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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르게 지구촌 곳곳으로 떠난 이들의 흥미로운 여행기

지구촌 여기저기

비아 레일로 떠난
오로라 왕국 캐나다
비아 레일로 떠난
오로라 왕국 캐나다
이집트 여행
이집트 여행
토요일 오전 근무를 하던 그때,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나면 아버지는 늘 어딘가 떠날 준비를 하셨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동생과 떠들거나 어머니가 준비하신 음식을 먹다 잠이 들면 눈앞에 새로운 장소가 펼쳐져 있었다.
나이가 들고 나서 부모님과 떠나는 여행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던 즈음, 문득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도 이곳저곳을 잘 다니는데 어머니와 못 할 게 뭐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진가와 함께하는 캐나다 오로라 여행’을 어머니와 함께 떠난 이유다.

글·사진 전명진 사진작가

일석이조의 선택지, 비아 레일

캐나다를 여러 번 다녀왔고 아이슬란드에도 다녀왔지만 유독 오로라와 인연이 없던 나는, 부모님과 떠난 여행이 몇 배나 부담스러웠다. 또 여행 일정을 오로라에만 맞추기에는 현지 날씨나 오로라 지수의 영향이 너무 큰 데다 넓고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 캐나다에서 오직 오로라만 보러 가는 것도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았다. 우리는 눈 덮인 로키산맥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즐기며 오로라를 보러 가는 일정을 짰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을 획득했던 밴쿠버에 도착해 여정을 시작한다. 시내의 개스타운이나 스탠리 공원도 둘러볼 만했지만 여행의 백미인 오로라를 만나기 전 기대되는 일정이 있었다. 바로 로키산맥을 헤치고 북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비아 레일(VIA Rail)을 탑승하는 것.
땅이 넓은 국가에서 장거리를 이동하려면 보통 비행기를 이용하지만, 그 외에 철도나 도로가 발달한 국가에선 예외다. 보통은 인도나 러시아 등 평지가 많은 나라가 그러한데, 캐나다는 전체 국토에서 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도 불구하고 풍부한 산림자원을 옮기기 위해 철도가 발달해있다. 이제는 항공 발달로 승객 수송보다 물류 운송에 초점을 맞춘 기차가 많지만, 비아 레일은 많은 사람이 여전히 애용하는 기차다.
굳이 요즘 같은 때에 기차의 낭만을 찾느냐고 하겠지만, 이 구간은 짧게는 이틀, 길게는 열흘간 기차를 타고 캐나다 전역을 이동하는 코스다. 캐나다 제일의 도시 토론토와 서부의 밴쿠버를 잇는 캐나디언(The Canadian)과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아름다운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스키나(The Skeena), 토론토와 몬트리올 사이 주요 도시를 운행하는 코리도어(The Corridor) 등 구간별로 각각 특색이 다른 열차가 운행한다.

어람용 의궤
비아 레일 전면
어람용 의궤
비아 레일 전면
직지심체요절
비아 레일의 식당칸
직지심체요절
비아 레일의 식당칸
열차에서 누리는 호텔 라이프

우리 구간은 캐나디언 라인 중에서도 밴쿠버에서 밴프, 재스퍼, 캘거리 구간을 운행하는 로키 마운티니어(Rocky-Mountaineer). 가는 내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로키산맥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달리는 호텔이라 불리는 만큼 장시간 이동하는 기차라고 해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식당 칸과 카페, 바는 물론 좌석이 침대로 변하거나 아예 객실에 문이 달려 있기도 하고, 화장실과 침대가 딸린 방을 선택할 수도 있다.
마치 영화 ‘설국열차’의 맨 앞 칸과도 같은 여유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나올 법한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객실에서 풍경을 경험하며 마음껏 시간을 보내다 한 층 위로 올라가면 3면이 유리로 덮인 방이 나온다. 눈 쌓인 기암절벽과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최대한 만끽하며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끼니마다 맛난 음식을 먹으며 3일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에드먼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말로만 듣던 옐로나이프로 간다.

안데스 산맥 로키 산맥
캐나다 오로라의 성지, 옐로나이프

옐로나이프는 세계적으로 최적이라 평하는 오로라 관측장소다. 사방 1,000km 산이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평원지대라 시야의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도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빛의 공해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또 청정한 대기와 함께 평균적으로 낮보다 밤에 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어 구름이나 대기의 먼지 등에 방해받지 않고 관측이 가능하다. 옐로나이프 시내에서 차로 30분~1시간 가량 이동하면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는 ‘오로라 빌리지’들이 존재하는데 다양한 형태의 티피텐트(인디언텐트)에서 대기하거나 임시 건물에서 대기하며 오로라의 출현을 기다린다. 실제 겨울에는 매일 오로라가 생겨나지만, 정도의 차이와 날씨로 인해 2~3일 이상의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관측하는 것을 추천한다.
낮에는 옐로나이프의 시내 관광과 함께 겨울 액티비티를 즐기는데 주로 개썰매 체험을 한다. 10~14마리의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광활한 설원을 달리는 경험을 해보길 추천한다.

안데스 산맥 개썰매 체험
돌로미티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 개썰매 체험
3일 만에 만난 환상적인 오로라

그렇게 기대감을 가지고 도착한 옐로나이프에서 우리를 맞아준 것은 혹독한 추위였다. 오로라를 관측하기 좋은 때는 12월~3월인데 우리가 도착한 2월은 낮에도 영하 10℃를 기록하고, 밤에는 영하 29℃까지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더구나 오로라를 보려면 밤 10시부터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아주 잠깐이라도 밖에 있으면 금세 온몸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우리는 첫날 흐릿하게 본 것 말고는 3일째 오로라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옐로나이프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자 기분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그러다 텐트에서 각국의 언어로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를 듣던 중 누군가 “나왔다!”라고 외치는 순간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갔다. 우리도 텐트 밖을 나가자마자 그저 “와!”하고 탄성을 지를 뿐 하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오로라와는 확연히 달랐다. 저 멀리서부터 가까이에까지 온통 빛의 커튼이 춤을 추고 있었다. 빛의 장막은 때로 부드럽게, 때로는 격렬하게 움직이며 시선을 붙들었다.
세상에!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장면을 보아왔지만 이렇게까지 전율을 느낀 적은 없었다. 오로라는 태양의 대전입자가 지구 대기권 상층부의 자기장과 마찰하여 빛을 내는 현상이라는 과학적 지식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경이와 감탄만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그 움직임과 규모에 압도되어 한편으로 두려움이 일 만큼 빛의 움직임은 경이로웠다. 옆에서 보고 계시던 어머니는 순간순간 비명을 토하시며 신기해하셨다.
뒤늦게 축포처럼 터진 밤하늘의 공연 때문에 예정된 귀가 시간을 한참 지나서야 숙소로 들어왔고, 셔터를 누르느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오른손은 동상에 걸려 다음 날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어머니 역시 시간이 지나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밴프의 아름다운 호숫가에서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 문득문득 오로라의 놀라움을 표현하셨다. 이 날의 추위와 풍경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으로 가슴 속에 남았다.
케이 로고 이미지