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성미 l 사진 성민하
글 이성미 l 사진 성민하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도서관 문이 열린다. 방문자를 확인하고 시선을 거둘 새도 없이 또 문이
열리고, 다람쥐 같은 학생들이 도서관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도서관 곳곳에는 추천 도서 리스트와 도서관 연계
프로그램 안내 포스터 등 누군가 정성을 들인 흔적이 가득하다. 도토리숲도서관 관장이자 10년 차 사서교사인
김담희 교사가 남긴 것들이다.
김담희 교사가 부임하기 전까지 학교 도서관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낡은 책이 많았고, 대출 반납은
점심시간에만 이루어졌다. 2022년 전국 학교 도서관 가운데 사서교사가 배치된 초중고교 비율은 15.62%*로 열에
한두 곳밖에 되지 않는다. 학교의 첫 사서교사였던 김담희 교사는 부임 첫날부터 두 팔을 걷어야 했다.
“부임 첫해에는 2만여 권의 책 중 읽을 수 있는 것과 버릴 것을 골라내는 일부터 공간을 정비하는 일까지 할 일이
산더미였거든요. 책을 정리하고 있으면 학생들은 ‘도서관 문이 왜 열려 있지?’ 하고 의아해했어요. 도서관이 늘
가까이에 있는데도 학생들은 낯설게 느끼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을 새로 꾸미는 동시에 이곳의 존재와
쓸모를 알리고, 공간을 기획하는 데에도 학생들의 의견을 최대한 받아들였어요.”
*출처 : ‘2022회계연도 학교회계 학생 1인당 공교육비 내역‘
김담희 교사는 2022년부터 ‘도서관을 도서관처럼 보이게 만들자’는 미션을 품고 공간 정비에 나섰다. 학생들이 언제든
도서관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철문을 유리문으로 바꾸고, 곳곳에 간접조명을 두어 따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도서관 이름인 ‘도토리숲도서관’은 최상희 작가의 소설 『속눈썹, 혹은 잃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에 나오는 도서부
이야기에서 따왔다. 2024년 3월, 공간 정비를 마치고 도서관을 개관하면서 김담희 교사는 ‘도서관을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도서관을 향한 학생들의 요구가 무척 다양해요. 이곳을 만남의 장소로 쓰고 싶어 하는 학생도 있고, 조용히 책에
몰입하고 싶어 하는 학생도 있죠. 서로 다른 요구를 동시에 충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끝에, 책장 안쪽은
‘문학의 숲’, 바깥쪽은 ‘비문학의 길’이라고 이름 짓고, 안과 밖의 공간을 나눠 동선을 정리했어요. 도서 큐레이션
코너에는 ‘사랑에 빠지고 싶을 때 읽는 책’, ‘장애 인권 관련 도서’ 등 주제별 도서 목록을 적어 흥미를 끌게 했고요.”
김담희 교사의 바람은 학생들이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 덕분일까. 부임 전과 비교해
도서 대출 권수와 이용자 수가 다섯 배 가까이 늘었다. “책을 빌리지 않고 들렀다 가는 친구들도 있으니, 실제 도서관
이용자 수는 훨씬 많을 거예요”라며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김담희 교사는 누구보다 하루를 알차게 쓴다. 수업 시간에는 수업과 연구에 매진하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책을 빌리러 온 학생들을 맞이하느라 쉴 틈이 없다. 실제 사서교사는 사서 업무뿐
아니라 교육과정을 이해하고 교육에 직접 참여하는 교사 업무까지 모두 해야 한다. 현재 사서 교과는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김담희 교사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동료
교사와 소통하며 교과와 도서관을 어떻게 연결할지 끊임없이 연구한다.
“어릴 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학생 저마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가치를 발견해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죠. 그런 저에게 사서교사는 꼭 맞는 직업처럼 느껴졌어요. 사서교사는 책과 교과
수업만큼 학생에 관한 공부도 많이 해야 하거든요. 학생들이 평소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알아야 책과 가까워질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으니까요. 협력 수업에 열심인 이유도 평소
도서관을 찾지 않는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싶기 때문이에요.”
교문 밖을 나서도 그의 마음에서는 학생들이 떠나질 않는다. 퇴근 후와 주말이면 그는 지역의
도서관과 책방에 들러 책 진열 방식과 프로그램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도서관에 가면 어떤 책을 사서 진열할지 책 구매 목록은 물론 도서관이 방문자에게 말을 거는 고유의
방식에 관해서도 살펴보곤 해요. 공간 자체가 ‘당신을 환대한다’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 도서관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 늘 고민합니다.”
이렇게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김담희 교사는 도토리숲 도서관만의 고유한 프로그램을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점심시간 독서 프로그램 ‘책식당’이다.
매일 점심시간에 도서관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을 골라 20분 동안 읽은 다음, 3분 동안 읽은 부분에
관해 짧은 글을 쓰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방과후 주제별 토론 프로그램인 ‘글말삶 주제 토론’에서는
청소년 참정권, 동물권, 기후위기, 과학기술과 윤리 등 우리 삶과 밀접한 주제로 질문을 뽑아내고
비경쟁 토론을 진행한다.
“이리영등중학교에 부임하기 전 전주우림중학교에서 근무했어요. 혁신학교라 무언가 시도해 볼 기회가
많았는데, 특히 전주 지역의 독서 문화 인프라를 활용해 학생들과 여러 기관을 탐방한 일이 기억에
남아요. 방학에는 지역의 작은 책방들을 탐방하는 ‘우리 동네 책 공간 탐방’ 프로그램을 열었고요. 익산에
발령받은 후로는 이 지역 사서교사들과 합심해 ‘도서부 연합 캠프’를 열기도 했어요. 이들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도서관이 학교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서교사는 나와 타인과 사회를 만나는 공간으로 도서관의 영역을 확장해야 하죠. 그래서 앞으로도
도서관 안팎에서 다양한 만남을 기획하려고 합니다.”
도토리숲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김담희 교사는 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 추천도서위원으로 활동하며
전국 사서교사와 서평집 『서(書)로이음』을 출간하고, 전북사서교사협의회 소속 동료 교사들과
연구회도 조직해 꾸준히 소통한다.
틈틈이 김담희 교사는 책만큼이나 많은 사람 속에서 세상을 배운다.
김담희 교사야말로 지역사회라는 커다란 숲에서 도토리를 찾아다니는, 가장 바쁜 다람쥐인 셈이다.
그가 오가는 곳마다 새 길이 나고 도토리숲은 나날이 울창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