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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22 Vol.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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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생태 스포츠를 통해
공존과 협력의 가치를 배우다

팬데믹의 위기 속에서 우리의 체육교육은 비대면으로 학교 스포츠 축전을 여는 등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운동장에서 서로 승부를 겨루는 방식이 아니어도 모두가 주어진 환경에서 스포츠를 즐기고 성취할 수 있다는 생활체육의 본질에 다가가게 된 것이다. ‘스포츠를 위한 교육’에서 ‘스포츠를 통한 교육’으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필요성에 공감한 학교와 교사들은 자연을 배우고 공감하는 방법으로 스포츠를 활용했다. 트레킹이나, 자연 속에서의 생활체육을 통해 생태계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서로를 향한 응원과 격려도 배우게 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을 채워주는 스포츠 교육의 즐거운 변화를 만나보자.

김지윤 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기자



*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철학자 칸트가 ‘인식론’에서 설파한 용어로, 폴란드 출신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당시 진리처럼 믿었던 ‘천동설’에 맞서 ‘지동설’을 주장한 것과 같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커다란 사고의 전환을 말함.

비대면 체육 교육의 가능성을 보여준 전국 스포츠대회

아이들은 뛰면서 시야를 넓히고 땀을 흘리면서 사회성을 키운다. 교육 현장 취재를 10년 넘게 해오면서 생활체육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활체육에 관심을 두고 이 학교 저 학교 사례를 둘러보던 중 코로나19가 시작됐다.제일 먼저 든 생각이 “그러면 학교 체육 수업은 어떻게 되는 거지?”였다.
“안 되는 것 빼고는 다 되게 만들었다”라는 말이 체육교육 현장에도 적용됐다. 2년 전, 전국의 수많은 선생님이 고군분투하며 ‘비대면 학교 스포츠 축전’을 연 것이다. 이 ‘랜선 체육대회’를 취재하면서 체육교육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비대면 학교 스포츠 축전이 열린 사례를 보면 온라인 체육수업을 통해 전국 스포츠대회에 출전한 학생들이 많았다. 종목은 저글링, 플랭크, 스포츠스태킹, 줄넘기, 버피 테스트, 자유투 등 비대면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생활 체육들이 주를 이뤘다.
학생은 학교나 가정에서 온라인(zoom)으로 경기에 참여한다. 경기 심사단이 실시간으로 참가자의 기록을 심사해 추후 본인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기록 통계를 제공하며 실시간 경기 관람을 희망하는 학부모·교사·학생들은 유튜브 ‘교육부tv’에서 생중계로 시청할 수 있었다. 실시간 영상 송출 덕분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응원할 수도 있었다
2021년 비대면 전국 학교스포츠클럽 축전의 경기 생중계 화면과 홍보 이미지 [사진 출처:교육부]

스포츠는 운동을 통해 세상을 연결하는 학습

코로나19로 시작된 감염병 시대는 교육 분야에 새로운 방법을 요구했다. 오프라인 활동이 전면 취소된 뒤 학생들은 온라인상에서 모여 공부해야만 했다.
스포츠 교육도 예외가 아니었다. 엘리트 체육으로 대표되는 1등 중심, 승자 중심, 금메달 중심의 ‘치고받고 싸워 이겨야만 하는 운동’이 아닌 공존과 다양성, 연대와 평등, 협력과 격려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스포츠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스포츠를 위한 교육’에서 ‘스포츠를 통한 교육’으로 바꾸고 스포츠를 세상과 연결하는 학습으로 전환해서 ‘지·덕·체’ 교육에서 ‘체·덕·지’로의 혁신적인 변화를 끌어내고자 하는 움직임도 활발한데 그 중심에는 ‘생태 스포츠’가 있다.
스포츠를 통해 건강 증진과 운동 기능 향상을 이루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다만 생태 스포츠 관점에서는 경기에서 이긴 자의 배려와 패자의 승복, 공정한 심판의 중요성, 투쟁이 아닌 경쟁의 가치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서 실천할 수있도록 하는 것을 중시한다.
운동은 물리적 측면에서 ‘몸을 단련한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스포츠는 사회와 경제, 문화와 교육 등 모든 분야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신문에 사회면, 경제면과 더불어 스포츠면이 따로 있는 이유다. 생태 스포츠는 여기에 ‘공존’이라는 가치를 더한 개념이다.
축구, 농구, 야구 등 일정한 공간과 도구가 필요한 운동도 있지만 생태 스포츠는 스포츠의 개념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확장했다. 달리기, 트레킹, 자전거 타기, 수영 등을 떠올려보면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노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 또한 생태 스포츠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
제주도 하례초등학교는 자연의 돌·바람·흙·물·해님·풀·나무·꽃·곤충·열매·새·씨앗·먹이사슬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신체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건강 증진은 물론, 자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생태 감수성을 향상시킨다. 적은 학생 수로 폐교가 논의되기도 했던 함덕초등학교 선흘분교장은 생태·환경·건강을 기반으로 한 ‘건강생태교육’을 적극적으로 운영해 학생수를 늘려왔고 올해 초, 초등학교로 승격됐다.
주요 기관들도 생태 스포츠 활성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1년 8월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서울시와 생태 스포츠 구현을 위한 자전거 사업 활성화 지원 업무협약을 했다. 초등학교 내에서 자전거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필기와 실기 인증을 마친 학생들에게는 ‘서울시 자전거 교통안전교육 수료증’을 발급해주는 등 스포츠·여가 활동이 부족한 초등학생들의 신체 건강을 증진하고 차량 이용도 줄여 지역의 환경에도 도움을 주기 위한 노력의 하나다.

