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매거진(더케이매거진)

배움의 새싹 > 생생지락(生生之樂)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즐기는 이들의 이야기

생생지락(生生之樂)

산이 안겨준 제2의 인생

등산 교육 전문가 박미숙 강사
생생지락01
생생지락01
인생 2막에 안착하려면 ‘바꿈’과 ‘가꿈’이 필요하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과감히 바꾸고, 새로 만난 뜰을 정성껏 가꿔야 한다. 박미숙 회원은 그 두 가지를 성공적으로 해낸 사람이다.
유아 교육 전문가에서 등산 교육 전문가로 삶의 방향을 튼 뒤 자기만의 우주를 유쾌히 유영 중이다. 그 비결로 그는 ‘좋아하는 일을 즉시 해보는 태도’를 꼽는다. 마음껏 사랑하고 힘껏 도전하면서, 전성기보다 눈부신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글 박미경 l 사진 이용기

산이 준 선물, 감탄과 감사

그는 감탄사를 꽤 자주 쓴다. 활짝 갠 하늘에도, 활짝 핀 눈꽃에도, 살짝 언 폭포에도, 감탄이 가득 담긴 외마디 말을 곧잘 내뱉는다. 자연이 주는 감동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감동은 이내 감사로 이어진다. 자연이 시시각각 옷을 갈아입는 것도, 자신이 때마다 그것을 만끽하며 사는 것도, 새록새록 고마워서 가슴이 뭉클하다. 감동과 감탄과 감사. ‘산’이 그에게 준 삶의 선물이다.
“산은 단 한 순간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요. 날씨와 계절은 물론이고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서도 전혀 다른 곳이 돼버리죠.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그 느낌이 사뭇 다르고요.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고향 친구’처럼 편안하다는 게 참 신기해요. 오랜만에 가도 어제 만난 듯하고, 언제 찾아가도 ‘나’를 온전히 받아주죠.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의 직업은 등산 교육 전문가다. 2019년부터 4년간 블랙야크의 등반 교육 프로그램 ‘BAC아카데미’를 이끌었고 현재는 기업과 대학, 연수원, 공립도서관, 소규모 등산 클럽 등의 의뢰를 받아 정기 또는 비정기적으로 등산 교육을 진행 중이다. 갈 때마다 색다른 산처럼 그의 강의도 매번 다르게 진행된다. 듣는 대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는 강의를 요청한 목적, 청중의 연령대와 청중의 등산 경력 등을 사전에 질문해 강연 내용을 구성하고, 강연장도 일찌감치 찾아가 분위기를 파악해 둔다. 한 사람씩 청중이 들어오면 ‘무엇이 제일 궁금한지’ 미리 물어 강의할 때 활용하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즐거움. 산이 그에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생생지락02
생생지락02_1
생생지락02_2

▲ 네팔 랑탕 히말라야 체르코피크에서 등반 중인 박미숙 강사

잡념 한 줌 없는 몰입감의 세계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던 경험이 등산 교육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암벽등반을 처음 할 때는 무척 두렵거든요. 아이들을 오래 지도하다 보니 관찰력이 좋은 편인데, 절벽에 매달린 사람들을 보면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와요. 아이들을 가르칠 때 그랬던 것처럼, ‘초보’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천천히 차근차근 지도하죠.”
그의 ‘성공’은 일찍 찾아왔다. 20대 후반에 유치원 설립자 겸 원장이 된 그는 자신이 직접 유치원을 운영할 때도, 지인의 초빙으로 지역에 새 유치원을 안착시킬 때도 그만의 독특한 시도로 학부모의 마음을 얻었다. ‘어린이와 경제’, ‘유아 리더십’ 등의 프로젝트를 연령대에 맞게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길러줬다. 학부모를 위한 교육지(敎育誌)도 매주 만들어 발송했다. 부모들의 어려움을 경청하고 공감하면서 문제 해결 방법을 함께 찾아 나갔다. 교사들이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전문가 초청 연수 프로그램도 자주 운영했다. 일련의 노력으로 모두에게 인정받는 원장이 됐지만, 그러는 동안 그가 가진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때 관악산에 갔어요.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게 어떤 건지 온몸으로 알게 된 날이었죠. 돌이켜보니, 어린 날 아버지의 자전거 짐칸에 앉아 동네의 야트막한 산에 물을 뜨러 다니던 때부터 산을 좋아했더라고요. 몸이 산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이후 수시로 산에 올랐다. 잊고 있던 행복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떠난 한북정맥 산행에서 길을 잃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하산하면서, 산은 아무렇게나 타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곧바로 코오롱등산학교에 입학해 등반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암벽등반을 만나고, 이후 삶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암벽등반의 매력은 엄청난 몰입감에 있어요. 절벽 위에 있는 시간만큼은 그 어떤 잡념도 머릿속에 끼어들지 못하거든요. 20m쯤 오른 뒤 문득 뒤돌아보면 숨 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요. 절벽 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숨은 비경’이 암벽등반을 지속하게 만들죠. 혼자 할 수 없다는 것도 암벽등반의 매력 중 하나예요. 신뢰할 수 있는 동료와 한 발씩 함께 오르다 보면 자연과 사람을 점점 더 사랑하게 돼요.”

생생지락03
생생지락03_1

현재의 ‘무대’에서 내려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 보세요. 타인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그걸 할 수 있을지도 의심하지 않는 겁니다. 뜻밖의 기회가 열릴 거예요.

좋아서 한 일, 직업이 되다

그의 원정 이력은 꽤 화려하다. 2001년 캐나다 부가부 산군(山群)을 시작으로 알프스 몽블랑, 말레이시아 키나발루,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네팔 랑탕 히말라야 체르코피크, 스위스 마터호른 등 세계의 이름난 산과 거벽을 약 20차례 등반하거나 종주했다. 국내에선 ‘그리움 둘’이라는 이름의 설악산 유선대 암벽등반 코스를 개척하기도 했다. 누군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한 일들이다.
“좋아서 한 일이 직업으로 이어졌어요. (사)대한산악연맹 교육원에서 등산 강사 1기를 모집할 때 선배의 권유로 지원하게 됐거든요. 1년간의 등산 교육 자격 연수를 마치고, 2007년 ‘모교’인 코오롱등산학교에서 강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계속 기회가 열렸다. 수원여자대학교 레저스포츠 학과에서 ‘스포츠 클라이밍’이라는 전공과목을 가르치게 됐고, 국립목포대학교에서 스포츠마케팅학으로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사)대한산악연맹 학술문화이사로도 활약하게 됐다. 현재 그는 국내외 산악계 활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산악연감』을 매년 만들고, 등산과 관련한 정책 보고서도 수시로 쓴다. 바쁘지만 기쁘고, 힘들지만 보람차다.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고 싶은 분께 먼저 ‘무대’에서 내려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과거와 산뜻이 이별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즉시 시작하는 거예요. 타인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그걸 할 수 있을지도 의심하지 않는 겁니다. 뜻밖의 기회가 열릴 거예요.”
그는 요즘도 무언가를 꾸준히 배우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 어떤 즐거움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모름’이 그를 설레게 한다. 아직 겨울이 한창인데, 그는 내내 봄날을 살고 있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