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Magazine
Monthly Magazine
March 2022 Vol.55
배움 더하기 아이콘 이미지

배움 더하기

이렇게 바꿔요

편견과 왜곡으로 오용되는

차별적 단어 바로알기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음에도 차별 언어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저능아’, ‘앉은뱅이’, ‘불구자’, ‘벙어리 냉가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절름발이’, ‘장애우’ 등의 말이 버젓이 쓰이고 있다. 이런 말은 장애인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장애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기에 삼가야 한다. 이번 호에서는 잘못 사용되고 있는 차별적 단어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고, 바른말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이승훈 동아일보 어문연구팀 차장

정상인 => 비(非)장애인 장애를 '앓다'=> 장애를 '갖다'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사람.’ 정상인(正常人)의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다. 우리는 정상이 아닌 걸 비(非) 정상이라 말한다. 이를 보면 장애인의 상대어로 걸맞은 말은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어야 마땅하다. 정상인은 말 그대로 몸을 다치거나 탈이 나 아픈 사람(환자)에 상대할 때만 쓸 수 있을 뿐 장애인을 상대하는 말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장애인의 상대어로 정상인을 쓴다면 장애인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잘못된 말이 돼버린다. 서른다섯 살에 시작된 눈병으로 마흔다섯 살에 시력이 현저히 떨어져 지팡이를 짚고 거둥(擧動, 임금의 나들이)하신 세종대왕도 오늘날 판별 기준으로 보면 시각 장애인 범주에 들 수 있다.
장애인은 몸이나 정신이 불편한 사람일 뿐 결코 비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병에 걸려 고통을 겪다’라는 뜻의 ‘앓다’를 넣어 ‘장애를 앓다’는 표현도 많이 쓰는데 ‘장애를 갖다’로 쓰는 게 옳다. ‘장애를 앓다’는 말은 장애는 고통스러우니 치료를 받거나 고쳐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 가운데 순우리말이 많은 건 유감이지만 봉사나 소경, 장님은 ‘시각 장애인’, 귀머거리는 ‘청각 장애인’, 벙어리는 ‘언어 장애인’, 절름발이는 ‘신체 장애인’, 앉은뱅이는 ‘하반신 장애인’, 정신박약과 정신지체(지적 장애의 이전 용어)는 ‘지적 장애’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

불구자 => 장애인

‘몸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불구자(不具者)의 정의다. 「근대 장애인사」를 쓴 고려대학교 정창권 교수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는 공문서에 장애를 잔질(몸에 남아 있는 병), 폐질(고칠 수 없는 병), 독질(매우 위독한 병)로 기록했고 민간에서는 병자, 병신이라 했으나 ‘병이 있는 몸’을 말할 뿐 낮잡거나 차별하는 뜻은 없었다고 한다. 정 교수는 불구자라는 말은 개화기 무렵 일본어 ‘후구샤(ふぐしゃ)’에서 왔다고 했다. 후구샤는 ‘신체 장애인’, ‘~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장애인을 ‘무언가를 갖추지 못한 사람’, ‘몸의 기능이 결여되거나 쓸모없는 존재’로 바라보는 부정적인 뜻을 품고 있다. 불구자는 1970년대까지 장애를 일컫는 말로 쓰이다 유엔이 1981년 ‘세계 장애인의 해’를 정하고, 각국에 장애인 복지 시책을 펴도록 권고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그해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 장애자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규정했다. 그 후 1989년 법을 고치면서 일본에서 쓰는 ‘장해자’를 차용한 장애자라는 말을 ‘장애인’으로 바꾸었다. 불구자를 갈음할 말로는 ‘장애인’과 ‘나간이’가 있다. 나간이는 ‘신체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하거나 기능을 잃은 사람 또는 정신이 나간 사람’을 뜻하는 순우리말인데, 아직 표준어는 아니다.

벙어리장갑 => 손모아장갑

‘엄지손가락만 따로 가르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함께 끼게 되어 있는 장갑.’ 벙어리장갑의 사전 뜻풀이다. 이 말엔 청각·언어 장애인을 낮춰 부르는 벙어리라는 단어가 포함돼 새로운 말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장애인·아동 양육 기관인 엔젤스헤이븐은 2013년부터 이 장갑을 ‘손모아장갑’으로 부르자는 캠페인을 펼쳐왔다. 「동아일보」 손진호 기자는 2014년 12월 18일에 ‘손모아장갑’이라는 우리말 칼럼을 써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고, 2016년에는 한 아웃도어 회사에서 ‘손모아장갑’이라는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손모아장갑 캠페인 모델로 활동한 가수 솔비도 싱어송라이터 리얼스멜과 듀엣곡 ‘손모아장갑’을 발표한 바 있다.
엔젤스헤이븐 조준호 상임이사는 「동아일보」에 “캠페인의 최종 목표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벙어리장갑 대신 손모아장갑이라는 단어를 올리는 것”이라고 했는데, 함께 만들고 모두 누리는 우리말 사전인 「우리말샘」에 ‘엄지장갑’과 함께 ‘손모아장갑’이 표제어로 오른 것은 값진 성과라 할 수 있겠다.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공감과 합의가 이끌어낸 의미있는 사례이다.

장애우 => 장애인

장애우는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의해 널리 알려진 말이다. 이 연구소 누리집을 보면 “… 우리 연구소는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모든 장애인은 친구적 연대의식을 가져야 하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친구가 되어 사는 인간다운 사회가 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라는 설명이 나온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는 장애우라는 말을 거부한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가리켜 장애우라고 할 수는 있어도, 장애인이 비장애인에게 자신을 장애우라고 소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장애우는 다양한 연령대의 장애인을 아울러 이르기에도 부적합하다.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장애우를 쓸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분도 계시지만 장애인을 비주체적, 비사회적인 사람으로 규정짓는 말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정신분열증 => 조현병

정신병과 관련한 낱말도 편견을 없애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사고의 장애나 감정·의지·충동 따위의 이상으로 인한 인격 분열의 증상으로, 현실과의 접촉을 상실하고 분열병성 황폐를 가져오는 병’을 일컫던 정신분열증도 2011년 ‘조현병(調絃病, schizophrenia)’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 정보를 보면 ‘정신분열병(정신분열증)이란 병명이 사회적인 이질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편견을 없애기 위하여 개명된 것이다’라고 나온다.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는 뜻인데, 조현병 환자의 모습이 마치 현악기가 정상적으로 조율되지 못했을 때의 모습처럼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이는 것과 같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라고 설명한다. 병원의 ‘정신과’와 ‘정신과 의사’라는 말도 ‘정신건강의학과’ 또는 ‘마음건강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바뀌고 있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