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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2 Vol.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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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상담소

‘전쟁과 평화’,
사춘기 자녀와 갱년기

부모의 호르몬 갈등

만혼 등으로 출산 연령이 갈수록 높아짐에 따라 부모의 갱년기와 자녀의 사춘기가 겹치는, 예상치 못한 세대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가 동시에 호르몬 변화를 겪다 보니 서로 쉽게 짜증을 내게 되고, 심하면 가정 폭력으로까지 번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어느 시기보다 부모와 자식 간 심한 충돌 현상을 보이는 요즘, 호르몬을 넘어서는 대화합의 방법에 관해 이야기해 본다.

박재원 사람과교육연구소 소장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

전문가들은 “가정 내 세대 갈등의 기저에 출산 시기가 갈수록 늦어지는 현상이 깔려 있다”라고 분석한다. 젊고 누구보다 자신이 중요한 부모 세대의 인식 변화가 팬데믹과 만나 ‘부모’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참고 침묵하는 대신 “나도 우울해”라고 가족에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갱년기 증상이란, 여성의 폐경 후 일어나는 몸의 다양한 변화를 말한다. 신체적으로 강렬한 열감과 동반되는 심한 발한과 오한, 실신할 것 같은 느낌이나 무력감, 어지럼증이 그것이다. 이 밖에도 두통, 수면 장애, 기억력 저하, 집중력 저하, 자신감 상실, 무력감, 의욕 저하, 피로, 관절통, 근육통 등 극심한 심신의 변화로 고통을 겪게 된다. 사춘기에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는데 이로 인해 아이들의 몸은 어른과 유사하게 성장하는 반면, 뇌와 감정의 성장은 그렇지 못해 두 영역 간 불균형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사춘기 아이들은 쉽게 흥분하거나 상처받지만, 그것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조절 능력은 미약하다. 부모는 그냥 물어봤을 뿐인데 왜 화를 내느냐고 반항하기도 한다. 충동적 행동, 감정 폭발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 시한폭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갱년기를 겪는 엄마가 이러한 사춘기 자녀의 행태를 마주한다면 그야말로 불꽃 튀는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두 세대는 호르몬과 의미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처와 열등감만 남은 우리, 방법은 없을까?

“아이가 자꾸 반항하는데 도저히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요!” 오랜 상담 덕분에 친밀해진 엄마들에게 자주 듣던 얘기다.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아이가 상담실로 들어오면 여지없이 이런 말이 오간다. “엄마 때문에 돌아버리겠어요!” “쟤 때문에 미치겠어요!”
사춘기와 갱년기 갈등이 심한 경우를 보면 엄마의 인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착한 아이였는데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어릴 때의 순종적인 모습과 지금의 반항적인 모습이 대비되어 엄마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한편, 아이의 성적표가 엄마 성적표가 되는 현실에서 사춘기 아이의 방황 때문에 떨어지는 학업 성적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대학 입시의 전초전인 명문고 합격을 위해서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데 사춘기 아이는 제멋대로다. 아이를 치밀하게 관리해 성적 경쟁에서 저만치 앞서가는 엄마들을 만나면 마음을 주체하기 어렵다. 그 많은 사교육비를 마다하지 않고 어떻게든 공부 좀 시켜보려고 아이의 비위도 맞추고 가끔 혼도 내고 눈물로 호소도 했건만 엄마의 노력과 정성을 알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좌절감, 열등감만 안겨주는 아이가 너무 밉다. 부모 마음은 너덜너덜해진다.

아이의 성장통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집중하기

수습책을 찾아야 한다. 만약 부모가 사춘기 자녀들의 일탈을 호르몬으로 인한 ‘성장통’으로 받아들인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부모 속 썩이려고 작정한 아이라는 생각과 어른이 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아이라는 인식은 분명 다르다. 부모의 갱년기도 비슷한 접근이 필요하다. 화려했던 청춘이 시들어가는 것을 우울하게 지켜봐야 하는 갱년기보다 는 살아온 세월이 쌓여 보다 신중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적응하는 갱년기라는 인식이 합당하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
갱년기 변화 자체의 문제보다 엄마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역할을 강요하고 아이의 문제를 엄마 탓으로 몰아가기 때문에 유발되는 스트레스가 엄마들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럴 때 전문가의 조언보다는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가 효과적이다. 자신에게 말을 걸어보는 것이다. 일단 자신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는 아이의 보기 싫은 모습에서 벗어나야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자신의 감정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본다.

호르몬을 뛰어넘는 ‘이해와 소통’의 마법

호르몬 문제라는 의학적 관점에 머무르면 세월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대인 가정에는 사춘기 자녀와 갱년기 부모의 충돌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유대인 아이들은 사춘기에 해당하는 열세 살이 되면 성인식을 거쳐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는다. 평소 대등한 관계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춘기라 해도 갈등 요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서로를 원망하는 관계에서 부모와 아이 모두 인간적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 의지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늘 강조하지만 문제 아이도, 문제 부모도 없다. 이해와 소통의 부족이 갈등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여전히 사춘기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공부시키겠다고 사명감에 불탔지만 매일매일 좌절하는 갱년기 초보 엄마들에게 선배의 경험담을 전한다.
“사춘기는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하기 위한 꼭 필요한 정상적인 성장 발달 과정입니다. 부모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대로 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에 드는 삶보다는 함께 살아갈 또래 집단에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역할을 탐색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꿈꾸고 싶은 미래를 고민할 시간을 주며 스스로에게도 마음의 여유를 선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