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1g씩 늘리는 환경교육 동아리
용남초등학교 4학년 1반 교실에 들어서면 이색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알록달록 색색의 손수건이 창가의 빨래걸이
위에서 꽃처럼 교실을 밝히고 있다. 이 학급에선 물티슈 대신 집에서 가져온 손수건을 쓴다. 아이들이 스스로 빨아
널어놓은 작은 헝겊들을 봄 햇살이 부지런히 말려주는 중이다. 교실 뒤편 게시판엔 환경 관련 그림이 빼곡하다. 지구를
걱정하며 아이들이 직접 그린 포스터다. 이 공간의 주인공들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사람보다 교실이 먼저
속삭여 온다.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지난 3월 2일 용남초등학교에 부임했거든요. 직전 근무지였던 무동초등학교에서 환경 수업이
아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똑똑히 봤어요. 농부가 새봄마다 새 씨앗을 뿌리듯, 새 학교에 왔으니 새 마음으로 다시
해보려고 해요.”
임성화 교사의 교실에는 ‘그린 그램(Green Gram)’이라는 동아리가 있다. 학급 전체가 참여하는 환경교육 동아리로,
‘초록을 1g이라도 더 늘리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전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해 온 활동을 그는 또 힘차게 시작하려
한다.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열두 달 환경 교실
그의 환경교육 핵심어는 ‘열두 달 환경 교실’이다. 우리의 달력 안에는 매월 ‘환경을 위한 날’이 있다. 4월 22일 지구의
날, 5월 22일 세계 생물다양성의 날,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 7월 3일 세계 일회용 비닐봉지 없는 날…. 각각의 날에
맞는 환경 수업을 그는 매월 아이들과 유쾌하게 진행해왔다.
“3월 마지막 주 토요일은 저녁 8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전등을 꺼보는 ‘지구촌 전등 끄기(Earth Hour)의 날’이에요.
이날이 다가오면 우리 아이들이 주민들을 상대로 캠페인을 해요. ‘한 시간만 불을 꺼주세요’, ‘가족과 함께 별을 세어보아요’,
‘전등을 끄고 별을 켜요’ 같은 문구를 넣어 포스터를 그리고, 인근 아파트로 가서 협조를 구합니다. 아파트 게시판이나
엘리베이터 등에 포스터를 붙여두고 오는데 반응이 꽤 좋아요. 주민들에게 방송해 주는 관리소장님도 계시고, 학부모
커뮤니티에 사진을 공유해 주는 어머니들도 계세요. 고맙고 든든하죠.”
아이들의 활동이 주민들을 움직인 사례는 그 외에도 많다. 그 가운데 2021년부터 2년간 세계 환경의 날에 진행한 ‘용기
내 챌린지’는 동네 분위기를 크게 바꿔놨다. 여기서 말하는 용기는 ‘그릇’과 ‘마음’을 동시에 뜻한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집에서 쓰는 용기(容器)를 가져가 음식을 포장해 오자는 의미인데, 이게 제법 용기(勇氣)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활동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그는 전교생 학부모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안내장을 보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자주 가는
학교 인근 음식점을 조사했다. 그중 열다섯 곳과 협약을 맺고, 그릇을 들고 음식을 사러 오면 100원씩이라도 가격을
깎아주도록 유도했다.
“아이들은 물론 부모님, 인근 가게도 모두 즐겁게 참여해 줬어요. 한 아버지는 지금도 ‘반려 용기’를 가지고 다니며 딸에게
떡볶이를 사다 주세요. 한 짬뽕집은 요즘도 그릇을 가져온 학생에게 1,000원씩 깎아주고 계시고요. 그런 변화들이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변화의 주체가 된 아이들
재작년과 작년 7월에 진행한 ‘꽁초 어택(attack)’도 기억에 남는 활동이다. 길거리나 빗물받이에 버려진 담배꽁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아이들과 함께 자신이 버린 꽁초를 스스로 되가져가도록 하는 캠페인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그린
포스터를 통해서다. 그 과정에서 시가랩(Cigarap)을 알게 됐다. 시가랩은 담배꽁초를 돌돌 말아 담뱃갑에 보관했다가 버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연분해 포장지다. 협조를 구해 인근 아파트와 편의점에 시가랩과 포스터를 같이 비치했다. 얼마 뒤
그 이야기가 신문에 실렸고, 그 기사를 본 시가랩 측에서 아이들의 포스터를 포장지 디자인에 반영했다. 아이들이 정말
행복해했다.
