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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22 Vol.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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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곱하기

방방곡곡 숨은 명소

10월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찾으면 그 영험한 산자락 북쪽에 자리 잡은 함양군은 알록달록 단풍에 물들어 만추의 심상에 잠긴다. 조선 시대 영남 유생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 가는 길에 거쳐야 했던 화림동계곡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알려진 개평마을 일두고택의 추녀 끝, 그리고 집라인을 타고 날다람쥐가 되어 굽어본 대봉산의 심산유곡 곳곳에도 어김없이 가을빛이 내려앉았다.

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 사진 제공 함양군청

우인재 작가는 10여 년간 출판사에서 여행 콘텐츠 기획 및 취재를 담당했다. 아시아나항공 기내 가이드북 로스앤젤레스 편을 비롯해 대한생명, 교보생명, 외환은행 등 보험·금융사 고객용 여행 가이드북을 기획 및 제작했다. 또 월간 「DOVE」, 「모터트렌드」 등의 매체를 비롯해 인천공항공사, 롯데백화점, 조달청, 롯데제이티비, LS전선 등 기업체 사보에 여행, 드라이브 원고를 기고했다. 현재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거연정

옛 선비가 되어 음풍농월하며 즐기는 만추

깊어가는 가을, 함양으로 떠난 여정에서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물 맑은 화림동계곡에 숨겨져 있는 조선 시대 누정(樓亭) 거연정(居然亭)과 농월정(弄月亭)이 아닐까. 화림동계곡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했던 경유지다. 한양에 가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화림동계곡을 지나 덕유산 육십령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계곡에는 여덟 개의 못과 여덟 개의 정자가 있어 ‘팔담팔정(八潭八亭)’이라는 수식이 붙기도 했다. 현재는 거연정을 비롯해 일곱 개의 정자만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화림동계곡은 남덕유에서 발원한 금천이 만들어놓은 함양군 최고의 비경이다. 유리알처럼 맑은 물이 흐르며 계곡 곳곳에 신비로운 초록빛을 머금은 소와 담을 빚어놓았는데, 옛사람들은 절묘하게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손꼽을 만한 장소만 골라 누정을 지었다. 거연정은 조선 시대 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제 전시숙(花林齊 全時叔)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조선 후기에 건립한 것으로 바위에 올라앉은 정자가 계곡의 비경에 방점을 찍는다. 달을 희롱하며 논다는 뜻이 담긴 농월정은 계곡이 넓어지는 하류 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앞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너럭바위 월연암과 이층 누각이 어우러진 풍경은 가히 화림동계곡의 으뜸이라 할 만하다.
함양군은 바로 이 계곡에 놓여 있는 거연정을 비롯해 농월정, 군자정 등 일곱 개의 정자와 그에 얽힌 역사를 스토리텔링해 ‘선비문화 탐방로’를 조성했다. 거연정이 있는 서하면 봉전리에서 농월정을 거쳐 안의면 금천리 일원의 오리 숲까지 이어지는 탐방로에는 나무 판자를 깔고 징검다리를 놓아 가을을 오롯이 느끼며 산책하기에 좋다.
농월정 농월정
거연정 거연정
개평마을 개평마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 애기씨가 머물던 고택

고택은 가을이라는 계절과 잘 어울리는 여행 테마다. 선비문화 탐방로가 끝나는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에서 불과 9km가량 떨어진 개평마을은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수십 채의 한옥이 마을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전통 마을이다. 함양은 예부터 안동에 비견될 만큼 뛰어난 선비와 문인을 많이 배출했는데, 그중에서도 이곳 개평마을이 고향인 일두 정여창은 조선 시대 성리학의 거두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5현으로 꼽히는 뛰어난 학자였다. 정여창고택 혹은 일두고택이라 불리는 한옥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 주인공 고애신(김태리)의 집으로 등장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장소다. 흔히 뒷방이라 불리는 안사랑채가 바로 애기씨 고애신이 머물던 공간으로 나왔는데, ‘미스터 션샤인’이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한류 문화의 선봉에 서면서 더욱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개평마을에는 일두고택 외에도 하동정씨 고가, 오담고택, 노참판댁고가 등 오래된 한옥 6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마을 전체를 둘러보려면 1시간 이상 할애해야 한다. 마을 사이로 난 고즈넉한 돌담길은 맑은 가을 하늘과 기막히게 잘 어우러지며 방문자들이 절로 산책하고 싶어지는 풍경을 연출한다. 마을 앞 작은 언덕에 형성된 소나무 숲도 놓쳐서는 안 된다. ‘함양 개평리 소나무 군락지’라는 이름으로 경상남도 기념물에 등재된 귀한 천연자원인 이 숲은 풍수적 관점에서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숲으로 수령이 무려 300~400년에 이르는 적송 100여 주가 모여 아담한 숲을 이루고 있다.
정여창고택 정여창고택

