘장터포토클럽’은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2019년 6월에도 회원들과 함께 세종문화회관에서 <장터와 풍경 사진展>을 열었고요.”
정창완 회원의 렌즈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 보면, 거기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연구회 회원 한 명이 “시골 어르신 장수 사진(영정사진)을 찍어보자”라고 제안하면서 그 방향은 더 올곧아졌다. 사비로 장만한 장비를 싣고 그들은 사람의 발길이 뜸한 시골 깊은 곳으로 갔다. 그러고는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에 곱게 화장을 해드리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기 전에는 빼놓지 않고 어르신과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인생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사진을 남겨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수 사진을 찍는 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것과는 만족감이 달랐다. 그 후로 정창완 회원은 사진이 필요한 사람, 사진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다녔다. 교내 사진부 학생들도 선생님의 뒤를 따랐다.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나면 정창완 회원은 학생들을 차에 태우고 지방 곳곳 봉사 활동을 다녔다.
“렌즈를 통해 사람을 바라보면 표정 하나하나 살아서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져요. 멀리 앉아있는 사람인데 마음이 맞닿은 기분이 들죠. 오직 사진 찍는 사람만이 아는 감정입니다. 아이들에게도 그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덕분에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사진학과 진학을 결정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렌즈를 통해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발견한 아이들을 보면 정말 뿌듯했어요.”

취미에 의미를 더해 더욱 행복한 인생 2막

정창완 회원은 퇴직 후 사진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그는 서울 내 지역 예술 단체와 시니어 및 퇴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센터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꾸준히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때 행복한 노후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행복한 노후가 더 행복해집니다. 취미 생활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생활이 시작되니까요.”
특히 정창완 회원은 서울시50플러스 남부캠퍼스 나눔사진연구회와 함께 독거노인 장수 사진, 다문화 가족 사진, 보육원 아이들 생일 축하 사진 등을 촬영해 전달하는 봉사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서울시교육청 산하 북부교육지원청 문해 교육 이수자를 대상으로 졸업 사진도 찍는다. 지난해에는 그간 평생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서울특별시 교육감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취미에 의미를 더하니 금상첨화인 셈이다.
코로나19 이후 봉사, 전시 등 활동에 제약이 많지만, 사진이 필요한 곳이라면 그는 언제든 달려갈 생각이다.
“앞으로 계속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싶어요. 우리 삶과 맞닿은 풍경을 찍고 싶거든요. 골목 상회, 재래시장, 아파트 재건축 현장 등 흥망이 있는 서울 풍경도 기록사진으로 남기고 싶고요. 그렇게 계속 사진의 쓰임을 생각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목표는 나이가 들어서도 처음 카메라를 잡았을 때의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는 “작가는 사진에 자기 삶의 무게를 표현하게 된다. 예술과 생활은 불가분의 관계다”라고 했다. 정창완 회원의 사진이 가볍지 않되 따뜻한 이유는 찍는 이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생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교사의 숙명이 무거운 만큼 정창완 회원의 삶도 분명 가벼웠을 리 없다. 앞으로도 정창완 회원은 자신을 닮은 사진과 손을 맞잡고 곧은 방향으로 계속 걸어갈 것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
인생 이모작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재능을 기부하며 역동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의미 있는 인생 이모작을 실현하고 있는 회원님을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The-K 매거진」 지면에 담아 많은 회원님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를 전해드리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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