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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거북이는 오늘도 달린다

이인호 회원 (진도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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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선생님은 현재 전라남도에서 기초 문해력 전담교사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아이들의 문해력 향상을 위해 늘 노력하고 있으며, 매 순간 아이들과 함께 배움과 희망의 의미를 깨닫는다.

매일매일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 온 기록들

올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이 다가오면 자연스레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휴대전화 속 앨범을 열어 올 한 해 아이들과 찍은 사진을 쭉 훑어본다. 올해 초에 찍은 사진과 최근 사진을 비교해보니 아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큰다는 게 실감이 난다. 그 옆에 있는 내 모습에서도 세월이 느껴진다. 이제까지 가정에 보낸 학습 안내 영상도 하나둘 재생해본다. 차곡차곡 모아 블로그에 올리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영 허술하다. 이번엔 서랍 속 수업 일지를 꺼내 첫 장부터 한 장씩 읽어본다. 일지에는 무슨 책을 읽었는지, 읽기 중 어떤 오류가 어디서 발생했는지, 무엇을 받아썼는지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수업 일지 하단 특이 사항에 적은기록을 읽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하나둘 적었는데 모아보니 태권도는 무슨 띠인지, 무슨 치킨을 좋아하는지, 어제 집에서 형이랑 왜 싸웠는지, 오늘은 엄마와 치과에 가서 윗니 몇 번째 유치를 뺄 예정인지, 주말에 할머니 집에 가 무엇을 도와드렸는지, 자기 집 강아지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 별별 내용이 다 있다.
거북이 달린다.

온 힘을 다해 걸어간 거북이, 모두 할 수 있어

수업 일지를 보니 아이들과 함께 동화 「토끼와 거북이」를 읽은 날도 있다. ‘수업 시간에 ‘거북이 달린다’라는 문장 받아쓰기를 연습하고 의미도 설명한다.’는 깨알 같은 메모도 잊지 않았다. 그날 수업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토끼와 거북이」 속 거북이처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알다시피 거북이는 매우 느리다. 너무 느려 거북이가 온 힘을 다해 달려도 우리 눈에는 그저 천천히 기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느리더라도 계속 가다 보면 거북이처럼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토끼와 거북이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은 거북이가 건방진 토끼를 이긴 것이 아니라 거북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갔더니 결국에는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심어졌기를 다시 한번 기도한다.
그 뒤로도 가끔 ‘거북이 달린다’라는 문장이 마음속 잔상으로 남아 자꾸만 곱씹게 된다. 올 한 해를 적절히 함축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느리더라도 올바르게, 끝까지 우리 함께 하자

내가 올해 문해력을 가르친 6명 아이는 「토끼와 거북이」 속 거북이를 닮았다.
올 초와 비교해 아이들의 키가 훌쩍 자란 것처럼 문해력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눈에 띄게 성장했다. ‘ㄱ’ 자도 모르던 아이가 쉬는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을 골라 읽는다. 받아쓰기를 싫어하던 아이는 이제 내가 불러주는 동시를 정확히 받아 적는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모른다고 말하며 회피하던 아이가 지금은 답을 찾기 위해 골똘히 생각하고, 수업이 끝나기만 기다리며 시계만 쳐다보던 아이가 쉬는 시간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아이들이 내가 일러준 ‘거북이 달린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한 것일까?
아이들과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동안을 함께했다. 한글(문해력) 교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음운 인식과 일견 어휘, 구문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또래보다 배우는 속도가 더디다. 아이들과의 첫 수업 시간이 아직 생생하다. 각양각색 개성 있는 아이들이지만 첫 수업만큼은 늘 비슷하다. 문해력 교실은 아이들의 교실이 있는 본관 건물이 아닌 다른 건물에 있어 첫날은 꼭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데,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 아이들은 긴장한 듯 필통을 챙기며 나를 따라나선다. 교실로 가는 길에 “아침밥 먹었어?” 같은 일상적 질문을 던지지만 첫 만남부터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수업을 해나갈지 이야기해 줄 때도 아이들의 표정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이야기 속 거북이와 다른 점은 시간이 지나며 아는 것이 하나둘 쌓일 때마다 달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것이다. 옆에서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응원해주고 지칠 때는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며 함께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는 점도 다르다. 포기하지 않고 함께 뛰다 보면 시차는 있지만, 마지막에는 모두 결승점에 도착하게 된다. 그것도 처음보다는 확연히 빨라진 속도로.
아이들에게 문해력을 가르치며 깨닫게 된 자명한 사실은 빨리 뛰는 것보다 처음에는 느리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거북이는 오늘도 힘을 내 달린다

‘거북이 달린다’가 마음속 잔상으로 남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도 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거북이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배운 것보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몇 배나 많이 남아 있는 교사. 문해력 교사를 시작할 때 지식과 경험이 부족해 아이들을 가르치며 발생하는 사소한 문제도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한참이나 관련 자료를 뒤적이거나 다른 문해력 선생님, 선배 교사들에게 물어보며 느릿느릿 문제를 하나둘 해결해온 지난날. 그러나 내가 아이들 옆에서 함께 뛴 것처럼 내 옆에서 가르침과 용기를 주시며 같이 뛰어주신 고마운 분들 덕분에 나 역시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것을 안다.
분명 처음보다 속도가 확연히 빨라진 것을 느끼며 거북이는 오늘도 힘을 내 달린다.
세상의 모든 거북이, 내년에도 힘내자! 케이 로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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