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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23 Vol.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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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이모작

우리 문화를 나누는 봉사의 즐거움
"사계절 아름다운 궁의 감동을 전합니다."
(사)한국의재발견 대표 이향우 회원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강하다. 부모가 그렇고, 군인이 그러하며, 교사도 마찬가지다. 또 문화재지킴이가 그러하다. 무언가 지켜낸다는 사명은 사람이 살아갈 힘을 얻게 하고, 또 강하게 만든다. (사)한국의재발견(이하 한국의재발견) 대표이자 ‘우리궁궐지킴이’인 이향우 회원의 힘 또한 사람들이 궁궐을 비롯한 한국의 문화유산을 다시 보게 하고, 거듭 찾게 할 만큼 진하고 강하다.

이성미 / 사진 김수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학생이 공부하듯 문화를 공부하다

더 이상 궁궐에서 공간의 옛 주인을 만날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오늘날 ‘주인’으로서 궁궐을 찾는다. 문화유산의 주인은 향유하고 지키는 사람인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주인이라는 자부심은 궁궐을 더욱더 특별하게 느끼게 한다. ‘우리궁궐지킴이’ 이향우 회원이 전수하는 궁궐 여행 꿀팁도 이와 같다.
“궁궐을 감상할 때는 손님이 되어 들여다보는 것보다 주인이 되어 내다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옛 주인의 눈높이에 내 시선을 맞춰보세요. 그들의 눈에 비쳤을 풍경을 똑같은 각도에서 바라보세요. 그럼 궁궐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궁궐지킴이가 되기 전까지 이향우 회원은 교사이자 조각가로 활동했다. 조각가는 작업에 앞서 재료를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며 특성을 파악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향우 회원은 교사로서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학생 한 명 한 명 세심히 살피고 헤아리며 그들의 마음을 바로 알고자 했다. 노랗게 염색한 채 등교한 학생을 다그치기 전에 “꼭 밀밭 같아. 멋지다” 하며 감탄하고, 가출하고 돌아온 학생에게도 “춥지는 않았니?” 하고 먼저 물었다. 1999년 서울 관악고등학교에서 명예퇴직할 때까지 그 섬세한 작업은 계속됐다.
퇴직 후 교사에서 조각가로 삶의 무게중심을 옮기던 이향우 회원에게 이듬해 새롭게 어루만질 대상이 생겼다. 우리 문화유산이였다.
“퇴직 이듬해 신문에서 ‘문화재지킴이 교육’과 관련한 광고를 봤어요. 우리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을 호소하는 시기였거든요. 겨레문화답사연합(현 한국의재발견)이 출범한 지 한두 해쯤 지났을 때였고요. 대학교에서 한국미술사를 공부했고, 조각가로서 우리 문화에 관심도 컸기 때문인지 자꾸만 광고로 눈길이 가더라고요. 결국 한국의재발견에서 본격적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조각가가 재료를 탐구하듯, 교사가 학생을 살피듯, 이향우 회원은 우리 문화유산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지식에 앞서 마음을 먼저 주던 것을 문화유산을 대하는 데에도 고스란히 옮겨온 것이다. 소중히 다루되 깊이 연구했다. 문화재지킴이는 문화유산에 관한 지식만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지식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공부해야 하지만 더 큰 목적은 감동을 전하는 것에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또 먼저 감동한 덕분에 오래지 않아 그의 해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순수한 열정과 사명감이 이끈 우리궁궐지킴이