모노레일 타고 하늘에서 감상하는 가을 정취

개평마을 서쪽에 솟아오른 해발 1,252m 높이의 대봉산은 지리산 못지않은 수려한 자태로 함양 사람은 물론 수많은 산꾼으로부터 사랑받아 온 명산 중의 명산이다. 지난해 이곳에 모노레일과 집라인 체험 시설이 들어선 이후 대봉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힘들이지 않고 감상할 수 있게 되면서 개장 초기부터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21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것만으로 대봉산 모노레일의 재미가 입증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국내 최초 산악 관광 모노레일로 전국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대봉산 모노레일은 하부 승강장에서 대봉산 정상 인근까지 3.93km에 이르는 구간을 오간다. 이 모노레일에 탑승하면 여유롭게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정상에는 불로장생 전망대, 소원바위, 대봉산 정상 표지석 등이 있어 주말에는 인증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불로장생 전망대에 서면 사방이 탁 트인 시원한 조망이 시야를 압도한다.
조금 더 다이내믹하게 대봉산을 즐기고 싶다면 집라인을 이용해 보면 어떨까? 대봉스카이랜드가 운영하는 집라인은 산들바람코스, 하늬바람코스, 높새바람코스 등 총 다섯 구간에 걸쳐 3.27km 길이의 강철 와이어가 설치되어 있어 날다람쥐처럼 하늘을 날며 대봉산 절경을 구경할 수 있다. 소요 시간은 70여 분이므로 집라인을 체험하려면 넉넉히 시간 여유를 두고 움직이는 여행 계획을 짜야 한다.
함양대봉산에서 집라인을 체험하는 모습 [사진 출처: 함양대봉산휴양밸리] 함양대봉산에서 집라인을 체험하는 모습 [사진 출처: 함양대봉산휴양밸리]
대봉산 모노레일 대봉산 모노레일
지난해 ‘대봉산휴양밸리’라는 이름으로 거듭난 대봉산 자락에는 모노레일과 집라인 같은 관광시설 외에도 자연휴양림, 캠핑장, 생태숲 체험관 등 체류형 시설도 잘 마련되어 있다. 그중 대봉캠핑랜드는 최근 몇 년째 열기가 식을 줄 모르는 아웃도어 끝판왕, 캠핑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신설 캠핑장이다. 총 14면의 캠핑 데크를 비롯해 개수대, 샤워장, 화장실 등 부대시설도 모두 새로 조성해 쾌적한 환경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으며, 사설 캠핑장에 비해 이용료도 저렴한 편이라 주말에는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캠핑 장비가 없는 사람이라면 원목으로 꾸민 산막형 숙박 시설 대봉사나래관을 이용해도 좋다. 총 20개 객실로 구성된 2층 규모의 연립 형태로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냉장고, 조리 도구와 식기류 등을 갖춘 콘도형 시설이기 때문에 가족 단위 방문객이 머무르기에 더욱 좋은 환경이다.

