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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3 Vol.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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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학교

창의성은 머리가 아니라
행동에서 나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조윤경 교수
인공지능이 화두가 되면서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어떻게’ 창의성을 기를 수 있을지 알려주는 이는 드물다. 시인들의 상상력이 집약된 초현실주의 시를 전공한 불문학자이자 창의성 전문가로 「창의행동력」을 저술한 조윤경 교수는 “창조적 사고는 행동에서 나온다”라고 강조한다.

정라희 / 사진 이용기

모범생을 양산하는 교육 현실 속 창의성 교육

조윤경 교수에게 창의성은 익숙한 개념이다. 색다른 상상력이 언어 속에 겹겹이 펼쳐진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를 공부하면서 문학을 통한 창의성을 오래도록 고민해 온 까닭이다.
“처음에는 문학적 상상력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언어 실험에 담긴 문학적 기법은 결국 창의성의 기법이기도 하거든요.”
불문학자로서 연구 영역에 있던 창의성이 새로운 교육적 시도로 이어진 것은 2009년부터다. 때마침 이화여대에서 대학 차원에서 주제 통합형 교양 강의를 도입했고, 그 과정에서 조윤경 교수는 ‘21세기 문화와 상상력’ 수업을 기획·개발했다. 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인문학으로 현시대의 흐름을 살피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활동을 했다. 이는 교양 강의지만 재학 중 반드시 들어야 하는 필수 강의로, 인문대생은 물론 미대생과 공대생 등 다양한 전공을 하는 학생들이 어우러져 실험적 학습을 해보는 수업이었다.
“지금 아주 유명하지 않더라도 각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인물을 발굴해 인터뷰하고, 그분들의 상상력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살펴보는 프로젝트 수업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각자 인맥과 역량을 발휘해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을 인터뷰했어요.”
당시 경험을 통해 대학 안에서 창의 교육의 가능성을 본 조윤경 교수는 ‘창조와 상상의 기술’이라는 교양 강의를 새롭게 개발했다. 수백 명이 모인 대형 강의에서 색다른 조합의 결과물이 쏟아지면서, 그도 학생들도 특별한 활력을 얻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 교사들과 손잡고 초·중·고등학교 창의·융합 교육 프로그램과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창의 교육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알 수 없는 갈증이 있었다. 다양한 창의성 이론과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일이 아이들의 창의성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대학에서 창의성 관련 강의를 하면서도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았어요. 대다수 학생이 무척 성실하고 정해진 규칙을 잘 따르지만, 그 이상을 벗어나는 시도는 잘 하지 않았거든요. 한 번은 이 시대의 의미 있는 문화 창조자를 인터뷰하는 과제를 낸 적이 있어요. 한 팀이 배관으로 공공미술 작품을 만드는 분을 만나고 왔는데, 인터뷰 내용 중에 ‘자신의 작품은 만질 수 있으며, 계상초등학교 운동장에 놀이기구처럼 전시되어 있다’는 대목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작 그 이야기를 듣고도 그 학교에 가서 작품을 만져볼 생각을 한 학생은 없었어요. 거기까지는 과제 범위에 없었기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거죠. 그만큼 ‘진짜 궁금’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샛길을 존중하는 교육, 책이 아닌 몸으로 익히는 배움

한국과 프랑스 교육에 익숙했던 조윤경 교수에게 때마침 미국 교육을 경험할 기회가 왔다. 2015년 연구년을 맞은 그에게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1년간 머물면서 캘리포니아 공교육을 취재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재단 홈페이지 내 블로그에 연재했다.
“아이가 다니던 캘리포니아의 공립초등학교는 학부모의 자발적 참여를 환영하는 곳이었습니다. 덕분에 자원봉사자로서 수업을 가까이에서 참관할 수 있었죠. 이전에도 한국에 핀란드 교육, 프랑스 교육 붐이 일어 취재한 적이 있어요. 당시 살펴본 핀란드 교육에 대한 인상은 공간에서 온 창의성이었어요. 한편으로는 환경과 관련한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갔습니다. 프랑스 교육은 제가 직접 경험하기도 했지만, 사실 한국과 비슷한 면이 많아요. 대신 프랑스의 대입 시험인 ‘바칼로레아’는 자기 생각을 펼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에 가보니 미국이 교육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아무 프로그램이 없어 보였습니다. 한참 후에 생각해 보니 이보다 더 교육의 고수들이 없더라고요.”
교과서 하나 펴지 않고, 교사가 어디선가 가져온 암석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전에 프로젝트 설계를 하는 한국의 교육 방식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처음에는 프로젝트 설계를 하지 않는 건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드러나지 않았을 뿐 모든 과정에 녹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설령 다른 길로 새더라도 그 길로 함께 가주죠. 만약 진도를 맞추는 수업이었다면 딴 길로 새는 아이들이 생길 때마다 선생님들도 초조함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교사가 아이들을 양 떼처럼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들판에서 같이 하늘을 보고 풀도 뜯으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죠. 예를 들어 역사 수업을 하면 역사적 인물이 되어 연기도 해보고, 역사적 현장에 직접 가보기도 하고요.”
특히 기억에 남은 수업은 연극이었다. 배우가 직접 지도하는 연극 수업은 정해진 대본을 전혀 보지 않았다. 얼핏 아이들과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사자가 되기도 하고 바위가 되기도 하면서 움직임을 탐구하고 캐릭터를 표현하는 법을 체득해 나갔다. 이 모든 과정은 공연을 올릴 때 연출로 적용됐다. 일요일이면 학부모들도 함께 공연 소품을 만들었다. 지루한 반복이 아닌 성장과 진화의 과정으로 공연을 만들어 간 셈이다.