2021년 비대면 전국 학교스포츠클럽 축전 실시간 경기 응원 포스터 [사진 출처 : 교육부]
생태 놀이를 하는 하례초등학교 학생들 [사진 출처: 하례초등학교]

운동장 밖, 습지 탐방과 함께하는 스포츠

환경교육 현장에서도 생태 스포츠는 자연스럽게 수행될 수 있다. 공존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교육 현장이라면 자연스레 과학과 체육 교과의 융합 수업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해 생태교육 취재차 방문한 고창운곡람사르습지 현장에서도 몸과 마음을 동시에 건강하게 만드는 생활체육 현장을 접할 수 있었다. 이른바 공존과 협력의 가치를 중시하는 ‘생태 스포츠’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수달·황새·삵 등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이 곳곳에 서식하는 전북 고창운곡람사르습지 생태 탐방 프로그램에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 등에 관심 있는 학생과 가족이 함께 했다.
고창운곡람사르습지는 총 50분 정도 소요되는 제1코스(3.6km) 부터 세계 최대 고인돌 유적을 2시간 50분에 걸쳐 둘러볼 수 있는 제4코스(10.1km)까지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제4코스를 돌면 보통 2만 보 이상을 트레킹할 수 있다. 이런 활동 자체가 생태 스포츠의 일환이 될 수 있다.
고창운곡람사르습지에는 총 860여 종에 이르는 동식물, 곤충류 등이 서식하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동식물로 법정보호종인 수달·황새·삵·담비·구렁이·팔색조·황조롱이·새호리기·붉은배새매 등도 있다.
아이들은 습지 속 숲길을 탐방하며 자연스레 트레킹을 하고 박새와 직박구리, 날아가는 산새들을 관찰하며 자연에서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에 흠뻑 빠진다. 루페(확대경)를 들고 습지 곳곳에서 만난 동식물을 유심히 관찰한다. 도심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곤충과 산새, 습지 식물을 관찰하며 지구 환경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고 아이들은 말한다.
일회용품 쓰레기를 먹고 철새들이 죽는다는 뉴스를 이야기하면서 플라스틱 줄이는 방법에 관한 아이디어도 내고, 저 멀리 처음 보는 새를 만나기 위해 숨이 차도록 뛰어간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땀을 흘리며 이 새들과 어떻게 하면 오래오래, 지구에서 같이 살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두 발을 움직이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공존의 가치를 저절로 깨닫게 된 것이다.

자연 속에서 공존과 협력을 배우는 스포츠·생태 융합교육

지난해 10월 운곡람사르습지 생태 탐방에 참여한 한 가족이 트레킹 중 소나무를 관찰하며 에코 매니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김지윤 기자]
보호자들 역시 생태 스포츠를 통한 생태 교육을 반긴다. 이날 아이들과 함께 참가한 한 학부모는 “집안에서도 볼거리가 참 많은 세상이지만 함께 야외로 나가면 가족끼리 추억도 쌓이고 아이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이야깃거리도 풍부해진다”라며 “산책 삼아 걸으며 동네 하천에서 왜가리를 구경하고, 쌍안경과 도감을 챙겨 교외로 나가 트레킹을 하면서 건강과 생태주의적 관점을 몸으로 느끼고 익힐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환경을 해치지 않는 걷기와 달리기 등 생태주의적 관점의 체육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 환경’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생태 스포츠를 통해 사람과 동물 등 자연 세계의 공존을 고민하며 세상이 사실은 하나로 연결된 순환 구조라는 것도 더불어 깨닫게 될 터이다.
생태 스포츠를 적극 도입한 학교의 경우 스포츠를 주제로한 융합 교육을 활발히 진행했다. 체육을 통해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식이다. 농구장의 프리스로(free throw) 라인을 정확하게 그리려면 원주율과 반지름, 지름 등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4명이 한 모둠을 이뤄 400m 육상 트랙을 그리기 위해서는 곡선 주로를 이해하는 수학적 사고를 해야 한다.
스포츠 영화를 편집해 보여준 뒤 인성교육을 하거나 유명 스포츠 스타의 인터뷰 영상을 학습하며 영어를 배우는 식으로도 진행한다. 1등·승자·금메달 중심의 스포츠 교육이 아닌, 아이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스포츠와 스포츠 정신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접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경기에서 누가 더 많이 득점하느냐도 당연히 중요하다. 점수를 내주고 얻으면서 깨닫는 인생의 진리도 있기 때문이다. ‘입시가 만사’인 한국 교육 현실에서 공존과 협력, 응원과 격려, 자연과의 교류를 우선으로 하는 생태 스포츠의 외연이 조금 더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