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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누기

좋은 사람 좋은 생각

자연이 하는 말을 받아씁니다

「섬진강」 의 시인 김용택
시인은 매일 아침 강가로 나간다. 강물도 뒤를 졸졸졸 따른다. 일가친척 몰고 온 청둥오리는 놀란 기색이 없다. 섬진강에 살을 맞대고 사는 모든 생명에 김용택 시인은 자연이다. 자연이 주는 언어를 받아 적으며, 그는 70여 년을 자연과 경계 짓지 않고 살았다. 바라건대 학생도 교사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면 좋겠다.

이성미 / 사진 김수

주인공 사진.

시인은 자연의 말을 받아 적는 사람

내가 강물을 찍어 가는 일은 완벽해요
푸른 산 중턱을 쏜살같이 내려와
아침 강물을 찍을 때
한 점 물방울을 흘리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기운 한쪽으로 확실하게 가져갈 것이니까요
- 시 ‘노란 꾀꼬리의 아침’
김용택 시인이 등단한 지 40년이 되는 올해, 열세 번째 시집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를 냈다. 시인으로 불혹(不惑)에 이른 덕일까? 그의 신작에는 혹함이 없다. 자연이 주는 언어를 고스란히 옮겨 적었다. 노란 꾀꼬리가 부리로 찍어 간 강물처럼, 자연이 전한 언어가 마음에서 손으로 갈 때까지 한 점 흘림이 없도록 했다. 그 완벽함이 곧 변화였다.
“너무 오랫동안 같은 문법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는 좀 달랐어요. 기름기가 빠졌다고 할까요? 누군가는 ‘사물을 바로 봤다’라고 하고, 누군가는 제 시가 ‘11월 강가의 나무 같다’라고 해요. 주변에서 그렇게들 말해주니 좋아요. 처음 등단할 때의 설렘도 느끼고요.”
설렘. 시집을 낸다고 찾아온 특별한 감정이 아니다. 그는 나무가 매일 다른 모습인 것이 설레고, 나비가 나는 것이 설렌다. 나비를 보고 설렐 수 있는 유효기간은 몇 해나 될까? 태어나 고작 4년? 길어야 7년? 그러나 김용택 시인은 일흔넷의 나이에도 나비의 날갯짓이 마음을 간지럽힌다. ‘나비는 얼마나 먼 데서 달려오다가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을까요’ (시 「나비가 날아오르는 시간」 중에서) 하고 경이로워한다.
“나비가 집 앞으로 많이들 찾아와요. 떼로 놀며, 짝짓기 철에는 하얗게 엉겨요. 공중에서 엉기다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경이로운지요. 나비는 바로 난다고만 생각하는데, 뒤집어서 날기도 하고요. 오! 놀라워요.”
김용택 시인에게 시는 우주를 담아내는 일이다. 우주가 그러하듯 고정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시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향기가 나고, 새로운 바람이 분다. 그 역시 시를 무엇 하나라고 규정짓지 않는다. 그는 시인이든 예술가든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고정관념을 갖는 것이라고 믿는다.
“74년 동안 매일 앞산을 바라봤는데 늘 달리 보여요. 나무도 마찬가지예요. 나무는 정면이 없어요. 바라보는 곳이 정면이죠. 언제 보아도 완성되어 있지만, 또 언제나 다릅니다. 가지마다 끝이 있지만, 경계가 없고요. 바람, 햇빛, 새, 모든 걸 받아들여서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그 변화를 관찰하고, 그들이 하는 말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들이 전해주는 새로운 말을 저는 그저 받아 적으면 되는 거죠.”

아이들 속에서 평생 교사로 살았다는 행운

김용택 시인은 시인으로 살아온 세월만큼 교사로 살았다. 1970년 첫 발령을 받고 교직 생활을 시작한 이래 38년 동안 집 인근의 초등학교 서너 곳을 돌았다. 그러고는 2008년 8월 모교인 덕치초등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했다. 김용택 시인은 “세상에서 교사가 제일 좋은 직업”이라며 “평생 교사로 산 것은 행운이었다”라고 회고한다. 그가 있었던 덕치 초등학교 교실 의자에 직접 앉아보지 않았어도, 퇴임 후 2010년 발간한 에세이집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에 적힌 ‘너희들은 내 고단한 인생의 길을 환하게 밝혀준 스승들이었단다’라는 말에서 그가 어떤 교사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교실 안에는 고정관념 없는 스승과 제자가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경계가 없었다는 것도.
“사람이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아요. 살아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죠.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몰라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더 해요.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거든요. 고정된 관념이 없다는 거죠.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에 앞서 계산하지 않아요. 저는 2학년 아이들만 26년 동안 가르쳤는데, 그 덕분에 저도 함부로 개념 짓지 않고 살 수 있었어요. 돌아보면, 아이들 속에서 평생 살았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에요.”
김용택 시인은 교실에서 입시(入試)보다 시(詩)를 찾았다. 아이들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글을 썼다. 책도 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이 가진 절대 유일의 능력으로 ‘감성’을 꼽는 지금, 우리는 그의 교육이 미래 세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특이점을 지나고 있어요. 그 특이점을 지나면 우리 인류가 그동안 쌓아온 것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될지 몰라요. 사피엔스(sapiens)의 두뇌가 필요 없어지는 거죠.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성이 아닌 감성이고, 공감입니다. 지극히 인간다워지는 것이죠.”
개울가를 걷고있는 주인공  이름판에 기대어있는 주인공 이미지

이제는 잠시 멈춰 자연스럽게 살아갈 때

돌아보면 우리는 변함없이 경쟁하며 살아왔다. 학교에서 경쟁을 배우고, 경쟁을 통해 교사가 되어 다시 경쟁을 가르쳐야만 했다. 경쟁은 이미 오래된 관습처럼 살아 있다. 교사 한 명의 문제도 아니고, 교사 한 명의 노력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변해야 한다. 교사를 길러내는 교육기관이 먼저 경쟁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경계 짓지 않아야 한다. 정치·지역·교육·성별 등을 구분 짓고 옳고 그름, 나음과 못함을 구분 짓는 경계를 경계할 때다. 그러기 위해 김용택 시인은 “인간으로서의 ‘인간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가까운 해답은 마을공동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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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아닌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기본 원리를 가르치는 마을 말이다.
“마을공동체가 유지되는 비결은 아주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도둑질 안 하고, 막말 안 하고, 거짓말 안 하면 돼요. 마을공동체는 수천 년간 그걸 지킴으로써 유지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대부분 이 세 가지가 깨져 생기는 것이에요.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자연과 변화를 관찰하고 매 순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합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처럼 단순한 삶의 원리일지도 몰라요.”
김용택 시인은 코로나19로 사회가 ‘잠시 멈춤’이 된 지금이야말로 ‘변화의 적기’라고 말한다. 흑사병 창궐 당시 뉴턴이 시골로 내려가 ‘창조의 시간’을 보냈듯, 우리 인류가 이제는 잠시 멈춰 인류와 사회를 제대로 바라볼 때라는 것이다. 제대로 보고, 경계를 지우고, 경쟁을 버린다면 우리도 그와 같이 시인의 눈을 가질 수 있을까? 당장은 어렵더라도 훗날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섰을 때, 우리는 그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케이 로고 이미지 주인공 이미지
시 잘 짓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