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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3 Vol.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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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누기

좋은 사람 좋은 생각

공간은 꽤 수다스러운 존재다. 공간을 만든 이가 어떤 사람인지,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은 누구인지 공간은 쉴 새 없이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어렵거나 무겁지 않게, 때론 직유로 때론 은유로 말이다. 배형민 교수가 만들고 머무는 공간은 ‘환경’과 ‘공존’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금은 공간의 입을 빌리고 있지만, 배형민 교수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공존을 하고자 한다.

이성미 / 사진 김수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세상을 공부하고 환경을 이야기하는 건축학자

낙산공원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 옆에 배형민 교수의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천장에는 세월의 손때 묻은 서까래가, 옆을 보면 H형강(H-steel)이 제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며 공간의 무게를 받치고 있다. 옛집의 형태와 재료를 최대한 살리되, 현대적인 방법으로 공간의 수명을 늘린 ‘배형민다운’ 공간이다.
배형민 교수는 건축학자이자 큐레이터다. 그리고 기후 위기극복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다. 과거 그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을 졸업 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 역사, 이론, 비평을 공부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인문학을 두루 공부한 이력은 그가 공간 이상의 공간, 건축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눈을 갖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눈에 ‘위기’가 감지됐다.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 바로 기후 위기였다. 그가 역사가로서 공부했던 과거 혁명의 시대보다도 더 근본적인 삶의 변화가 온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기성세대가 그러했듯 성장과 발전을 전제로 공부하고 활동했던 그도 변해야 했다.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기후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가 공존할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2014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100년 되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지난 100년을 돌아보자’를 주제로 전시가 진행되었죠. 한국관 큐레이터로서 저도 대한민국의 지난 100년을 돌아봤습니다. 가장 큰 사건은 단연 남북 분단이더군요. 남북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하면서, 자연스레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깊이 탐구하고, 사회를 더 면밀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시에서 남북 건축을 한 공간에 두며 처음 ‘공존’이라는 키워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Crow's Eye View : The Korean Peninsula’ 라는 제목의 이 전시가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으면서, 배형민 교수는 본격적으로 큐레이터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 도시의 문제를 다루었던 2017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 ‘기후미술관 : 우리 집의 생애’를 통해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이했다.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전시였다. 배형민 교수는 위기에 처한 우리의 크고 작은 집, 사람이 사는 집, 모든 사물과 생명체의 집을 중심으로 기후 위기를 이야기했다. 고사목(枯死木), 박제 동물 등을 가져다 기후변화, 환경파괴의 실상을 사람들이 생생히 느낄수 있도록 했고, 근대 이후 우리나라의 살림집과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사물의 생애주기를 보여주며 성장 중심 건축의 위험성을 알렸다.
황금사자상 수상 기자회견 현장 기후미술관
기후미술관이 더욱더 특별한 이유는 그래픽, 공간, 홍보 등 전시를 이루는 모든 요소에 재사용과 재활용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배형민 교수는 ‘전시 디자인과 설치 자체가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기획을 전제로 전시 후 폐기되는 가벽, 전시대, 시트지, 인쇄물 등을 최소화했다. 대신 모듈형 벽체, 시트지, 이면지 등을 활용해 전시를 꾸몄다. 홍보물을 만들때도 인쇄보다 에너지 소모가 적은 복사를 이용했다. 작은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핀 덕분에 다방면에서 친환경 노하우가 축적됐고, 향후 관련 산업에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창의성을 인정받아 배형민 교수와 디자이너 홍 박사 및 기획진은 2021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Red DotDesign Award)에서 본상인 위너(Winner)를 수상했다.

