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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笑笑)한 경제

가격은 그대로, 용량은 확 줄인
슈링크플레이션
부동산 PF 현황 이미지

최근 각종 원자잿값 인상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식품업계에서 가격은 유지하면서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 유행이다. 봉지당 핫도그의 개수를 5개에서 4개로, 만두는 전체 포장 중량을 415g에서 378g으로 줄이는 등 기업은 소비자들이 바로 눈치채기 어려운 방식으로 원가를 절감하고자 편법을 쓰고 있다. 이런 슈링크플레이션을 마주하면 당황스러운 기분이 드는 건 소비자의 몫. 이런 ‘꼼수’ 가격 인상의 이유는 무엇인지 분석해 본다.

글 곽해선 경제교육연구소 소장

경제 해설에서 독보적 스타일을 구축한 경제 전문가다.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주립대학교 MBA를 취득했다. 전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과 아시아생산성기구(APO,도쿄) 연구원으로 일했다. 경제 분야 최장기 베스트셀러 『경제기사 궁금증 300문 300답』 등 실용 경제서 다수를 집필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이란 무엇인가

‘슈링크플레이션’이란 기업이 원가를 줄이기 위해 제품의 판매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크기나 중량을 줄이는 등의 현상을 말한다. 제품 가격은 같아도 크기나 중량이 줄어든다면 소비자 입장에선 가격이 인상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현상을 표현하는 용어로 상품의 크기나 중량 등이 ‘줄어든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에 ‘인플레이션(inflation)’을 조합한 ‘슈링크플레이션’이 탄생했다. 소비자 관점에서는 ‘패키지 다운사이징(package downsizing)’이라고도 부른다.
전형적인 슈링크플레이션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째, 제품의 크기나 중량을 줄인다. 한 봉지에 든 과자 개수를 10개에서 8개로, 냉동 포장 식품의 중량을 300g에서 250g으로 용량을 줄인다. 보도에 따르면 오리온, 농심, 서울우유협동조합 등이 이런 방식을 택했다. 오리온은 지난해 10월 초콜릿 바 제품의 중량을 50g에서 45g으로 5g 줄였다. 대신 가격은 1,000원을 유지했다. 지난해 9월 서울우유협동조합도 시리얼 요구르트 제품의 중량을 143g에서 138g으로 5g 줄여 출시했다. 상품 용량을 줄였다고 공개적으로 알리는 기업은 거의 없다. 그 때문에 실제로 중량이 줄어든 제품은 더 많을 수 있다.
둘째, 제품의 품질이나 성능을 떨어뜨린다. 국수나 라면의 면 두께를 줄이거나 건더기 양을 줄이고, 음료에 함유된 과즙 함량을 줄이고, 과자의 원재료를 저가 원재료로 바꾸고, 화장품의 주요 구성 성분을 저가 성분으로 바꾼다. 프랜차이즈를 포함한 음식점은 식자재를 더 값싼 것으로 바꾸거나 반찬의 가짓수를 줄인다.
셋째, 원가를 줄일 수 있도록 제품 구성을 바꾼다. 샴푸와 세제의 양은 그대로 유지하고 향료나 보존제를 없애고 용기를 내구성이 낮거나 더 가벼운 재질로 바꾸는 것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이 왜 발생하나

슈링크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이유는 기업이 슈링크플레이션을 통해 이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기업은 원가를 줄여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 제품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가 가격 인상에 저항해 구매를 줄일 수 있고, 그 결과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가격을 올리지 않고 제품의 크기나 중량을 줄여 원가를 절감하면 소비자 저항과 매출 위축의 부담 없이 원가를 줄일 수 있다.
둘째,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원가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경쟁사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다만 최근 국내시장의 슈링크플레이션은 국제 원자잿값 상승으로 기업의 원가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에 기인한다. 2020년부터 약 3년간 이어진 팬데믹 이후 세계시장은 침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원자재 수요가 급증했다. 반면 공급은 팬데믹으로 입은 타격에서 채 회복되지 못했다. 팬데믹으로 항만이 적체되면서 원자재 생산과 운송비를 포함한 물류비 전반이 급등한 것도 글로벌 공급망 회복세를 늦추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도 이어지고 있다.
공급망 타격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원자잿값을 밀어 올리면서 기업은 생산비 부담이 크게 늘었다. 이익률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원자잿값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전가해야 하지만, 그럴 경우 가격 인상에 민감한 소비자의 반발이 우려되기에 선택한 전략이 곧 슈링크플레이션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

보통 소비자는 상품 가격 인상에는 민감하게 반응해도 상품의 중량, 크기, 개수를 살짝 줄이는 것까지는 잘 알아채지 못한다. 설령 안다 해도 가격 인상에 비하면 심리적 저항이 크지 않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이런 소비자 심리를 기업이 전략적으로 판매에 활용하는 데서 나타난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공급망 악화로 손해를 보고 있어 고육지책으로 이런 결정을 했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슈링크플레이션을 마냥 방치할 일은 아니다. 슈링크플레이션에는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을 떨어뜨려 국민경제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막으려면 기업, 정부, 소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은 생산 공정 효율화, 원재료 원산지 다변화, 자재 재활용 등 원자잿값 상승에 대응할 능력을 키워야 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이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제품 크기나 중량을 줄인 사실을 제품 포장에 명확히 적고, 제품의 기존 품질이나 성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품 가격을 단계적으로 올릴 필요도 있다.
최근 정부는 관계부처와 비상경제 장관회의를 열고 슈링크플레이션 대책으로 사업자가 용량 변경 정보를 공개하도록 제도화하는 내용의 고시 개정을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정부는 편법적인 가격 인상을 근절하는 한편, 원자잿값 안정 정책과 세제 지원 등으로 기업의 원가 상승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기업이 안정적으로 원자재를 조달하고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소비자는 평소 제품의 크기나 중량이 달라지지 않는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기업에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정부에도 슈링크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법령과 제도의 개선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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