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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3 Vol.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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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곱하기

방방곡곡 숨은 명소

시인 정지용이 꿈엔들 잊지 못했던 고향, 옥천에 유채꽃과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며 본격적인 봄이 시작됐음을 알리고 있다. 금강이 유유히 흐르는 충북 내륙의 고장은 지금 이 무렵이 사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 화사하다 못해 눈이 부시기까지 한 옥천의 사월 풍경을 마음속에 한 아름 안고 돌아오자.

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 사진 제공 옥천군청

우인재 작가는 10여 년간 출판사에서 여행 콘텐츠 기획 및 취재를 담당했다. 아시아나항공 기내 가이드북 로스앤젤레스 편을 비롯해 대한생명, 교보생명, 외환은행 등 보험·금융사 고객용 여행 가이드북을 기획 및 제작했다. 또 월간 「DOVE」, 「모터트렌드」 등의 매체를 비롯해 인천공항공사, 롯데백화점, 조달청, 롯데제이티비, LS전선 등 기업체 사보에 여행, 드라이브 원고를 기고했다. 현재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유채꽃 단지 전경

금강 물들이는 노란 유채꽃

충청북도 옥천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에 기대어 선 내륙 깊은 곳의 고장이다. 대전광역시와 청주시에 가려 덜 알려져 있을 뿐, 알고 보면 옥천은 충북의 젖줄 금강이 숨겨놓은 비경들이 즐비한 지역이기도 하다. 대청호 남쪽에서 가장 수려한 절경인 부소담악을 품고 있을 뿐 아니라 금강수변친수공원 유채꽃 단지, 구읍 정지용문학관, 옛 37번 국도변 벚꽃길, 장계관광지 등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진 인증샷 명소들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장소는 금강수변 친수공원에 조성된 유채꽃 단지. 옥천군 동이면 금암리의 금강 둔치에 있는 유채꽃 단지는 몇 년 전 인기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 소개되면서 회자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유채밭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올해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옥천군이 4월 15일부터 향수 옥천 유채꽃 축제를 개최하기로 결정한 것. 상큼한 노란빛의 유채꽃이 반짝이는 사월의 햇살을 듬뿍 머금은채 금강변을 노랗게 물들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봄의 절정을 경험하게 해준다. 무려 2만 5천 평에 달하는 너른 친수공원에 조성된 유채꽃은 동이면 주민들이 직접 유채씨를 파종했던 장소였던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둔주봉 한반도 지형 둔주봉 한반도 지형

실개천이 흐르는 시인의 고향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향수’ 中

정지용문학관 정지용문학관 용암사 일출 용암사 일출
옥천에서 태어난 시인 정지용은 고향의 아름다움을 ‘향수’라는 시에 고스란히 담아 노래했다.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위치하는 옥천 구읍은 70~80년대를 생각나게 만드는 정겨운 동네다. 양철 슬레이트 지붕과 전통가옥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 등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장소는 ‘춘추민속관’이다. 지은지 160년이 넘은 이 전통가옥은 본래 대전에서 민속박물관으로 활용되었던 건물이다. 철로가 건물터를 지나게 되면서 춘추민속관은 지금의 옥천 구읍 소재지인 옥천읍 문정리로 옮겨지게 된다. 현재 춘추민속관은 시골밥상을 맛볼 수 있는 식당 겸 한옥 체험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공영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정지용문학관과 생가를 마주 보고 있으므로 두 곳을 동시에 둘러볼 수 있는 점이 좋다. 구읍을 관통하는 실개천을 건너면 시인 정지용의 서정적인 작품세계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청석교 다리 아래로 지줄대며 흐르는 하천은 정지용의 시 ‘향수’의 실제 배경이 아닐까 싶을 만큼 기시감이 들게 만든다.
옥천에서 1박을 할 예정이라면 용암사에도 한 번 들러보면 어떨까. 옥천읍내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용암사는 이른 아침 동트는 풍경을 찍기 위해 사진가들이 자주 방문하는 일출 명소다. 절집 바로 앞까지 이어지는 포장길을 따라 장령산 8부 능선 언저리까지 오르면 옥천사 대웅전과범종각이 눈에 들어온다. 차를 두고 가파른 길을 따라 10여분 정도 더 오르면 장령산 정상 부근에서 시야가 탁 트이는 지점에 다다른다. 용암사 일출은 봄과 가을에 가장 아름답다. 대청호가 토해낸 물안개가 두터운 구름층을 형성해 그야말로 ‘구름의 바다’를 이루기 때문이다. 운무와 안개에 가려 실루엣만 남은 산들이 수백 개의 층을 이루며 겹쳐져 수묵으로 그린 산수화 풍경을 보는 듯하다.

