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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23 Vol.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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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곱하기

키워드로 읽는 시사


바쁘다, 바빠! #미라클모닝 #오운완 #블챌
‘갓생(GOD生)살기’에 푹 빠진
MZ세대 신문화

SNS 게시물마다 달리는 해시태그인 #갓생살기 #미라클모닝 #오운완은 부지런한 자신의 삶을 알리는 MZ세대의 암호와도 같다. 이런 생활은 소비습관에서도 나타난다. 핀테크업체 뱅크샐러드는 2019년부터 2021년 6월까지 이용자 지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비대면 자기 계발과 취미플랫폼’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보고를 발표했다. 부지런하고 모범이 되는 삶을 살며 타인보다 앞서 나가는 이들, 스스로를 ‘갓생러’라고 부르는 MZ세대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 알아본다.

김고금평 머니투데이 기자

플렉스, 욜로 다음은 갓생!

한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지배한 단어 중 하나는 ‘플렉스(flex)’였다. 명품이나 희귀품을 찍어 올려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뽐내기’ 열풍 키워드인 셈. 이와 함께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 세대)에게 어필한 또 하나의 단어가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였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 충분히 걸을 수 있고 심장이 제대로 뛸 때 마음껏 여행하고 즐기라는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화두였다. 젊었을 때 즐거움을 포기하고 고생하며 노년을 대비하는 기성세대의 해묵은 절약 습관과 철학은 더 이상 쓸모없는 가치관으로 여겨졌다.
코로나19 시대의 도래, 부의 대물림을 통한 빈부 격차 심화, 금리인상 여파에 따른 재정 긴축 등이 잇따라 닥치면서 MZ세대의 가치관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가장 타오르는 청춘의 정점에 모든 것을 불태우기보다 하루하루를 부지런하고 알차게 살아내는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갓생’ 살기다.
갓생은 신을 의미하는 영어 ‘갓(god)’과 인생이란 뜻의 한자 ‘생(生)’의 오묘한 합성어로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삶을 뜻하는 신조어다. 이들은 거대한 목표와 큰 성취보다 작은 일이어도 꾸준히 실천하며 성취감을 느낄수 있는 삶을 목표로 한다. 하루하루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아내는 삶인 ‘갓생’ 살기가 어느새 MZ세대의 삶에 깊숙이 침투했다. 얼핏 보면 반세기 전 기성세대가 걸어온 길의 재연 같기도 하다.
직장인 이 모(28) 씨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부터 마신다. 그전에는 하지 않던 일이지만, 갓생살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실천에 옮긴 일이다. 출근 전까지 영어 단어 10개 외우기, 퇴근 후 팔굽혀펴기 30개 하기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잊지 않고 완수하려고 한다.
이러한 목표가 일회성이라거나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도록 ‘돈을 거는’ 모험도 서슴지 않는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커뮤니티에 수십만 원을 예치금으로 넣고 매일 인증한다. 커뮤니티에서 2주가량 활동을 인증하면 예치금을 돌려받을뿐 아니라 추가 상금도 받는다. 무엇보다 자신이 무엇을 이뤄냈다는 성취감,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에서 갓생의 의미를 찾는다.

인증 욕구와 코로나19 확산이 결합된 신종 문화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활동이 줄고 재택근무가 일상화하면서 갓생살기 열풍도 급격히 번졌다. 타인과의 접촉·대화·활동 제한은 되레 자신에게 집중하는 분위기로 전환되고 이를 빌미로 그간 ‘나’에게 투자하고 싶었고 결심했던 일들을 하루, 일주일, 한 달 단위로 실천하며 만족감을 높이게 된 것이다.
갓생살기는 위대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쉽게 말하면 ‘습관형성 챌린지’인 셈이다. 더 쉽게 요약하면 초등학생 때 스케치북에 원 시계를 그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엇을 한다는 방학 계획표를 짜는 것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 MZ세대는 짧은 시간이라도 효율적이고 의미 있게 소비한다는 점과 SNS 등을 통해 ‘인증’하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점이다.
각종 인터넷 블로그와 카페에서도 10·20대들의 갓생살기와 관련한 콘텐츠들이 다수 생산되고 있다. 네이버에 따르면 2021년 취미·일반·원예 카테고리의 카페 내 일간 게시글은 2019년 대비 33% 증가했고 다이어트·운동 카테고리도 19% 증가했다. 네이버 카페의 주간 활성 사용자(WAU)수도 2019년 1,800만 명, 2020년 1,900만 명, 2021년 2,100만 명으로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기술로 뒷받침하는 갓생살기