자연에서 온 삶을 다시 자연으로

크고 작은 전시를 통해 기후 위기와 공존을 이야기해 온 배형민 교수는 제5차 광주폴리 총감독을 맡으며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폴리(folly)’란 유럽 저택의 정원에 있는 장식적 건축물을 의미한다. 광주폴리는 한국 전통정원에서 정자가 했던 역할을 현대 도시에서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2011년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을 이뤄내기 위해 마련된 프로젝트다.
배형민 교수는 2022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제5차 광주폴리의 주제를 ‘순환폴리’로 설정했다. 에너지, 쓰레기,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대량 생산은 대량 폐기로 직행하고, 이러한 선형적 경제 시스템은 기후변화라는 문명사적 위기를 가져왔다. ‘순환폴리’는 친환경 지역 자원, 재활용을 전제로 한 순환경제의 건축을 실현하는 프로젝트다.
“경제가 성장하고 인구가 증가할 때 건축가의 기본 역할은 집을 많이 짓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건축이 해야 할 일도 바뀌었죠. 이제 건축의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첫째, 반드시 지어야 집인가? 둘째, 환경을 위해서는 어떻게 집을 지어야 하는가? 광주폴리 총감독 제안을 받았을 때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광주폴리는 건축 프로젝트지만 여러 동반자와 함께 진행된다. 이번 광주폴리에서 가장 중요한 동반자는 ‘우리 밀’이다. 식량안보의 중요한 자원은 우리 밀이다. 또 순환경제는 물류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지구를 살리는 건축과 밥상” 바로 순환폴리의 표어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얼마나 다양한지 알게 된다. 필요한 것은 관심이다. 세상 곳곳에 관심을 두며, 배형민 교수도 “건축가는 건축 이후의 생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라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한다.
“건축가는 집을 짓는 사람이에요. 집을 지으면서 재료, 공간효율, 에너지 등을 생각하고요. 하지만 집이 없어지는 과정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건물의 수명이 가장 짧은 나라입니다. 부동산 논리에 의해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죠. 탄소배출, 쓰레기 문제도,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도 묻지 않아요. 저 역시 건축학과 교수이고 오랜 세월 건축학자로 살았지만, 집이 부서진 후 그 폐기물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어요. 오히려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새로운 활동의 계기를 마련했죠.”
기후미술관 준비 과정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존’의 실마리 찾기를

근대 이전에는 우리가 입고 먹고 집을 짓는 것, 의식주가 자원의 순환 고리 안에 자리했다. 땅에서 얻은 재료로 입고, 먹고, 집을 지어 살았다. 쓰임을 다한 것은 다시 땅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 이러한 순환의 고리가 끊어졌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인공으로 대량 생산하고 대량 폐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할 수 있는 한 현대적인 방법으로 그 연결 고리를 다시금 이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배형민 교수는 맨 먼저 “분야 간의 경계를 지워야 한다” 라고 말한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해결하는 일을 정치가, 과학자, 기업, 환경단체나 환경운동가, 그 누구의 일로 한정지을 수 없다. 배형민 교수 자신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환경과 무관한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것 역시 우리의 일이다.
환경문제 앞에선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필요 없다. 이 문제에서는 동지다. 이러한 생각은 배형민 교수와 최문규 연세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의 건축 대화를 옮긴 책 『의심이 힘이다』에도 드러난다. 책에서 배형민 교수는 말한다. “최문규 교수는 건축가고 나는 학자이지만 우리가 학교 선생으로서 동감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헝가리한국문화원 한국현대건축 전시
선생은 문을 열어줄 뿐이다. 인연이 된다면 함께 문을 들어가 미래의 동료가 될 수도 있다”라고 말이다.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 ‘동료’로서 힘을 보태야 한다.
선생과 학생이 서로 존중하듯 배형민 교수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세상을 꿈꾼다. 다양한 생각,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존중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질문하고 함께 고민하는 사회를 말이다. 배형민 교수 또한 건축학자이자 큐레이터, 교육자, 한 시민으로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것이다.
“전시를 기획하고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제게도 평생의 과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지속가능성과 공존에 대한 과제 말입니다. 환경을 위한 전시를 올려놓고, 그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옛 방식대로 쓰레기가 넘쳐 나는 전시를 올릴 수 없잖아요. 광주폴리에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을 것입니다. 관심을 두고 지켜봐 주십시오.”
끝으로 배형민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도 ‘공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학 강단에 서면서 배형민 교수는 학생의 등급을 나누는 평가 시스템에 대해 늘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정해진 답을 맞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생각을 공유하며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교육, 그렇게 어릴 때부터 공유와 소통과 공존을 체득하는 교육이 이루어지길 그는 바란다. 그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지구라는 공간도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과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통곡과 같은 폭우 대신 대지를 적시는 잔잔한 비의 목소리로, 비명과도 같은 폭염 대신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어도 좋을 만큼의 더위로. 다시 아름다운 우리의 지구로.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