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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누기

좋은 사람 좋은 생각

스쿨 오브
아이들의 마음을 노래하는
8집 가수 교장선생님

서울시 교육청 학생교육원 방승호 교육연구관
근엄하게 훈화를 해야 할 것 같은 교장 선생님이 탈 쓰고 기타 치며 노래한다. 한국 영화 최초로 ‘2020 핀란드 헬싱키 국제 교육 영화제’에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되어 대한민국 공교육의 새로운 희망을 알리는 다큐멘터리 영화, 「스쿨 오브 락(樂)」의 한 장면이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아현산업정보고등학교의 3년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교장 선생님은 바로 서울시교육청 학생교육원 방승호 교육연구관이다. ‘진짜 꿈’을 좇는 아이들의 친구가 된 그를 만났다.

정라희 / 사진 이용기

공부보다 중요한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

지난 5월 13일, 다큐멘터리 영화 「스쿨 오브 락」이 개봉됐다. 방승호 교육연구관이 아현산업정보학교에 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강호준 촬영감독이 먼저 찾아와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모험놀이 상담가’이자 ‘노래하는 선생님’ 등으로 여러 차례 미디어에 출연한 방승호 교육연구관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남기게 된 동기는 학교를 오가는 학생들의 밝은 얼굴이었다.
“시사회 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요즘도 영화를 본 전국의 선생님들과 온라인 회의 프로그램으로 후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학부모님들의 반응도 뜨겁고요. 저에게는 선물 같은 일이지요.”
서울 마포구에 있는 아현산업정보학교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만 다니는 직업학교다. 대학 진학 대신 다른 진로를 모색하려는 서울시 인문계 고등학생을 위한 학교로, 제과제빵이나 미용예술은 물론 콘텐츠 크리에이터, 실용음악, e스포츠, 게임 제작 등 다양한 전공이 개설되어 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하던’ 학생들이 그곳에서는 오히려 프로게이머 지망생으로 불린다. 같은 관심사를 지닌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고, 전문가로부터 전략 훈련을 받으며 진짜 프로게이머의 꿈을 키우는 것. 유명한 e스포츠 프로게임단에 입단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이 세상에 소중하게 쓰임 받을 재능이 과연 성적뿐일까. 그렇게 방승호 교육연구관은 학생들에게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말로만 하는 격려였다면 학생들에게도 감흥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권위를 내려놓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은 닫혀 있던 아이들의 마음을 열게 했다. 물론 교사가 먼저 ‘편하게 대하라’고 말한다고 해서 곧바로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아이들은 없다.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비결은 그가 오래도록 숙련해온 ‘모험놀이’에 있다. 모험놀이(Adventure Based Counseling)는 미국에서 검증된 청소년 상담기법이다. 방승호 교육연구관은 1997년과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으로 건너가 연수를 받았고, 이를 국내 교육여건에 맞게 토착화한 인물이다. 현장에 직접 적용한 다양한 기법들을 정리해 「기적의 모험놀이」, 「우리집 모험놀이」, 「모험놀이」등 이른바 ‘모험놀이’ 시리즈를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주인공 이미지 주인공이 출간한 책 이미지

하루 100명의 학생들이 찾아오는 교장실

모험놀이 상담은 교육 현장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주었다. 하루는 놀이공원에서 볼 법한 탈을 쓰고 학교를 누비기도 했다. 탈 하나만 썼을 뿐인데 교장과 학생들 사이의 거리감이 사라졌고, 아이들이 먼저 그의 손을 잡고 사진을 찍으며 친근하게 대했다. 주인공이 썼던 놀이공원에서 볼 법한 탈 이미지 “그날 하루에만 500명 넘게 아이들을 만났어요. 일주일을 돌고 나니 학교에서 자는 아이들이 사라졌습니다. 학교가 재미있으니 졸 틈이 없는 거지요. 한 주 더 지나니 ‘선생님은 쉬세요’ 하면서 자기들끼리 탈을 쓰고 다녀요. 그때 ‘학교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을 편하게 느끼게 된 아이들은 교장실 문턱도 쉽게 넘는다. 아무렇지 않게 교장실에 들어와 거리낌 없이 대화하고, 과자를 먹고, 노래를 부른다. 각 잡고 하는 상담보다 놀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더 효과적이었다. 이는 그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모험놀이를 현장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결과다. 일대일로 약속을 잡았다면 불가능했을 전교생 상담을 마친 셈이다.
가끔은 그가 먼저 팔씨름을 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가볍게 여기던 아이들도 일단 손을 맞잡고 나면 슬쩍 힘을 준다. 승부는 당연히 한창때인 아이들 쪽으로 기운다. 으쓱하기도 머쓱하기도 한 분위기 가운데 ‘너 운동했니?’ 하며 추켜세워주면 그때부터 대화가 터진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떤 아이는 합기도 몇 단에 태권도까지 잘합니다. 옛날 같으면 무도인이지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학업으로만 평가해요. 아이들과 몸을 부딪쳐가며 모험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먼저 자기 이야기를 꺼내요. 가정에서 있었던 골 깊은 갈등을 털어놓기도 하지요. 깊은 이야기를 감당하려면 저부터 상담 공부를 제대로 해야 했습니다.”