이향우 회원이 몸담고 있는 한국의재발견은 우리 문화유산을 바로 알고, 이를 시민과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에게 전달하는 비영리사단법인이다. 현재 700여 명의 회원들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조선의 5대 궁궐과 종묘 등을 중심으로 문화해설 봉사를 하는 만큼 한국의재발견 소속 문화재지킴이를 ‘우리궁궐지킴이’라고 부른다.
우리궁궐지킴이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교육을 이수하고, 일정액의 회비도 내야 한다. 그 때문에 “활동에 대한 보수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돈을 내고 봉사를 한다니!”하고 놀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향우 회원은 “우리 문화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사명이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 함께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우리궁궐지킴이로 첫발을 떼는 사람에게도 그는 “느리게 천천히 게으르게 갑시다”라고 조언한다. 느리게 걸어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궁궐처럼, 봉사 역시 빠르게 성과를 내기보다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향우 회원이 걸어온 길을 살펴봐도 그는 느리지만 참 많은 곳을 누볐다. 먼저 걸었고, 또 성실했다. 2013년부터 이향우 회원은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경복궁」,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창덕궁」 등의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시리즈와 2021년 「궁궐로 떠나는 문양여행」 등의 책을 펴냈다. 책 속 그림도 모두 이향우 회원이 손수 그렸다. 책에는 치열하게 연구하고 공부하고 또 직접 보고 걷고 느낀 흔적이 가득하다. 문화재지킴이로서 전국으로 강연도 다닌다. 그리고 문화재 해설, 강의, 집필 등의 목적은 모두 한 점으로 귀결된다. 문화유산에 대한 ‘감동’을 전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향우 회원이 느끼기에 우리 궁궐은 알면 알수록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자연스러우며 인간적인 것이 우리 궁궐의 특징이다. 궁궐은 왕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오로지 왕을 생각하며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다. 지붕과 담장 너머 보이는 산세, 자연과의 조화를 먼저 생각했다. 이런 공간적 특징은 창덕궁 궐내각사에서 명확히 볼 수 있다. 이향우 회원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궐내각사(闕內各司)는 왕과 왕실을 보좌하던 궐내 관청, 오늘날로 따지면 사무실이 모여 있던 곳이다. ‘구중심처(九重深處)’라는 말이 있듯 과거 궁궐은 전각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는데,창덕궁 궐내각사를 통해 과거 궁궐의 밀도를 짐작할 수 있다. 산을 감상하듯 전각의 지붕 선이 겹쳐 있는 것을 보는것도, 담장으로 난 작은 문을 통해 지나다니던 옛사람들을 상상하는 것도 궐내각사만의 별미다.
궁궐을 인간적이라 말하는 이유는 그 안에 백성을 생각하는 임금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궁궐의 정전을 오르는 계단에는 봉황 문양이 새겨져 있다. 봉황은 태평성대에만 나타나고, 역병이 돌거나 재앙이 닥쳐 세상이 어지러우면 사라진다고 하는 영물이다. 따라서 임금은 늘 봉황 문양을 보고 몸과 마음을 바로잡으며 성군이 되고자 노력했다.
또 궁궐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이나 낮이나, 올 때마다 달리 느껴지는 매력이 있다. 맑으면 맑은 대로 거닐며 즐기기에 좋고, 비가 오면 궁궐이 품은 색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좋고, 계절이 다르면 그맘때 고유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좋다. 따라서 시간에 쫓겨 후다닥 둘러보기보다는 오늘의 궁궐을 천천히 감상하고, 언제든 다시 들르길 추천한다.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행복

지금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 강국이 되었지만, 이향우 회원이 처음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역사와 문화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볼거리가 없다”라며 한국 문화를 폄훼하는 사람을 만날 때는 ‘마음을 바꿔주겠노라’ 하는 오기가 일기도 했다.
“예전에는 우리가 궁궐과 조선왕조에 관해 설명하면 ‘왕조가 부패해 스스로 망한 것’, ‘부끄러운 역사’라며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외국인 중에는 우리나라를 ‘중국과 일본사이에 있는 나라’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런것을 보면 참 마음이 아팠어요. 궁궐에 대해 더 깊게 연구하고, 늦게나마 영어를 배운 것도 그 때문이에요.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를 제대로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지금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한국인은 한국인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우리 궁궐과 왕릉에 자부심을 갖고, 외국인은 대한민국을 ‘문화 강국’, ‘한류의 나라’로 인정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가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한 건 아니구나’, ‘노력한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은 문화를 만들고 문화는 사람을 만든다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인간은 문화를 먹고 성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재발견’이라는 이름대로 이향우 회원과 우리궁궐지킴이들은 한국을 다시 보게 하는 일을 통해 앞으로도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바르게 먹고 자라도록 도울 것이다.
“인간은 문화로 만들어집니다. 후대는 우리가 지키고 물려준 문화로 만들어질 테고요. 우리가 문화를 아끼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문화유산을 섬세하게 돌보고 후대에 물려주세요. 그럼 우리 민족은 대대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걷고 말할 힘이 남아 있는 한 문화유산을 바로 알리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이향우 회원은 “문화재지킴이와 우리궁궐지킴이 중에도 교사가 많다”라며 “탐구력과 전달력이 뛰어나 교직원들에게 딱 맞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생물교사는 나무 박사가 되고, 미술교사는 문양을 탐닉하는 등 관심 분야를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후대에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물려준다는 자부심은 오직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다. 이향우 회원은 오늘도 자부심을 함께 품을 동료를, 느리고 천천히 걸어갈 이들을 기다린다.
사람은 문화를 만들고, 문화는 사람을 만든다. 어떤 문화 속에서 성장했는가? 오늘날 이러한 물음 앞에서 우리는 어디서든 당당히 ‘한국’이라는 단어를 꺼내 보일 수 있다. 더 많은 이가 한국의 문화유산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케이 로고 이미지
'인생 이모작'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재능을 기부하며 역동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의미 있는 인생 이모작을 실현하고 있는 회원님을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The-K 매거진」 지면에 담아 많은 회원님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를 전해드리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 보내실 곳 : 「The-K 매거진」 편집실 (thekmagazine@ktcu.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