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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3 Vol.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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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학교

호기심 넘치는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지금부터 변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영림중학교 윤상혁 교장
(前 서울시교육청 정책·안전기획관 장학사)
교육의 방향은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표준화된 기능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는 데 초점이맞춰졌지만, 많은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에는 스스로 정보를 찾고 판단하며 타인과 협력해 지식을 공유하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 이미 세계 각국은 ‘포스트 시대’에 걸맞은 학교와 교육을 고민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정책·안전기획관 근무 시절, 서울교육중기발전계획위원회 최종보고서 「서울미래교육2030」을 기획한 윤상혁 교장 역시 미래 교육의 방향을 ‘혁신’에서 찾았다.

정라희 / 사진 이용기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다가올 2030년을 바라보고 준비하는 교육

서울시교육청에서는 4년에 한 번 ‘서울교육중기발전계획’을 세운다. 2019년에 수립한 계획이 2022년 말 종료되면서, 서울시교육청에서는 다시금 서울 미래 교육의 나침반이 되어줄 중기발전계획을 마련했다. 다만 이번에는 4년 후가 아닌 8년 후, 2030년을 목표로 한 비전을 밝혔다. 2018년부터 2023년 2월까지 서울시교육청 교육혁신과와 대통령직속국가교육회의 그리고 서울시교육청 정책·안전기획관에서 근무했던 윤상혁 교장은 「서울미래교육 2030」을 준비하며 ‘2030년 세계와 미래 교육의 방향’을 함께 고민했다.
“보고서를 준비할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팬데믹 이후의 교육이 팬데믹 이전과 같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교육계의 공통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롭게 만드는 서울교육중기발전계획은 이제까지의 관성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교육이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습니다. 그 결과로 작년 4월 「서울미래교육 2030」이 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그것의 실행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2023~2026 서울교육중기발전계획」이 서울의 모든 교육기관에 배포됐습니다.”
팬데믹 이후 ‘포스트 시대’의 교육에 대한 고민은 서울을 넘어 한국, 나아가 세계의 관심사였다. 유네스코(UNESC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는 2021년 발표한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통해 2030년 세계가 마주할 과제에 대응하려면 “학습의 이유와 방식, 내용, 위치, 시기를 다시 규정해야 하는 전환점에 놓여 있다” 라고 선언했다. 그 과정에서 유네스코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2030년의 세계가 부딪힐 시급한 과제로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손실(67%), 폭력과 갈등(44%), 차별과 불평등(43%), 식량과 물, 주택 부족(42%) 등이 선정되었다. 나아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교육 원칙을 제시했다. 학생들의 자기 주체성을 강조한 교육 원칙은 한국의 입시 위주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문제 제기이기도 했다.

좋은 삶을 위한 교육의 방향, 홍익인간 정신에서 다시 생각하다

‘홍익인간’은 바람직한 미래 교육을 고민하던 윤상혁 교장에게 다시금 새롭게 다가온 말이었다. 실제로 한국 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에서는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서울미래학교 프론티어 교사단 토론회
“현재 교육기본법의 전신이 1949년에 만든 교육법인데, 홍익인간이 여기에서부터 언급되고 있습니다. 한국 교육의 바탕에는 ‘홍익인간’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이죠. 무척 오래된 말인데도, 교육기본법의 문구를 살펴보면 전혀 고루하지 않아요, 인류공영의 이상실현이라니요. 얼마나 세계적입니까. 기후위기를 말하는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정신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렇게 거창한 교육 목표를 가진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싶은데도, 정작 한국 교육의 현실은 ‘홍익인간’이라는 이상과는 거리가 멀죠.”
모든 학습자의 전인교육과 잠재력 발휘,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지구의 안녕(Well-being)에 기초한 공동의 미래를 위한 노력 등 2018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발표한 「OECD 교육 2030 : 미래 교육과 역량」에서 밝힌 교육의 역할에서도 홍익인간 정신과 맞물리는 지점이 보인다. 윤상혁 교장은 이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으로 ‘학습나침반’을 꼽았다.
“2018년에 정규교육 과정을 시작한 학생이 성인이 되는 시점이 2030년입니다. 학습나침반은 학생이 나침반을 들고 동료, 교사, 공동체의 지원과 협력을 통해 ‘웰빙 2030’으로 가는 여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교육의 목적은 ‘좋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고, 이는 곧 개인과 공동체, 지구의 안녕이 연결되어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서울미래교육 2030」 역시 이러한 교육 이념과 교육 목적을 바탕으로, 존엄(시민성), 포용(다양성), 공존(지속가능성)을 서울미래교육의 핵심가치로 설정했다. 존엄(시민성)은 서울학생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하며, 삶의 주체로서 다양한 자연・사회 현상에 대한 탐구 활동과 일상의 문제해결에 참여하는 가치이다. 포용(다양성)은 인간의 존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서로를 포용하며 연대하려는 의식과 실천을 강조하는 가치이다. 마지막으로 공존(지속가능성)은 모든 생명체가 지구라는 시스템의 구성원으로서 상호 의존적임을 이해하고 서로 배려하며 공존하는 것을 강조하는 가치이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한국 교육

