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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3 Vol.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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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이모작

자연이란 교실에서
나무와 숲의 사랑을 배웁니다
숲 해설가 박양수 회원



박양수 회원은 ‘진짜 부자로 사는 법’을 알고 있다. 꽃잎에 맺히는 새봄의 아침 이슬, 나뭇가지 사이로 들이치는 한여름 오후의 햇살, 숲길을 레드카펫으로 만드는 늦가을의 산들바람…. ‘공짜’로 주어지는 것을 원 없이 누리면서 ‘진짜’로 값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중학교 기술 교사일 때와 달리 숲이라는 교실에선 숫자가 필요 없다. 계산기가 무용한 자연의 품에서, 그의 삶은 날이 갈수록 풍요롭고 여유롭다.

박미경 / 사진 이용기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숲에서 배우는 교감의 지혜, 나눔의 즐거움

자연 속 반복은 반복이 아니다. 같은 장소, 같은 풍경이라도 계절 따라 날씨 따라 매번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까닭이다. 그는 매일 집 앞 올림픽공원을 산책한다. 동이 채 트기도 전에 길을 나서 환한 햇살을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침 산책길에서만 약 8,000보를 걷는다. 아니 걷는다는 말보다 즐긴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눈을 맞추며 천천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불쑥 고개 내민 꽃잎이나 부쩍 통통해진 나뭇가지 같은 것에 번번이 처음처럼 가슴이 뛴다. 오늘도 소풍 같은 황혼의 날들이다.
“올림픽공원은 생태 다양성이 아주 뛰어나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전국의 상징성이 있는 나무를 이곳에 옮겨 심도록 했어요. 여기가 한성백제의 몽촌토성이 존재하던 곳이거든요. 오랜 역사를 지닌 자연식생과 새로 조성한 인위적 식생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 생태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낼모레 숲해설가 15명을 대상으로 이 일대를 안내할 거예요. 눈빛을 반짝이며 제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상상하면 벌써 기분이 좋아져요.”
목본식물, 초본식물, 동물, 곤충, 토양, 수석, 미생물…. 숲은 그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터전이고, 숲해설가는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안내자’다. 그러니 끝없이 공부해야 한다. 숲해설가의 배움에 ‘완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를 한없이 겸손하게 한다. 그가 하는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무와의 ‘교감’이다. 나무는 한곳에 뿌리를 내리면 그 자리에서 죽는 날까지 살아가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살펴보면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어렵잖게 접할 수 있다. 나무의 이름이나 성질을 외우는 것보다 나무와 마음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믿는다. 그에게 숲은 ‘사랑’의 다른 말이다.

인생을 백팔십도 바꿔놓은 자연 감수성

“나무와의 교감이 시작되면 미처 몰랐던 세상을 만나게 돼요. 요즘 같은 새봄엔 뿌리에서 물을 공급받아 겨울눈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걸 볼 수 있어요. 그러다 잎이 나고 꽃이 피면 또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죠.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숲해설가의 역할이에요.”
그가 교직 생활을 마무리한 건 2011년 서울 한산중학교에서다. 37년간 기술 교사로 일한 그는 인생 1막에서 2막으로 건너오면서 감수성이 백팔십도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학교에서 기술 과목을 가르칠 땐 정확한 공식과 오차 없는 숫자 등을 추구하느라 자연이 선사하는 넉넉함을 누릴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변화는 2003년부터 시작됐다. 건강을 위해 틈틈이 산에 오르던 중 자신이 산에 서식하는 식물들에 너무 무지하다는 것을 자각했고, 산에서 만나는 식물에 대해 알아가고 싶어 숲해설가 공부를 시작했다. 산림청에서 주관하는 생태교육을 먼저 받고, 뒤이어 (사)한국숲해설가협회에서 마련한 숲해설가 양성 교육과정에 참여했다. 2년여의 교육이 끝나고 2005년 숲해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아직 퇴직 전이었기에 주말과 방학을 활용했다.


“서울시에서 공개 모집하는 숲해설가로 선정돼 서울숲이며 방이습지 등에서 활동했어요. 유치원생부터 초·중·고교생, 성인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눈높이에 맞게 숲을 안내하는일이 참 즐겁더라고요. 2018년부터는 주로 숲해설가들에게 제 지식을 나눠주고 있어요. 재능 기부 형태로요. 숲이 제게 나눔의 즐거움을 선사해 줬어요.”

