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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돋보기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클래식 음악
연주와 교육의 조화로운 이중주를 지향하다

미국 인디애나대 음대 이경선 교수
미국 인디애나대 음대 이경선 교수
미국 인디애나대 음대 이경선 교수
세계 곳곳에서 한국이 주목받고 있다. K-드라마, K-팝을 넘어 이제는 K-클래식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 연주자들이 세계 유수 콩쿠르를 석권하고, 국제 무대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으면서 한국의 음악교육에 관심을 두는 이들도 생겼다. 이경선 교수는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자 교육자로서 후학을 양성해왔다. 더욱이 해외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다양한 교육 환경을 접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이경선 교수를 만나 그가 체감한 국내외 예술교육에 대해 들었다.

글 정라희 / 사진 이용기

연주와 교육, 음악가 이경선의 두 가지 축

‘탁월한 색조의 강렬함과 표현력’, ‘유동성과 우아함’, ‘선명도, 투명감 그리고 세련된 기술력’….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에게 쏟아진 비평가들의 찬사는 이렇다. 1991년 한국인 최초로 워싱턴 국제 콩쿠르 1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등 숱한 국제 무대에서 연이어 입상하며 한국 연주자의 음악적 역량을 일찍이 전 세계에 알려온 그다. 미국 유학 시절, ‘워싱턴 포스트’가 “정경화 이후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연주가”라고 평할 만큼 뛰어난 연주 실력을 선보여온 이경선 교수. 그런 이경선 교수에게 교육은 연주와 함께 그가 평생 이루어갈 사명이다. 실제로 그는 연주자와 교육자의 역할을 균형 있게 소화하는 음악가로 정평이 나 있다.
미국 오벌린 음대와 휴스턴 음대 그리고 모교인 서울대 음대에서 교수로 재직해 온 그는 2023년 미국 인디애나대 음대(Jacobs School of Music)로 자리를 옮겼다.
“연주와 함께 교육을 병행하면서 음악가로서 배우는 것이 참 많아요. 한국의 음악 인재들이 모이는 서울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것도 보람 있었지만, 한국 대학에는 정년이 있어요. 정년까지 7년이 남았는데 저는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미국 인디애나대 음대에서 먼저 교수직을 제안했고, 이후 종신 재직권을 약속받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 중동부를 대표하는 고등 음악교육 기관인 인디애나대 음대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과 미리암 프리드를 비롯해 소프라노 실비아 맥네어, 지휘자 레너드 슬래트킨 등 유명 음악가들을 배출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긴골드와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 등 전설적인 음악가들이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이전에도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했지만, 안정적인 한국 생활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 적응하는 일은 여전히 도전에 가깝다.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는 99세로 작고할 때까지 인디애나대 음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이경선 교수는 음악가로서 연주하는 일도 매력적이지만 후학을 가르치는 일도 그 이상으로 매력 있다고 전한다.

연주와 교육, 음악가 이경선의 두 가지 축
‘홀로’ 집중하고 ‘함께’ 성장하는 여정

이경선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이며 일찌감치 음악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가 나고 자란 지방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요즘이야 온라인으로 세계적 음악가의 연주를 듣고 악보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지만, 그때는 LP 한 장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 집 형편으로는 서울에 오가며 레슨을 받을 여력이 안 되었어요. 서울예고에 진학 후 더 많은 것을 깨우쳤죠. 독학하듯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찾았던 오랜 경험과 시간이 있어 학생들에게 좀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요.”
연주자로서는 물론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핵심도 ‘악보를 스스로 읽어내는 힘’에 있다. 악보 읽는 법은 물론 손가락 짚는 법까지 선생에게 의존한다면 연주자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이경선 교수 역시 ‘스스로 깨치는 교육’을 지향한다. “기교가 뛰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악보를 충실히 해석하는 일도 중요해요. 악보에는 작곡가들이 남긴 수많은 단서가 있어요. 탐정처럼 단서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찾아 나가야 작곡가가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핵심에 다다를 수 있죠. 제가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는 잉크가 마르지도 않은 현대곡 악보를 받고 일주일 동안 악보에 매달렸습니다. 누군가의 해석을 참고할 수 없으니 오롯이 나만의 해석을 발견해야 했어요.”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홀로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는 이경선 교수. 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주는 스승의 중요성도 직접 체감했다.
그가 연주자로서 날개를 달았던 때도 잘 맞는 스승을 만나면서부터다. 서울대에서 김남윤 교수를 사사한 그는 미국 피바디음악원에서 실비아 로젠버그 교수에게, 줄리아드 음악원에서는 로버트 만과 도로시 딜레이 교수에게 지도받았다.
“한국을 떠나 처음 만난 스승인 로젠버그 교수님은 개선할 부분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저와는 합이 잘 맞았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으면서 가장 목말랐던 부분을 선생님께서 풀어주셨거든요. 그래서 교수님이 지적한 부분은 다음 수업 때 반드시 개선해서 갔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늦게 유학을 떠났지만, 덕분에 국제 콩쿠르에서도 연이어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흔이 넘으셨는데 지금도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어요.”

‘홀로’ 집중하고 ‘함께’ 성장하는 여정
‘홀로’ 집중하고 ‘함께’ 성장하는 여정
“잘하는 것만큼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다. 열정과 애정은 집념과 끈기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라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보이면서 한국의 음악교육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이경선 교수를 비롯한 한국의 음악가들이 외국 명문 음대에 교수로 초빙되는 일도 늘어났다. 2000년대 초반 그가 오벌린 음대에 재직할 때 만 해도 학교에서는 한국인 유학생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우려했지만, 지금은 그를 통해 실력 있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미국으로 건너오길 기대하는 시선이 많다. 여기에는 학생들의 잠재력을 깨우고, 기량을 향상시키며, 세계무대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등 그를 비롯한 한국 예술 교육자들에 대한 인정이 반영되어 있다.
이경선 교수 역시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한국 예술 교육의 노하우를 인디애나대 음대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전할 예정이다. “미국 대학에서는 여러 인종들이 모인 데다 학생 수준도 다양해서 서로 관심사를 파악하며 나름대로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지도하고 있어요. 기본기와 악보에 충실하고, 연주자로서의 무대 매너를 갖추고 살아있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며, 테크닉과 음악성을 골고루 겸비하라고 강조하죠.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걸리기 쉬운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해 몸에 힘을 빼고 연주하는 각자만의 방법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해줍니다.”
음악 안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음악을 잘하는 것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가 연주와 더불어 교육을 끝까지 이어가는 이유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결국 열정과 애정의 다른 표현은 집념과 끈기라는 말이 새삼 기억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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