벚꽃 엔딩 펼쳐지는 옛 국도 드라이브

옥천군은 구읍에서 옛 37번 국도를 따라 군북면을 거쳐 안내면 장계국민관광지까지 이어지는 구간을 정지용의 시 19편을 주제로 꾸며 ‘향수 30리길’이라 명명했다. 옛 37번 국도를 따라 보은 방면으로 달리면 가지마다 풍성한 핑크빛 꽃들이 만개한 벚나무 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매년 4월 중순부터 하얗게 눈꽃을 날리는 이 도로는 옥천을 대표하는 드라이브 길이기도 하다. 한참 드라이브를 즐기노라면 군북면 소정리의 도로변에서 독특한 버스정류장을 지나게 된다. 정류장의 구조물을 책상처럼 만든 뒤 잉크와 만년필 그리고 표지에 ‘향수’라고 적힌 책 조형물을 올려두었다. 책상옆에는 거대한 의자가 놓여 있다. 이 정류장은 옥천에서 제일인기가 좋은 포토존으로 꼽힌다.
옛 37번 국도 정류장 옛 37번 국도 정류장 장계관광지 장계관광지
이후 관광지 안에는 산책로와 독특한 형태의 전망대, 카페가 들어섰으며, 곳곳에 다양한 꽃들을 심어 4~5월경 환상적인 풍경을 과시한다. 롤러코스터와 회전목마, 대관람차 등 낡은 놀이기구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다양한 조형물로 채워진 공원이 생겨났다.

호수 위에 뜬 산 ‘부소담악’의 절경

부소담악 부소담악
다시 구읍 소재지로 돌아와 대청호 상류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에 도착하게 된다. 대청댐이 들어서 물길이 가둬지기 전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는 여덟가지 아름다운 풍경인 추소팔경이 곳곳에 자리하는 아름다운 소읍이었다. 하지만 세월의 변천에 따라 고찰 안양사의 종소리는 사라지고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던 문필봉도 더 이상 옛 모습이 아니게 된 것이다. 우암 송시열이 입이 마르도록 칭송했던 추소팔경 대부분은 지금 물에 잠겨버렸지만 ‘물 위에 뜬 산’ 즉, 부소담악(扶疏潭岳)이라 불리는 호반의 절경은 아직 남아 있다는 점이 정말 다행이다.
추소팔경 중 제8경에 해당하는 부소담악은 추소리 마을 앞, 대청호 물 위에 솟아오른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길게 이어지는 이색 풍경이다. 호수 너머로 부소담악이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까이 다가서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즐거움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조금 더 앞선다. 부소담악의 진면목이 깊은 물 아래 감춰져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대청호의 물길이 굽이굽이 산굽이를 돌아 스며든 고장인 옥천은 청원군과 대전광역시 그리고 와인의 고장 영동군의 틈바구니에 끼어 아직 그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전인미답의 때 묻지 않은 풍경을 간직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케이 로고 이미지
옥천으로 떠나는 식도락 여행

금강이 내어놓은 내륙의 토속 음식

  • 옥천이 자랑하는 토속 음식 생선국수

    충북 내륙의 다른 고장들과 마찬가지로 옥천에서는 예부터 쏘가리, 동자개, 메기 등 민물고기를 넣어 육수에 말아 낸 생선국수가 별미로 전해 내려온다. 선광집(043-732-8404)을 비롯해 청산면 일대에 생선국수집이 여럿 있으며, 옥천읍내 식당에서도 생선국수를 맛볼 수 있다. 청산면 생선국수집 중에는 역사가 무려 60년이 넘은 곳도 있을 정도. 옥천군은 생선국수라는 먹거리의 스토리텔링이 충분히 여행자들에게 소구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곳 청산면 일원에 ‘청산 생선국수 음식 거리’를 조성했다. 14곳 가량의 식당이 음식 거리의 일원이 되었으며 홍보 조형물을 세우고 향토적 이미지로 꾸민 안내판과 간판 등을 제작해 개성을 추구하고 통일성도 겸비했다.
  • 금강이 선물한 먹거리 도리뱅뱅이

    금강 변에 살아가고 있는 옥천 사람들이 생선국수만큼이나 즐겨 먹었던 음식이 바로 도리뱅뱅이다. 매운탕으로 끓이기에는 애매한 피라미처럼 작은 생선으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메뉴가 바로 도리뱅뱅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음식 역시 충북이나 전북 내륙 지역에 널리 퍼져있는 토속 먹거리로 강에서 잡아 올린 손가락 크기의 민물 생선을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담은 뒤 기름에 바싹 튀겨 양념 고추장을 얹어 완성한다. 동그랗게 담은 모양에서 착안해 ‘도리뱅뱅이’라는 이름이 붙어 지금까지 이어 내려오는 이 음식은 지역 방송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를 통해서도 향토 먹거리로 자주 소개되고 있다. 동이면과 옥천읍 혹은 청산면의 청산 생선국수 음식거리에서도 도리뱅뱅이를 맛볼 수 있다.
  • 정갈한 상차림으로 맛보는 순두부전골

    옥천군에서 가장 작은 면소재지인 안남에는 정갈한 상차림과 맛좋은 순두부로 상춘객을 맞이하는 배바우손두부(043-732-2137)가 기다리고 있다. 이 지역에서 재배한 콩으로 직접 만든 순두부가 대표 메뉴이기에 더욱 믿음이 가는 맛집이다. 배바우손두부를 찾는 손님들 사이에서는 얼큰한 해물순두부전골, 들깨와 굴이 조화로운 들깨굴탕순두부 등이 가장 인기가 좋다. 28년 전 귀농한 주인이 운영하는 이 집은 음식 맛을 인정받아 지난 2015년 충청북도 ‘밥맛좋은 집’으로 선정되었으며, 이후 옥천군 모범음식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