울긋불긋 단풍에 물든 용추폭포와 함양 상림

기백산군립공원에 속한 용추자연휴양림과 함양군청 인근의 상림(上林)도 반드시 들러야 할 함양의 가을 여행지로 손꼽힌다. 거창군과 함양군의 경계에 솟아오른 기백산은 지난 1983년 일찌감치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함양의 대표 명소로 용추계곡을 따라 곳곳에 빼어난 절경이 숨겨져 있는 풍경 맛집이다. 보통 용추사 입구 삼거리나 금원산 북쪽 점터 마을에서 출발하는 2개의 산행 코스를 이용해 등산하지만 기백산을 가볍게 즐기고자 하는 사람에게 본격적인 등산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이럴 때는 용추폭포만 돌아보고 가는 편이 좋다. 붉은 단풍이 흩날리는 용추폭포 일대는 그야말로 신선이 노닐다 갔을 법한 선경을 연출한다. 깊은 소에 떨어지는 폭포수의 맑은 물은 알알이 흩어져 마치 옥구슬이 떨어져 나오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여정의 대단원을 장식할 마지막 여행지인 함양 상림에 들러 가을 숲의 절정을 맛보도록 하자. 함양군청을 기준으로 함양읍의 서쪽을 관통하는 위천 가에는 신라 시대에 일부러 조성한 인공 숲인 상림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이 지역 태수로 부임한 고운 최치원은 위천의 상습적인 범람으로 인한 수해를 막고자 강가에 둑을 쌓고 호안림(護岸林)을 조성했다. 이 숲은 천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지나도록 그 생명을 이어와 지금의 함양 상림으로 전해지고 있다.
용추폭포 용추폭포
함양 상림만추 함양 상림만추
함양으로 떠나는 식도락 여행

천고마비의 계절에 만나는 토속 먹거리

  • 민물고기의 영양이 그대로 어탕국수

    어탕 혹은 어죽은 충청북도나 전라북도, 경상남도 등 산이 깊고 물이 맑은 지역에서 많이 먹는 우리의 옛 전통 음식이다. 맑은 물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푹 고아서 살만 발라 낸 뒤 이것을 다시 쌀과 함께 끓여 죽으로 만들어 먹는데, 쌀 대신 국수를 넣으면 어탕 국수가 된다. 소금으로 간하고 후추, 다진 마늘 등을 넣어 맛을 더한다. 함양 일대에서는 민물고기의 영양이 고스란히 농축된 어탕국수가 숙취 해소나 보양에 좋다고 해 예부터 즐겨 먹는 토속 음식이었다. 조샌집(055-963-9860)을 비롯해 남원집, 강마을어탕, 함양집 등지에서 어탕국수를 맛볼 수 있다. 함양에서 가장 오래된 어탕국수 전문점 으로 유명한 조샌집은 성씨 ‘조’에 선생을 뜻한 ‘샌’을 붙인 이름으로 40여 년 동안 어탕 국수를 만들어 오고 있다.
  • 함양의 이색 먹거리 흑염소 불고기

    흑염소 고기는 예부터 한우의 대체재로, 그리고 한약과 함께 섭취하는 보양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특유의 노린내와 익숙지 않은 식감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흑염소 불고기는 노린내가 나지 않도록 조리해 아이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함양 흑염소는 우리에 가두지 않고 산과 들에 방목해 키우기 때문에 산야초를 먹고 자라 지방이 적은 것이 특징으로, 함양 8미 중 하나로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처럼 때 묻지 않은 청정자연에서 자란 덕분이다. 도시 사람들에게 흑염소 고기는 조금 낯설지만 특별한 토속 먹거리를 찾는 여행자라면 꼭 맛보라고 추천한다. 두레박흙집(055-962-5507)을 비롯해 제일문산장, 민재 여울목산장 등이 흑염소 고기를 전문으로 낸다.
  • 연꽃의 기품이 느껴지는 연밥 정식

    진흙 속에서도 청초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올리는 연꽃은 흔히 연밥이라 부르는 씨와 커다란 잎 등 버릴 것이 없어 쓸모가 많은 식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연꽃 씨는 보통 재배를 위해 취하기도 하지만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하는데 염증을 가라앉히는 소염 작용을 비롯해 혈압 조절, 치매 예방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함양에서는 연잎을 이용한 연밥 정식이 웰빙 음식으로 대접받고 있다. 흑미와 찹쌀, 은행, 땅콩, 대추 등 열두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연밥을 지을 때는 커다란 연잎으로 보자기처럼 재료를 감싼 뒤 찌는 것이 보통이다. 다양한 잡곡이 뭉개지거나 서로 뒤섞이지 않아 씹는 맛이 살아 있으며, 영양도 풍부해 건강식으로 추천한다. 함양 읍내 옥연가(055-963-0107)에서 연밥 정식을 맛볼 수 있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