나무 찾아 우리 땅 곳곳을 누비는 기쁨

정년퇴직을 한 직후부터는 한국숲해설가협회 목본연구회장으로 활약해 왔다. 목본연구회는 나무를 관찰하고 탐구해 그 결과를 자료집으로 묶는 연구 모임이다. 2011년 그를 포함해 한국숲해설가협회 정회원 5명이 단체를 설립했고, 현재 60명이 훌쩍 넘는 회원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각각 2011년과 2013년에 펴낸 「나무 이야기 자료집」, 「나무 이야기 자료집 Ⅱ」는 숲해설가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수종을 선정해 만든 목본연구회의 결과물이다. 2016년에 나온 「감동이 있는 나무 이야기」는 그간 만든 자료집을 도감 형태의 이야기로 담은 완성본이고,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해마다 펴낸 「나무수첩」은 조사문, 시, 수필 등 영역에 구애되지 않고 나무 이야기를 담아낸 ‘종합 선물 세트’다.
「2022 나무수첩」에는 ‘괴불나무 형제 알아보기’라는 그의 글이 실려 있다. 괴불나무는 남부 지방에서 백두산까지 분포 지역이 매우 넓다. 실린 글은 여덟 페이지에 불과하지만, 구석구석 발품을 팔며 그가 직접 탐사한 결과들이 그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중 흰괴불나무 사진은 강원도에서 가져온 묘목을 손수 재배해 가며 찍은 것이고, 물앵도나무 사진은 백두산 등반길에 올라 직접 촬영한 것이다. 국립수목원 사진반에서 3년간 촬영 기법을 배워둔 것이 그때마다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카메라와 태블릿PC를 휴대하고 다니느라 어깨가 늘 아프지만, 우리 숲 곳곳에서 자신을 반겨줄 나무들을 생각하며 그는 기꺼이 우리 땅 곳곳을 누빈다.
“고향을 재발견하게 됐다는 것도 큰 기쁨이에요. 제 고향이 전남 무안인데, 그곳에 남산이라는 곳이 있어요. 모두가 가난하던 어린 날 동네 친구들과 그 산에 올라 칡뿌리를 캐 먹고는 했는데, 숲해설가가 되고 나서 다시 가보니 해양성 수목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더라고요. 작은 산인데도 수목이 워낙 다양해요. 전시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요. 그 산에서 대팻집나무를 만났는데, 간벌 때 잘려 나갈 뻔한 걸 제가 묶어서 살려놨어요. 지금도 잘 살아 있어요. 볼 때마다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요.”

꽃과 잎이 없어도 숲이 찬란한 이유

나무들이 옷을 벗는 겨울에도 그는 쉬지 않는다. 그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겨울나무 동정(同定)을 시작한 때는 2004년이다. 어떤 생물에 대해 분류학상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것을 ‘동정’이라고 하는데, 잎도 꽃도 없는 겨울나무를 보며 나무를 식별하는 일이 숲해설가들에겐 매우 큰 공부가 된다. 작은 단서 하나로 탐정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듯, 겨울눈 하나만으로도 나무를 알아보는 과정이 그에겐 엄청난 즐거움이다. 그러니 겨울 숲도 찬란하다. 꽃이나 잎이 없어도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답다.
“숲해설가 공부를 시작한 뒤 약 8년이 지나 정년퇴직을 했어요. 그 덕분에 인생 1막에서 2막으로 공백 없이 건너갈 수 있었죠. 인생에 정답이란 없지만, 자신이 무엇과 잘 맞는지 은퇴 전에 충분히 살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제 경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걸 만났어요. 자연 감수성이라곤 전혀 없던 제가 자연에 파묻혀 살고 있잖아요. 자신을 어디에도 가두지 말고 시야를 넓게 가져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서울살이를 오래 한 제가 10여 년째 텃밭도 가꾸고 있어요. 25평의 밭에서 온갖 먹을거리를 직접 길러 먹습니다. 경험한적 없는 재미를 은퇴 뒤에 쏠쏠히 누리고 있어요.”
그의 해설을 들으며 올림픽공원의 나무들과 일일이 눈을 맞춘다.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대나무가 이곳에 어떻게 적응했는지, 겨울눈 상태의 솔방울이 머지않아 어떻게 변신해 갈지, 그가 시시콜콜 따뜻이 안내해 준다. 향선나무, 백합나무, 때죽나무, 참빗살나무, 미선나무, 산검양옻나무…. 마음을 내어준 적 없던 나무들이 그의 이야기를 타고 가만가만 반갑게 친구가 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봄이 왔음을 알리는 풍년화를 숲길에서 만난다. 생강나무꽃보다 먼저 핀다는 봄의 전령이다. 수줍게 핀 그 꽃을 향해 그가 카메라를 든다. 향기의 주인공이 그인지 꽃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케이 로고 이미지
'인생 이모작'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재능을 기부하며 역동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의미 있는 인생 이모작을 실현하고 있는 회원님을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The-K 매거진」 지면에 담아 많은 회원님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를 전해드리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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