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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
이제는 ‘디지털 시민성’ 이다

소소한 학교생활에서의 갈등을 해결하고 다른 의견을 경청하는 등 일상에서 체득하는 학습이
시민 간 연대, 공동체 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역량을 갖추게 하는 민주시민 교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아이의 시민 교육 방식은 현실에 맞도록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생겨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인종과 지역, 성별에 관한 증오 표현을 쉽게 던지고 수습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다름’을 수용하는 시민교육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디지털 시민성’을 키워주는 것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일이기도 하다.

김지윤 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기자

민주사회에서 갈등은 필연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우리나라 학교는 ‘갈등’을 참 싫어해요. (웃음) 교실 안에서도 갈등은 나쁜 것이고,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수업이 흘러가요.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 스무 살부터 백 살 될 때까지 크고 작은 갈등 속에서 살아갈 텐데, 그걸 다루고 해결해나가는 절차에 대해 가르치는 걸 두려워합니다.”
민주시민 교육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온 한 중학교 교사의 말이다. 이분의 민주시민 교육 수업 현장을 취재하러 갔을 때, 제법 치열한 교실 분위기에 놀라면서도 뿌듯함을 느낀 적이 있다. ‘아이들이 참 똑똑하다’라는 생각뿐이었다.
학생들은 토론 주제를 놓고 입장을 정한 뒤 발언권을 얻고 논리 정연하게 말했다. 다소 근거가 약한 의견이 나와도 “쳇” 하는 비웃음 하나 터지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며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인정한 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나갔다. 정치인들이 TV 토론에 나와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민주주의 신발
갈등을 이해시키는 것이 민주시민 교육의 출발점이다. 갈등은 싸우는 것과는 다르고, 나와 너의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는 출발선부터 명확히 해주면 민주시민 교육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갈등은 인간 사회에서 언제나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선명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 문제 해결이 아닌 묻어두고, 봉합하기에 급급할 것이다.
지금은 각 교육청에서 두 팔 걷고 민주시민 교육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한국 교실에서는 여전히 ‘민주시민 교육은 정치 교육’이라는 인식이 있다. 교육 선진국이라 불리는 독일·핀란드·캐나다 등에서는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 한 민주적인 참여를 이끌고 윤리와 법률, 문화와 선거 등 인지적인 차원의 학습도 체계화하고 있다.

전통적 민주시민 교육의 정의

민주시민 교육 하면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 개념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혁신학교를 비롯한 많은 현장 교사들은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민주시민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전통적 민주시민 교육의 핵심 키워드는 ‘주권자 교육’이다. 주로 학교 울타리 안에서 이뤄지는 투표권 행사의 의미와 실천 방법, 선거의 의미, 절차적 민주주의, 청소년 자치 활동 등에 관한 내용이다. 이런 배움의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내 나라, 내 권리, 내 의무에 관해 알게 되고, 민주시민으로서 어떻게 성장해나갈지에 대한 고민도 시작한다.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정원규 교수는 주권자 교육과 관련해 “자신이 몸담은 국가와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운영 원리가 무엇인지 등을 교육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배울 수 있어야 한다”라고 역설한 바 있다. 개인 의견이 제도와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지 등을 담은 교육과정을 통해 충분히 체화하는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한 민주시민 교육의 목표라는 이야기다.

아이들 사진
아이가 가방을 맨 사진

민주시민 교육, 해외에서는 어떻게 할까?