따뜻한 진심을 담아 노래하는 법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그도 달라졌다. 아이들에게 꿈을 물으면서 정작 자신의 꿈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침마다 글을 쓰며 좋아하는 일들을 기록하다 보니 ‘노래’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왔다. 거침없이 가수에 도전해 어느새 8.5집을 낸 중견가수가 됐다.
서울 중화고등학교 교장 재직 시절 발표한 3집 수록곡 ‘노타바코(No Tobacco)’는 SG워너비, 이승기 등 유명 가수의 히트곡을 작업한 안영민 작곡가에게 곡을 받았다. 방승호 교육연구관이 직접 쓴 가사에는 학생들을 향한 애틋한 진심이 묻어난다. 실제로 그는 학교에서 담배꽁초를 발견하면 흡연자를 찾아 혼내기보다 등나무나 화장실 주변에서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불렀다. 이후로는 학교에서 담배 피우는 학생들이 사라졌다.

다 되는데 담배는 안 되는 것 같다 / 등나무 밑에 가면 / 하얀 담배꽁초가 / 이놈의 자식들 혼을 내야지만 / 막상 보면 천진한 얼굴 / 그들의 이야길 들어보면 / 참 안쓰러운 맘 / 자신도 모르게 / 담배에 사랑을 갈구하는 것 / 걱정하지 마 / 할 수 있단다….

주인공이 기타와 음향장비를 이용해 곡을 만드는 모습 이미지 주인공과 학생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포스터 이미지

특별한 선생님의 유쾌한 인생 수업

방승호 교육연구관은 “아이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라고 전한다. 아현산업정보학교 재직 시절, 한 학생이 술이 깨지 않은 상태로 등교한 적이 있다. 그때 학생을 나무라기보다 물을 한 잔 따라주며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손님이 주는 술을 거절하지 못했고, 숙취가 남은 채로 학교에 왔다는 것. 보이는 행동만 보면 문제 학생이지만 속사정을 알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부모님을 돕기 위해 일하는 효심 깊은 아이이자, 술을 먹었음에도 학교에 빠지지 않고 등교한 학생인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가다 보면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아이는 없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느라 공부를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정형편이나 친구 관계, 성적 등의 문제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 게임을 하면서 위로를 받곤 한다고 해요.”
주인공과 학생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다큐맨터리 영화 장면 중 일부 이미지 * 「스쿨 오브 락」은 코로나19 이전에 촬영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다행히 영화 「스쿨 오브 락」이 공개되면서 반성하는 메시지를 먼저 보내오는 어른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덕분에 그는 요즘 한 가지 꿈이 더 생겼다. 영화를 통해 교사와 학부모들이 편견없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는 힘을 갖게될 것이라고 믿는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을 만나기는 어려워졌지만, 그는 온라인을 통해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서울시 교육청 학생교육원에 부임한 그는 ‘온라인 롤(LOL) 게임 학교’, ‘안전체험관’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해 호응을 얻었다. 모험놀이를 온라인에 접목한 교육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처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어렵게 여겨지던 문제도 해법이 생긴다. 교사로서 아이들과 어우러질 때 자연스레 찾아오는 순수한 순간이 그를 진짜 스승으로 만든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과 함께 자란다. 애정 어린 눈빛으로 서로 더 이해하기 위해 가까이 살피고 즐겁게 배우면서.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