윤상혁 교장 역시 1999년에 교직 생활을 시작해 수학 교사로, 서울시교육청과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장학사로 근무하며 한국 교육의 현실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경험하고 고민한 주역이다. 획일적인 교육, 주입·암기식 교육,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 등 한국 교육을 향한 날선 비판이 가끔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도 했다. 2010년을 전후로 국내 교육 현장에 ‘혁신학교’라는 대안이 등장했으나, 어떤 이들은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학생들의 활동을 중시하는 혁신학교를 두고 ‘입시 준비를 하지 않는 학교’, ‘노는 학교’라고 낙인찍기도 했다.
“홍익인간과 같은 우리 교육의 멋진 이념과 달리 현실을 돌아보면 여전히 적자생존, 우승열패의 사고가 한국 교육에 만연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요구가 마치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것처럼 모순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윤상혁 교장은 “지금 우리 교육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한국 교육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혁신학교 정책의 위기’를 들었다. “혁신학교 정책은 수업 혁신으로 시작해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총체적 혁신으로 확장되었고, 이후 행정과 인사 등 교육의 전반적 혁신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하지만 혁신의 일반화 과정에서 그 본연의 목적이 퇴색한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매주 수업 연구의 날을 운영하고, 교실 책상을 ㄷ자형으로 배치하고, 동료들과 함께 공개수업을 준비하고, 학년 별로 특색 있는 교육과정 운영하고, 교육과정 중심의 교원학습공동체를 조직하고, 방학 동안 바쁘게 신학년 준비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은 혁신학교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지만 그것을 교사의 헌신으로만 감당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혁신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와 함께 강단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교원학습공동체 대표 선생님들과의 좌담 서울미래학교 프론티어교사단 선생님들과의 좌담

혁신학교 최전선에서 혁신을 경험하며

2023년 1학기를 시작하며 혁신학교인 영림중학교에 공모제 교장으로 부임한 것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좁혀보고 싶은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혁신학교로 운영 중인 영림중학교는 혁신학교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영림중학교 역시 혁신의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오랫동안 혁신교육을 일구어온 선생님들의 정년이 얼마 남지 않으셨어요. 그분들이 퇴임하고 난 이후를 생각하면 앞이 깜깜합니다. 반대로 코로나 시기에 교편을 잡은 초임 교사들의 경우에는 혁신교육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선배 교사의 지혜와 후배 교사의 열정 사이에 다리를 놓아 혁신의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것이 저의 소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실제 혁신학교를 운영하는 일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 교장 공모 당시 심층 면접에서 그가 받은 첫 번째 질문은 ‘공석인 부장 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였다. 이어진 두 번째 질문은 ‘혁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였다. 이 두 질문은 혁신이라는 이상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하고, 학교의 리더로서 혁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돌아보게 했다. 특히 많은 교사의 헌신과 노력이 필요한 혁신학교를 지속하는 일은 절대 만만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공립 학교임에도 학부모의 88%, 교사의 75%가 여전히 혁신학교 운영을 지지하는 영림중학교의 사례를 통해 윤상혁 교장은 미래 교육의 희망을 본다.
“미래 교육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똑같은 출발선에 세우는 것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서로 손잡고 동그란 원을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삶이 그렇듯 학교에서의 일상이 매번 즐겁고 감사한 일로만 가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혁신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기에 학교에서의 희로애락을 기꺼이 함께 누리고 짊어지고자 한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