2018년과 2019년에 한겨레 주최로 각 교육청과 함께 진행한 ‘학교 민주시민 교육 국제포럼’을 취재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를 공교육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녹여낼 것인지, 미래 세대를 위한 민주시민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해외 교육 선진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자리였다.
덴마크와 라트비아 등에서는 민주시민 교육이 의무교육에 포함된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1978년부터 민주시민 교육을 전개해왔다. ‘범교육과정 원칙’으로서의 오스트리아 시민교육 조례를 마련한 뒤, 2007년 총선에서는 선거 연령을 16세로 낮췄다. 따라서 청소년 시기에 접하는 민주시민 교육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친구끼리 인사를 건네고 일상을 나누는 과정, 다른 의견에 경청하는 태도를 갖는 것 등 소소한 학교생활 요소를 크게 확장해보면 그게 바로 시민 간 연대, 공동체 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역량 등으로 대표되는 민주시민 교육이라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학교 민주시민 교육과정을 8학년에서 6학년으로 앞당기는 등 시민교육 기간 자체를 연장하는 추세다. 학교가 지역사회 공동체의 중심이 되고, 학생들이 ‘학교 너머의 시민사회’를 자연스레 접하도록 교육한다.

디지털 시대 ‘생존 역량’을 기르는 ‘시민성 교육’

전통적 의미에서의 민주시민 교육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코로나19 이후 급변한 교실 환경을 보자면 이제는 ‘디지털민주시민 교육’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혐오 사이트의 주 이용자가 청소년이고 인종과 지역, 성별에 관한 증오 표현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요즘 시대에 ‘다름’을 수용하는 시민교육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고교 3학년을 졸업하자마자 덜컥 주어지는 성인 타이틀이 아닌, 오랜 시간을 들여 학생 한 명 한 명을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키워내는 ‘디지털 민주시민 교육’이 지금, 여기, 한국에서 더욱 필요한 이유다.
화려한 영상을 보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밖으로 나가, 영화관 매표소에서 큰마음 먹고 표를 산 뒤 미디어를 즐기는 세대는 우리가 마지막이었던 듯싶다. 이미 두 살 때부터 손끝 터치 한 번으로 유튜브와 각종 미디어, 영상 환경을 접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미디어는 생활 그 자체다. 너무 익숙해 공기와도 같아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를 제대로 읽어내고 얻어낸 정보와 지식을 소화해내는 능력은 필수가 됐다.
학생 한 명이 가진 SNS 계정,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계정만 해도 다섯 개는 훌쩍 넘는다. 트위터·인스타그램·넷플릭스·페이스북·유튜브·카카오톡 등 아이들을 둘러싼 모든 플랫폼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매체나 영상 속 알고리즘은 내 일상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등을 알아채는 능력은 이제 ‘생존 역량’이라고 이를 만하다.
핸드폰을 하고있는 청소년들
디지털을 활용해 공부를 하고있는 모습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미디어 내용의 편향 등 전반적 문제를 파악하고, 숨은 이해관계와 의도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며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교육을 말한다. 사실을 말하는 미디어에도 편향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교육이다. 그 편향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그것이 지닌 함의와 맥락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비판적 탐구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민주시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인 이유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디지털 시민성을 키워주는 것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은 요즘 숱한 사이버 폭력과 디지털 성범죄, 온라인에서 접하는 혐오 표현 등의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인공지능(AI) 교육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영역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는 어린이, 청소년이 디지털 격차로 인한 차별 없이 디지털 환경의 기회와 위험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디지털 범죄를 줄이는 문제는 인공지능 교육 등 디지털 ‘기술 역량’ 향상에만 초점을 둔 교육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유엔은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엄연한 민주시민 교육의 영역으로, 미디어 문화 및 윤리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디지털 시민성 교육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이렇듯 민주시민 교육의 21세기 맞춤·확장형 교육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 교육의 중요성에 비해 ‘언어와 미디어’에 관한 교육과 관심이 자칫 소홀해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미디어의 다양성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담고 있는 콘텐츠의 우수성과 가치이며 이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과 비판하는 시각을 키워야 한다.
뉴스와 보도, 서사가 있는 영상 등 미디어에 대한 근본적 이해,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주지 않고 기술로만 사용하게 한다면 시민성이 결여된 사회가 될 것이라고 각종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어린이, 청소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에 대해 학생 스스로가 비평·공부할 기회를 제공하고 긍정적인 소통, 문제 해결 방법도 터득해갈 때 비로소 디지털 시민성을 온전히 체득하게 될 것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