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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2 Vol.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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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삶과 연계된 경제,

금융 교육이 가야 할 길

우리나라에서는 입시 경쟁이 ‘전쟁’만큼이나 치열하다. 조금이라도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학생도, 학부모도 대입 준비에 사활을 건다. 정작 실질적으로 먹고사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제 교육은 뒤로 미룬 채 말이다. 하지만 경제 능력은 꾸준함의 결과물이다. 어느 한순간에 길러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더욱이 금융 환경이 다변화되면서 경제 공부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 상황. 우리 아이들을 급변하는 금융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현명한 경제 주체로 성장하도록 만들려면 교육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이뤄져야 할까.

하지수 ‘조선에듀’ 기자

수능서 퇴출 위기? 갈 곳 잃은 경제 교육

가장 먼저 우리나라 경제 교육의 현주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학교에서 시행되는 경제 교육 비중은 크지 않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독립된 과목이 아닌 사회 과목의 일부 단원으로 경제를 다룰 뿐이다. 입시 교육을 우선시하다 보니 고등학교에서도 경제 교육보다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주요 과목 위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실정이다.
차기 교육과정의 큰 틀을 제시하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에서도 경제 교육은 뒷전으로 밀렸다. 고등학교 교과목 중 일반 선택 과목이던 경제가 진로 선택 과목으로 전환된 것이다. 수능 사회탐구 과목을 일반 선택 과목으로 한정한 현행 입시 체제가 유지된다면 경제는 수능 응시 과목에서 빠질 우려가 크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에 포함된 대입 제도 개선 방안이 적용되는 시점은 오는 2028학년도인데 2024년에야 그 내용이 확정되는 만큼 경제 과목의 수능 퇴출을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해당 과목의 응시자 수가 적은 만큼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2022학년도 수능 탐구영역에서 경제 과목을 선택한 수험생은 6,865명. 탐구영역 응시자의 1.39% 비율이었다. 17개 탐구영역 가운데 물리학Ⅱ, 화학Ⅱ, 지구과학Ⅱ에 이어 네 번째로 응시 비율이 낮았다.
직전 연도 수능에서도 경제 과목 응시자(5,076명)는 소수 비중이었다. 사회탐구영역 응시자(21만8,154명)의 2.3%를 차지하는 수치로, 전체 수능 응시자(42만1,034명)로 따지면 1.2%에 불과했다. 경제 과목의 문제가 어렵고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렵다는 인식이 학생 사이에 퍼져 있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학교에서 따로 경제 과목을 수강하거나 가정에서 제대로 경제 교육을 받지 않는 이상 어릴 적부터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경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성인이 될 공산이 크다.
한국경제교육학회는 “경제 과목은 급변하는 산업과 경제적 흐름 속에서 학생들을 미래의 사회·경제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 역량을 길러준다”면서 “학교 경제 교육의 약화는 평생에 걸친 국민의 경제적 삶을 위태롭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국가 경제의 경쟁력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경제 과목의 수능 일반 선택 과목 제외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경제 교육이 앞으로 다가올 시대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강화해야 한다” 라고 강조했다.

‘낙제점’ 받은 미래 주역들의 경제 이해력

이 같은 상황에서 학생들의 경제 지식수준이 낮게 나온 건놀라운 일도 아니다. 기획재정부의 위탁을 받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수행한 ‘2020 경제 이해력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학생들의 경제 이해도는 그야말로 ‘낙제점’ 수준이다.
조사 대상인 초·중·고교생 1만5,788명의 평균 점수는 53점가량. 학교급별로 살펴보면 초등학생의 평균 점수는 58.09점, 중학생은 49.84점, 고등학생은 51.74점에 그쳤다.
학생들은 실생활과 연관된 문제에도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것이 시장가격 변동 시 수요량 변화를 묻는 중학생 대상 질문이었다. 쌀, 참고서, 해외여행, 대중교통 가운데 ‘시장가격이 20% 상승할 때 수요량이 가장 많이 변하는 것’을 고르는 문제로 정답은 ‘해외여행’이었다. 그렇지만 정답을 맞힌 학생은 단 26%뿐이었다. 오히려 ‘쌀’이라고 답한 학생이 절반 이상인 59.7%였다.
청년층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지난해 내놓은 ‘전 국민 금융 이해력 조사’에 따르면 만18~29세의 금융 이해력 점수는 42.7점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정한 최소 점수(66.7점)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금융 이해력은 합리적이고 건전한 금융 생활을 위해 필요한 전반적 지식의 이해 정도를 말한다. 금융이해력이 높은 사람은 예상치 못한 지출 상황이 발생하거나 소득을 상실하는 등의 위기에 자력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높다.