MZ세대의 갓생살기 참여가 늘면서 관련 정보기술(IT) 서비스도 늘었다. ‘챌린저스’는 이용자 스스로 돈을 걸고 매일 미션을 수행한 뒤 인증하며 건강한 습관을 형성하도록 돕는 어플이다. 서비스 시작 3년 만에 누적 거래액이 1,900억원을 넘어섰다. 챌린지 참가도 2021년 한 해 동안 133% 증가하며 누적 380만 건을 넘어섰다. 이들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미래의 목표를 향해 오늘을 고통스럽게 희생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 오늘 당장의 확실한 성취감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이고, 핵심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감, 일명 ‘소확성’이다.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블챌(블로그 챌린지)’, ‘오하운(오늘 하루 운동)’, ‘오하명(오늘 하루 명상)’ 같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쉽게 이룰 수 있는 계획들이 MZ세대의 갓생살기 프로젝트에 포함돼 있다.
전문가들은 “기성세대의 성실한 습관과 다른 MZ세대의 특징은 그들이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는 것이 아닌, 오늘 하루의 만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 있다”며 “보상과 인증을 통한 놀이 개념으로 진지하기보다 재미있게 보려는 성향이 강하다”라고 진단했다.
기성세대의 ‘노오력’은 결혼, 출산, 집 등 단계별 목표를 향해 ‘나의 희생’을 요구했다면, MZ 세대의 ‘노력’은 의지로만 해결되지 않는 미래의 문제에 고민하기 보다 오로지 ‘나의 전념’을 위한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갓생살기가 욜로나 플렉스처럼 즉물적 욕망에 사로잡히는 소비 패턴에는 거리를 두지만, 내일보다 오늘에 주목하는 속성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수십 년 전 자기 계발 열풍과 다른 점이 있다면 관점이 ‘타인’이 아닌 ‘나’에 있다는 것. 과거에는 모두 성공한 이들의 공식과 문법을 따르려는 무조건적 습득이 우선이었다. ‘미라클 모닝’으로 번진 아침형 인간은 누구나 지향해야 할 삶의 방식으로 수렴됐고 운동, 음식, 공부 등 생활의 모든 영역 역시 잘하는 이들의 선례가 일종의 규칙이었다.
그런 방식은 지금과 같은 ‘나노 사회’에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하나의 운동에도 여러 방법과 공식이 존재하고 각자의 체형에 맞는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도 마련된다. 오로지 ‘나’의 관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만 고민하면 된다. 기업들도 MZ세대의 갓생살기 코드를 빠르게 읽고 있다. 네이버는 주 1회 월 4회 글을 쓰는 ‘주간 일기 챌린지’를, GS25는 팝업 스토어 ‘갓생 챌린지’를 통해 갓생 세대를 만난다. 드로잉, 공예, 운동, 재테크, 어학 등 자기 계발을 원하는 이들에겐 다양한 구독 서비스 플랫폼이 준비돼 있다.

갓생살기는 자존감을 높이는 비결

갓생은 말 그대로 ‘신이 사는 삶’이다. 그런 삶이 가능한지를 따지기 전에, 그런 삶을 지향하는 태도를 보면서 이를 실천해 가는 이들이 얼마나 성실하고 생산적인 삶을 원하는지 그 욕망을 읽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갓생살기는 자기의, 자기에 의한, 자기를 위한 욕망의 실현이지만 결국 자존감을 높이는 행위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혼자 열심히 해서 다른 사람을 이기는 고독 속 무한경쟁의 늪에 허우적거리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을 목표로 설정하고, 친구와 계획을 공유한 뒤, 서로 인증하고 응원하는 문화를 향유함으로써 상생과 소통의 연대를 확장하는 길을 제시해 주는 효과가 작지 않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