“담배 제조회사에 아이들이 편지를 보내기도 했어요. 플라스틱 필터를 친환경 필터로 바꾸고, 꽁초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달라는 요구에 답변도 받았어요. 당장 필터를 바꾸긴 어렵지만 해양쓰레기를 줄이는 데 힘쓰고 있고, 꽁초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죠. 아이들의 표정이 달라지더라고요. 자신들이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말해줬어요. 앞으로도 해낼 수 있을 거라고요. 정책이나 제도를 바꾸는데 힘을
보탤 수도 있고, 훗날 직업인이 됐을 때 환경을 위한 결정을 내려서 세상을 이롭게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올해는 근처 재래시장에서 비닐봉지 없이 물건을 사고파는 활동을 아이들과 함께 시작하려 한다. 장바구니를 깜빡 잊고
와도 시장에서 바구니를 대여해 주도록 상인과 주민들을 설득해 나갈 생각이다. 생활 속 환경교육을 시작한 뒤로 ‘온 마을’이
아이들의 교실이 되어간다.
그의 상복(賞福)은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2022 대한민국 녹색기후상’에서 교사로는 유일하게
우수상을 받았다. 2021년과 2022년엔 우수 환경 동아리 초등 부문에서 교육부장관상을 잇달아 수상했다. 아이들과 주민들
덕분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아이들의 가슴에 인류애를 심어주는 꿈
그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품게 된 건 2020년 여름방학 때다. 인도네시아 발리로 가족 여행을 갔다가 새끼 거북이 방생체험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지구 온도 상승으로 해수면이 높아지고, 그로 인해 거북이 알이 유실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순간,
큰일이라고 자각했다. 온도 변화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이 발리의 거북이들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개학하자마자 환경 수업을 시작했어요. 코에 빨대가 꽂힌 거북이와 그물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는 거북이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환경문제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공부해 나갔죠. 그 결과물로 색칠 공부 책 「바다가 쓰레기 섬이 되고 있어요」, 「우리 집이
탄소를 배출하는 공장이에요」를 만들었어요.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책을 묶어 저학년 아이들에게 나눠줬죠. 그게
‘그린 그램’의 시작이에요.”
지난 3년을 그는 ‘격변의 시간’으로 회고한다. 그 스스로 가장 많이 변했다. 일상에서 일회용품을 완전히 걷어내고, 식생활에서도
채식주의자로 완벽히 거듭났다. 아이들은 이제 우유 팩을 씻어 말린 뒤 화장지로 바꿔오는 걸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물도
텀블러에 담아와 마시는데, 수분이 많이 필요한 여름엔 인근 가게들에서 아이들의 텀블러에 물을 공짜로 공급해 준다. 자원의
순환이, 지역사회의 연대가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같은 꿈을 꾸는 동료들이 생겼다는 것도 그의 삶의 중요한 변화다. 그는 2021년부터 경남교육청 실천교사단 ‘기후천사단’에
가입해 서로 사례를 공유 중이다.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톡톡히 누리며 산다.
“2009년 광양 광영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에요.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사랑의 방식에 환경교육이 포함됐다는 거예요. 환경에 눈뜨니 ‘인류애’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우리 아이들이 지구상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단단한 소망을 가슴에 품고 그가 창창한 미래로 나아간다. 씩씩한 아이들이 곁에 있어 묵묵한 날갯짓이 외롭지 않아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