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부모가 일방적으로 떠드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질문에 답을 하고, 부모는 그 답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질문을 던져나간다.
우리 집의 작은 기적을 일으킨 밥상머리 교육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고 했던가. 교육학자 김정진 교수가 밥상머리 교육에 몰입한 계기는 학자의 호기심만은 아니었다.
주말부부를 하며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던 시절, 주말에 겨우 얼굴을 마주한 자녀들과 부딪히는 크고 작은 갈등을 풀고 싶은 바람이 새로운 교육법에 눈을 돌리게 했다.
“저는 성격이 급한데 우리 딸은 내성적이고 느긋한 편이에요. 무언가 물어봐도 바로 답을 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아이를 다그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아이의 공책에 적힌 부정적인 단어들을 보면서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 고민하다 밥상머리 교육에 관심을 두게 되었지요.”
그때가 2015년. 대학에서 교육하는 사람임에도 부모로서 자신을 돌아보니 부끄러운 점이 많았다. 자진해 아버지 학교에 들어갔지만, 약발은 길지 않았다.
자녀들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고 싶은 아빠의 절박함이 방법을 찾게 했다.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만나는 첫 번째 선생님이 부모임에도,
정작 많은 부모가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아이들의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대학에서도 부모 교육을 제대로 연구한 학자가 많지 않았다.
국내에서 부모 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밥상머리 교육으로 학위를 받은 학자들은 아예 없다시피 했다.
출발점은 유대인의 하브루타(Havruta)였다.
‘친구’라는 의미의 하베르에서 파생한 용어인 하브루타는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학습법으로, 가정에서는 주로 식탁에서 부모와 자녀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저녁 식사를 가족과 함께하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는 유대인은 이 시간을 통해 자녀들과 다양한 주제로 소통한다.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재는 탈무드와 성경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소재로 부모가 던지는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별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탈무드와 성경이 일종의 토크 박스 역할을 하는 거지요.” 하지만 유대인의 역사와 종교를 주제로 하는 하브루타는 아무래도 한국인의 교육에는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이후에는 신문을 활용해 토론을 이어갔다.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났을 무렵, 변화가 일어났다. 아빠를 어려워하던 아이가 먼저 ‘토론하고 싶다’며 다가온 것이다.
이후로 김정진 교수 가족의 식사 시간은 지적인 세미나 현장으로 변했다.
EBS 「일단 해봐요 생방송 오후 1시」 출연 모습
밥상머리에서 시작되는 명문가의 가정교육
김정진 교수는 “알려진 명문가 역시 신문을 읽고 식사 시간에 가족끼리 토론을 자주 했다”라고 전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35대 대통령 존 F.케네디를 배출한 케네디가(家)다. 케네디의 어머니 로즈 여사는 식탁 근처 게시판에 그날 주요 기사를 스크랩해 붙여놓고,
식사 시간에는 기사와 관련한 대화를 이끌었다. 식탁에서 토론하는 일상은 자연스럽게 통찰력과 발표력을 키워주었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려면 준비 과정이 길어요. 평범하게 평소 생활과 생각을 물으며
‘일주일에 한 시간 아이를 변화시키는 기적의 밥상머리 교육’ 2018년 강연 모습 [출처:세바시 강연 Sebasi Talk 공식유튜브]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초반에는 괜찮지만, 나중에는 이야깃거리를 끄집어낼 토크 박스가 필요합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라면 신문을 읽게 하고 식사 자리에서 부모가 사회자가 되어 대화를 시작하는 거지요.”
존 F.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 역시 자녀교육에 관심을 두고 식사 자리에서 삶과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시간을 통해 아버지의 생각을 나누는 한편,
아이들에게 필요한 진로 교육을 병행한 것이다. 7년째 밥상머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김정진 교수 가족 역시 이제 식탁에서 대화하는 일이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평일에는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주말에는 신문 하나를 나눠 읽고 각자 질문을 세 개씩 적습니다. 그렇게 12개의 질문을 뽑아 한 시간 동안 대화합니다.”
학교에서는 하기 어렵고 친구들과도 나눌 수 없는 특별한 대화의 경험.
이런 시간을 통해 부모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넘어 지혜를 물려준다. 밥상머리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부모가 일방적으로 떠드는 것이 아니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처럼 부모는 질문을 던질 뿐, 답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질문에 답하고, 부모는 그 답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질문을 던져나간다.
부모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 수는 없어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고 질문을 던질 수는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답을 찾아갈 것이다.
무료 공개한 한국형 탈무드 ‘지혜 톡톡’ 어플
문답으로 아이와 친해지면 비로소 시작되는 진정한 소통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여기저기서 말하는데도, 국내에서는 아직 밥상머리 교육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합의된 정의가 없다. 사전에서는 밥상머리 교육을 ‘
부모와의 예절 교육’으로 간단히 풀이하지만, 김정진 교수는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표현에 진짜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밥상’이 공간이라면 ‘머리’는 시작을 뜻한다.
즉 밥상에서 시작되는 교육이 바로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것.
김정진 교수는 KBS1 ‘한국인의 밥상’ 10주년 특집기획 편에 출연해 밥상머리 교육에 대한 오랜 기록이 「세종실록」에 등장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른 아침부터 대외 일정을 소화하기 바빴던
세종대왕이 하루에 무려 세 차례 세자와 식사하며 공부를 가르쳤다는 내용은 부모와 자식 간 전통예절이 침묵에 있지 않음을 알려준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조선인의 가정을 일본화하기 위해 1937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문화를 말살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지만 부모들은 여전히 우리말을 쓰니 서로 대화하기가 어려웠지요.”
지금은 부모와 자녀가 같은 언어를 씀에도 끊어진 대화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김정진 교수는 자신이 깨달은 바를 더 많은 부모와 나누고자 『아이는 질문으로 자란다』 『최고의 부모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웠을까』 등 대중교양서를 쓰는 한편,
실제 밥상머리 교육에서 토크 박스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했다.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한 한국형 탈무드 ‘지혜 톡톡’은 15개 카테고리 안에 1,500개의 사진과 4,500개의 질문을 담았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고(故) 이어령 박사가 직접 살펴보고 추천사를 썼다.
“어릴 때 질문 대왕이던 아이들이 자라면서 호기심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에서는 한 명의 교사가 여러 학생을 보살펴야 하니 모든 질문에 반응하기 쉽지 않을 수 있지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딪히는 다양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곳이 집입니다.”
김정진 교수는 부모가 자녀와 대화를 잘하려면 “먼저 친해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밥이 육체를 키운다면 밥상머리에서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아이들의 생각을 자라게 한다.
부모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 수는 없어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고 질문을 던질 수는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답을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