궁금하면 바로 움직이고 몸으로 새로움을 찾는 ‘창의행동력’

조윤경 교수는 1년 동안 캘리포니아 공립초등학교 수업을 세세하게 관찰한 결과를 2017년 「창의행동력」이라는 책으로 묶었다. 그가 새롭게 고안한 개념인 ‘창의행동력’은 “행동을 통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 새로운 방법을 발견해 자기만의 창의적 결과물을 완성하는 힘”을 가리킨다. ‘사고를 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다르게’ 하면 생각이 저절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은 창의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틀에 박힌 사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깊은 근원을 살펴보면 틀에 박힌 행동이 생각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창의행동력은 반드시 자기 머리가 아니더라도 현장에 가보고 동료와 대화하고 전문가에게 물어보면서 창의성을 더 크게 키울 수 있게 합니다. 결국 창의성은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얼마나 자기 머릿속에 있느냐가 아니라 창의행동력이 있느냐에 달린 것이죠.”
조윤경 교수는 “창의행동력을 키우려면 창의성을 지식 습득의 도구나 목표 자체로 여기지 말고 과정을 중시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그는 세 가지 행동 지침을 직접 제안하기도 했다.
“서핑의 고장 캘리포니아에서는 사계절 내내 파도타기를 배우거나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요, 잘 살펴보면 대략 세 가지 단계를 거칩니다. 처음에는 보드에 엎드려 양손을 젓는 패들링(paddling)을 하면서 바다로 나아갑니다. 다음에는 밀려드는 파도를 응시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파도를 잡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그 파도에 올라타지요. 이 세 단계는 창의행동력의 실천지침인 ‘행동호기심’, ‘행동발견력’, ‘행동결정력’과 비슷한 점이 있어요.”
흥미로운 질문과 이야기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술 수업 몸으로 사물이 되어보는 연극활동 딸과 함께한 LA카운티뮤지엄 견학
창의행동력의 1단계인 ‘행동호기심’은 궁금증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넘어, 직접 정보를 찾아보거나 실험해 보고, 전문가의 메일 주소를 알아내 메일을 보내는 등 호기심을 행동으로 연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2단계인 ‘행동발견력’은 일상 가운데 문득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나 현상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빠르게 파악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3단계인 ‘행동결정력’은 골대에 골을 집어넣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결과물을 끝까지 완성한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 내는 창의 인재로 자랄 수 있다.
“저는 ‘표류’라는 개념을 좋아합니다. 적어도 창의성 교육만큼은 A에서 B로 직진하는 지름길을 설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파도에서 허우적댄 경험이 있어야 더 큰 파도에도 올라탈 수 있듯이, 오히려 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을 지나갈 때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죠.
표류는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와 교사에게도 필요하다. 오히려 어른들이 먼저 지름길을 알려주지 못해 안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른들이 표류의 과정을 참지 못하면 아이들도 당연히 참기 어려워요. 헤매는 과정을 지나면 반드시 자신만의 결과가 나온다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상용화되면서 답을 빠르게 얻고자 하는 욕구는 더욱더 커졌다. 조윤경 교수는 이러한 시기일수록 기술에 종속되기보다 “기술을 창의적인 도구로 활용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에서 인간이 우세할 방법은 결국 행동에 있지 않을까. 새삼 창의행동력의 의미가 마음에 더욱 깊이 새겨진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