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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인사이드

새로운 음식을 맛보듯
미술 작품도 여러 번 음미해 보세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양정무 교수
이강환 교수
미술사란 말 그대로 미술의 역사(history of art)다. 이를 풀면, 미술을 주인공으로 하는 우리의 역사다. 미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고 회화, 조각, 건축 등 범위 또한 방대하다. 철학, 심리학, 과학 등의 학문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혹자는 미술사를 ‘인문학의 꽃’이라고 부른다. 양정무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지런히 사람들에게 그 꽃을 선물하는 사람이다. 난생처음 미술의 참맛을 알게 해주는 미술사 가이드, 양정무 교수를 만났다.

글 이성미 / 사진 성민하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유익한 미술사
‘자퇴 브이로그’ 들어보셨나요?

인류는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손에 무언가를 쥐면서부터, 아마도 인류는 본능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문자의 역사는 고작 5,000년 정도지만 그림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다.
양정무 교수의 역사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다락방에서 시작됐다. 부엌 위 다락방에 올라가 백과사전 속 삽화를 보고 흥미를 느끼면서부터 미술사학자로서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그리는 것보다 미술에 담긴 이야기를 탐구하는 데 더 큰 재미를 느낀 양정무 교수는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거쳐, 미술사 분야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학교인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서양미술사를 공부했다.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그는 학교 가까이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와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 등을 자주 찾아 전시된 명화를 보고,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사람들과 토론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양정무 교수는 미술관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이야기한 경험을 말과 글로 옮겼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인 동시에 작가, 에세이스트, 강연자,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는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피렌체』, 『상인과 미술』, 『그림값의 비밀』, 『벌거벗은 미술관』 등이 있다.
이 중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는 원시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미술역사를 총 10권으로 풀어내는 방대한 작업이다. 현재는 르네상스의 완성과 종교개혁 당시의 미술을 설명하는 7권까지 출간되었다. 책은 단순히 누가 언제 어디서 그렸느냐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림 속 인물들이 왜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지, 벽화가 당시 그 장소에 그려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등 사람들이 실제로 궁금해할 법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책 제목을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로 삼은 이유도 실제로 그의 책을 통해 난생처음 미술에 대한 호기심을 품을 수 있는 동시에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술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미술이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 전체를 하나의 미술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제품 디자인부터 건축, 조형 등 미술이 없는 곳이 없다. 따라서 미술과 그 역사를 안다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배경지식이 많아지고 삶의 질도 높아질 수 있다.
자기 능력을 키우고 영역을 확장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미술은 그 자체로 열린 텍스트다. 나의 관심사와 삶의 태도에 따라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도, 시나리오나 소설의 모티브로 삼을 수도 있다. 달리 해석하면, 학교에서도 좋은 수업 재료가 될 수 있다.
“오래전 한국과학창의재단과 협업해 교과과정 개발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유명 초상화 열 점을 두고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나열하라는 과제를 냈죠. 그랬더니 어떤 학생은 인물의 나이에 따라 배열하고, 어떤 학생은 헤어 스타일에 따라 그룹을 만들더군요. 관심 분야에 따라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이죠. 이처럼 어떤 정보에 대해 선별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이 바로 큐레이션(curation)입니 다. 그야말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능력이죠. 미술관에서도 우리는 작품 배열, 눈높이, 캡션, 전시 배경 색상, 빛의 밝기 등을 통해 큐레이터의 의도를 파악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재미를 느끼고 큐레이션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미술과 친해지고, 맛있게 즐기는 방법

어떻게 하면 우리는 미술과 친해질 수 있을까? 먼저, 호기심을 품자. 미술을 친해지고 싶은 대상, 궁금한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데 특히 필요한 자세다. 현대미술은 새롭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새로운 시도였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작품이 동시대에는 “저게 무슨 예술이야?”라고 비난받곤 한다. 따라서 예술을 바라볼 때는 ‘저런 시도도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으로 우리의 위치를 작가가 선 자리로 옮겨볼 필요가 있다. 마음의 온도를 바꾸고 화가와 공감하려고 한다면, 분명 미술이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다음은 나와 맞는 작가와 작품을 찾을 차례다. 인상파에 끌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입체파에 열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인상파 안에서도 고흐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 모네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은 어떤 작가, 어떤 작품에 매료되는지 찾아보자. 좋아하는 작가의 출신 국가와 생애, 역사적 배경 등을 탐구해 보는 것도 좋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여러 번 음미(吟味)해 보자. “우리가 새로운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최소 대여섯 번은 먹어봐야 한다고 합니다. 한두 번 맛보고 ‘나랑 맞지 않다’, ‘낯설다’라고 밀어낸다면 영영 그 미각을 개발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거예요. 미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의 새로운 시도를 응원하는 것을 넘어 여러 번 접하고 또 탐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미술과 친해지는 것은 물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양정무 교수가 외국에서 생활하며 가장 놀란 점은 사람들이 어디서나 자유롭게 토론한다는 것이었다. 미술관도 예외가 아니었다. 작품 앞에서 소규모 그룹을 이뤄 각자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었다. 유치원생, 초등학교 저학년생도 연령대에 맞는 언어로 감상을 하며 자연스레 미술과 친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생각할 틈도 없이 빠르게 관람을 마치는 사람이 많다. 미술관을 토론하고 배우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선 국가와 예술 관련 기관이 함께 협력할 필요가 있다. 굳이 무언가 배워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을 하나의 놀이터처럼 친근히 여기게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미술관은 정말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시민사회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문화 향유 기관이고요. 미술관과 친해지고 나면 작품과 친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입니다. 유물 하나하나가 지닌 역사성, 작품이 가진 무수한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부모님, 선생님께서 도와주세요. 이들 공간을 단순히 ‘전시’하는 곳이 아닌 ‘교육’하는 곳으로 이용해 주십시오. 또 미술관에서도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주세요.”
끝으로 양정무 교수는 “미술 교육이 더 확장되길 바란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그리고 색칠하고 만들고 그 능력을 평가하는데 그치지 않고, 감상 교육에도 더 힘을 쏟자는 것이다. 학교 밖 박물관, 미술관에서 현장학습이 이루어진다면 더욱 좋다. 성인이 되어서도 미술관 가이드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 집 근처 미술관조차 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미술의 참맛을 모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술을 우리의 식탁에 올려두고 여러 번 음미해보자. 분명 나의 삶이 더 맛있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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