금융 문맹 청소년을 노린 SNS 금융 사기 기승

사회 주역이 될 이들의 금융 문맹률이 높다는 건 분명 좋지 않은 신호다. 경제에 무지한 성인으로 자라 과잉 부채와 개인 파산 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 대출을 비롯해 금융 사기 피해를 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경제 지식이 부족한 청소년을 노린 SNS 금융 사기는 지금도 주변에서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른바 ‘댈입’으로 부르는 대리 입금이다.
대리 입금은 청소년에게 2~7일간 고금리로 10만 원 내외의 돈을 빌려주는 행위다. 청소년은 업자에게 대출금의 20~50%를 수고비와 수수료로 내야 하고, 기한 내 원금과 수고비를 갚지 못하면 시간당 1,000원에서 1만 원가량의 지각비를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연 이자율이 1,000% 이상인 경우도 부지기수다. 좋아하는 연예인 굿즈나 게임 아이템을 구입하려고 부모 몰래 소액을 빌렸다가 감당할 수 없는 이자 폭탄을 맞는 청소년이 허다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자들은 원금과 이자 상환이 늦을 경우 청소년 채무자에게 전화번호와 집 주소, 다니는 학교 등 개인 정보를 SNS에 유출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급기야 돈을 갚기 위해 청소년 채무자가 다른 친구의 돈을 갈취하는 식의 2차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심지어 용돈벌이를 위해 대리 입금 업자로 나서 친구의 돈을 갈취하는 청소년도 있다”라며 “금융과 법률 지식이 부족한 청소년이라 큰 피해가 우려된다”라고 했다.

교과서는 실생활에 도움 될 만한 내용 위주여야

상황을 개선하려면 일단 초·중·고교에서의 경제 교육 시수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발달 단계에 따른 맞춤형 교육을 펼치는 것은 그다음이다. 이때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서 통합 경제 교육 플랫폼을 구축해 교사들이 참고할 만한 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교사와 학교 재량에 전적으로 맡기면 수업의 질에 차이가 발생하고, 이는 곧 경제 지식 격차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 교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통합 플랫폼을 통해 교사들의 고충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전망이다. KDI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60개 학교에서 근무하는 경제 교육 담당 교사 10명 중 8명(82.7%)이 수업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경제 교육에 필요한 다양한 교수법을 숙지하지 못했거나 경제학 이론에 대한 이해도 부족, 자료 수집과 선택의 어려움 등 때문이다.
또 경제 교육 원스톱 플랫폼에서 저작권 침해 우려 없이 사용 가능한 공공·민간 자료를 보급하고 교사들이 직접 개발한 자료를 다른 동료와 공유하도록 이끌 수도 있다.
여기에 수업의 중심이 될 경제 교과서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단순 나열식으로 이론을 설명하는 데서 벗어나 실생활과 연계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생생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전경련은 지난해 9월 내놓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내용 및 집필 기준 평가’ 보고서에서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속 금융 정보의 설명이 추상적인 데다 실생활에 도움을 줄 만한 내용의 개념 설명도 미흡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금융 상품의 내용, 노후 대비 연금, 보이스피싱, 부동산 대출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추가해 학생들이 청소년기에 건전한 금융 생활을 위한 기초 지식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놀듯이 배워야 하는 ‘생존’ 경제 공부

실효성 있는 경제 교육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재미’와 ‘지속성’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10대 트렌드에 관심을 가져야 수요에 맞는 교육이 가능하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현재 상황에 가장 필요한 정보를 시의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과정은 재밌어야 한다. 학습 성취도는 학생들의 흥미도에 크게 좌지우지된다. 평소 학생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경제 과목의 특성상 재미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대입에 성적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관심도와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는 고등학생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한다.” 20년 가까이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의 말이다.
생존과 직결된 경제 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경제 능력은 한순간에 길러지는 게 아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부터 꾸준히 경험을 쌓으며 키워나가야 한다. 학생 개개인을 독립적인 경제 주체로 성장시키는 일, 공교육의 또 다른 중요 과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